혹시 위 내시경 경기가 있다면 아마 장려상쯤은 받을 것이다. 이것은 근거 없는 추측이 아니다. 동네 내과에서 내시경 검사를 받을 때마다 “어쩌면 이렇게 검사를 잘 받으세요”라는 말을 듣곤 했으니 수많은 환자 중에서 꽤나 기품 있게 검사를 받았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백조가 품위 있게 물 위에 떠 있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발을 물속에서 끓임 없이 움직여야 하듯 내시경을 받는 시간은 나에게도 꽤나 요란한 발길질을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젊어서부터 위에 문제를 달고 살았다. 내시경 검사가 보편화된 후부터 매년 검사를 받아왔으니 아마도 나의 내시경 경력은 30년은 훌쩍 넘었을 것이다. 동네 내과에서 하던 검사를 대학병원으로 옮긴지는 10년쯤 된다. 통상 위염이 오래 진행되면 따라오는 질병이 몇 있는데 그중 하나가 식도염이다. 내가 앓고 있는 식도염은 ‘바렛’이라는 이름을 가진 세포 변이가 일어난 종류다. 외국에서는 ‘바렛’이 악성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있다 하여 세밀한 검사를 하자고 대학병원으로 옮기게 되었다.
수면 내시경으로 하면 간편할 텐데 굳이 일반 내시경으로 하냐고 묻는 분들이 있다. 그 이유는 이러하다.
첫 번째, 이미 눈치 채신 분들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사오정 기질이 다분하다.
모두가 알아듣는 말을 혼자 헤매고 있다거나 농담으로 한말을 팩트로 이해한다는 거다. 그 원인을 찾던 중 여러 번의 수술로 전신마취를 했던 기억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마취를 하면 뇌세포가 파괴된다는 항간의 말은 나의 사오정 기질을 설명하기에 충분했고 ‘이제 남은 뇌세포라도 지켜야 한다’는 방어 기제가 생겨난 것이다.
둘째 이유는 남편의 내시경 검사에서 찾을 수 있다. 늘 주사한 대 맞듯 태연하게 내시경을 마치는 아내를 보고 거리낌 없이 일반 내시경에 도전했던 남편은 첫 내시경 도중 극한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고 한다. 어쩌면 늘 알코올에 젖어 약간의 마취상태에 있던 남편의 위는 내시경을 위해 며칠 들어오지 않는 알코올로 인해 이미 생명의 위협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수면 내시경을 하게 된 남편을 보호자가 되어 기다리게 되었는데 일반 내시경과 달리 남편은 회복시간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다소 긴장하고 있던 차에 그 큰 검진 센터가 들썩거릴 정도의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30년간 꾸준히 들어왔던 낯익은 소리였다. 들어도 들어도 영 친해지지 않아 내가 각 방으로 도망간 그 소리, 남편의 코 고는 소리였다. 남편의 당당한 코 고는 소리는 내시경 후에도 전혀 겸손할 줄 몰랐다. 찜질방에서 자다 코 고는 소리에 옆의 어르신께 큰 꾸지람을 들었다는 이야기가 생각나 어서 남편을 깨워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 후로 남편의 내시경 때에는 서둘러 남편을 깨우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수면 습관이 더 강화되는 수면 내시경의 마무리를 보면서 한순간의 극한 외로움을 견디면 끝나는 일반 내시경을 더 고집하게 되었다.
나에게 기품 있는 일반 내시경을 위한 바쁜 발길질은 암송이다.
30대 때 첫 번째 수술을 위해 수술방에까지 들어갔는데 응급수술 환자가 생겨 수술이 미뤄지게 되었다. 이미 수술 직전 상태로 온몸이 세팅되어 있어 무척 추웠다. 나는 추위에 온 몸을 사시나무 떨 듯했다. 수술실은 온도가 낮고 벗은 몸에 겨우 몸을 가릴 정도의 얇은 천만 덮어주기에 의식이 있는 상태로 대기하기엔 상당히 주눅이 든다. 대기실로 밀려난 나는 남편을 찾았고 수차례 남편의 이름을 찾는 방송이 나갔지만 남편의 행방은 알 수 없었다. 아내를 수술실로 들여보내고 빨리 요기라도 하자고 자장면을 먹으러 갔다는데, 그때 나는 인간은 모두 혼자라는 것을 옷이 벗겨져 인격까지 벗겨진 것 같은 막막함 가운데서 명료하게 체험했다.
응급환자의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이가 딱딱 부딪히는 추위 속에서, 그보다 더한 긴장 속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수술 날짜가 잡히고는 별별 부정적인 상상 속에서 절대자와의 일방적인 대화가 이미 끝난 상태였다. 수술 경험이 있는 분들은 동의하겠지만 수술을 앞두고 본인은 기도가 잘 안 된다.
이후 어느 신부님께서 수술을 앞두고 ‘시메온의 기도’를 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기쁨에 찬 기도인 ‘엘리사벳의 기도’를 암송해 다음번에 대비하고자 했지만 이미 사오정의 세계로 진입한 나로서는 새로운 암기는 능력 밖의 일이 되어 있었다. 결국 내시경을 위한 나의 발길질은 이미 암송할 수 있는 것 중에서 좁히고 좁혀져 ‘주님의 기도’로 압축되었다.
내시경을 위해 목 마취제를 삼키고 몸을 옆으로 돌려 누우면 절로 몸이 움츠러든다. 마우스 피스를 힘주어 물면 온 몸의 신경세포들이 피스 주위로 마구 몰려든다. 그곳을 통과해 들어오는 위 내시경 호스를 꿀꺽 삼킨다. 순간 손을 내저어 호스를 잡아 막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숨을 크게 쉬라는 말에 큰 호흡을 하며 느리게 기도문을 암송한다. 동네 내과 간호사의 격려는 없지만 침착한 검사 모습에 ‘잘하고 있어’라며 자신에게 격려를 보낸다. 호스가 다 들어가 샅샅이 위와 십이지장을 탐색하기 시작하면 호흡과 함께 암송의 속도가 빨라진다. 호스가 문제가 있는 부위에 머무르며 사진을 찍는 내시경 후반이 되면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임계점에 이르게 된다. 암송의 속도는 몇 배로 빨라지고 드디어 발길질이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요동칠 때 내시경의 호스가 몸에서 빠져나온다.
잠깐의 죽음과 부활 체험이다.
부활을 위한 절대적 조건인 죽음의 체험이 신앙의 신비를 밝혀준다. 곧이어 내시경 검사 결과가 선포되며 나에게 통지표가 주어진다.
‘유의미한 변화가 없으니 1년 뒤에 보자’는 통지표다. ‘앞으로 1년은 안심하고 살다 오라’는 선언이기도 하다.
그 잠깐의 극한 체험으로 나는 또다시 순한 사람이 된다. 매년을 반복해도 처음인 것 같은 이 생경한 체험은 이번에도 내 영혼을 탁탁 털어 잡념의 먼지 한 움큼을 저만치 던져 버렸다. 나는 1년이란 시간을 벌었다.
절대자는 인간에게 선물을 줄 때 보자기에 꽁꽁 싸서 준다고 한다. 보자기를 선물로 알아보고 푸는 자만이 선물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오늘 보자기 하나를 풀었다. 이제 “어쩌면 그렇게 검사를 잘 받으세요”라는 격려의 말은 없지만 위 내시경 30년 경력이니 30개의 선물 보따리를 품에 안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