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기는 말이다. 한듣 한내(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내보내기)가 인생의 좌우명이 되기까지는 나름 체험이 많았으리라.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이것이 안 돼 밤참을 설칠 때 남편은 세상이 떠나갈 듯 코를 골았다. 덕분에 남편에게 인생은 즐거운 놀이터였다. 남편은 입사 초기부터 주말이 되면 빨리 회사에 가고 싶어 안달이 났다고 한다. 놀이도 일처럼 하는 나와는 달리 일도 놀이처럼 하는 재주가 있었던지라 남편은 몸 닿는 자리 그 어떤 곳도 놀이터로 바꾸는 능력자였다. 능력자 남편에게는 직장도 놀이터였던 셈이다. 남편은 처음 시작한 직장에서 정년을 맞았다. 때론 “너 초등학교 나온 거 맞냐”는 부장의 인격모독 꾸중 따위는 한쪽 귀로 흘려보내니 정년이라는 상장이 주어졌다.
이 ‘한듣 한내’의 튼튼한 내공에 현격한 공을 세운 것은 단연코 시어머니였다.
술자리가 끝나면 간식 봉지를 들고 아이들을 깨우는 시아버지 밑에서 자란 남편은 ‘크면 절대 술 따위는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 다짐은 첫 술자리에서 착착 입에 감기는 술에 놀라 '누가 여기에 설탕 탔어'라는 감탄을 내뱉을 때 이미 꼬리를 내려버렸다. 취해 들어온 손주를 보고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할머니의 선언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의 술자리가 행복할수록 시어머니의 걱정은 깊어졌다. 비틀거리며 초인적인 힘으로 집을 찾아오면 시어머니의 훈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뜨끈한 온돌방에 엉덩이를 붙이고 훈육을 듣다 보면 꾸역꾸역 잠이 밀려왔다. 달리 변명할 말도 없었다. 쏟아지는 잠을 참다 보면 어렴풋이 해가 떴다. 매번 똑같은 레퍼토리로 반복되는 시어머니의 훈계는 한쪽 귀로 들어와 한쪽 귀로 흘러 나갔다. 시어머니는 굳이 아들의 변명은 필요치 않았다. 동이 터야 군말 없이 들어준 아들에 대한 시어머니의 사랑도 회복됐다. 이렇게 계속해서 한듣 한내의 내공을 쌓은 남편은 어디에서고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 되어갔다.
남편의 이 비장의 무기는 아내에게는 소통 부족이라는 이름으로 던져졌다. 마땅한 대화의 상대도 없던 시절, 하루 종일 두 아이의 육아로 지쳐 푸념이라도 할라치면 한듣한내의 남편은 결혼 전 갈고닦은 실력으로 금세 코를 골았다. 마치 ‘아내가 입을 여는 시간은 남편은 귀를 닫아야 하는 시간’이라는 명제를 만들어 놓고 철저히 지키는 사람 같았다. 술이라는 강력한 수면제를 당할 재간도 없었다. 남편을 깨워가며 이야기하던 노력도 시간이 지나며 시들해졌다.
‘한듣한내’는 결혼생활의 적으로 몸을 불려 갔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7살, 4살의 두 아이를 두고 2박 3일간의 교육을 신청했다. 부부대화를 중심으로 관계 개선에 도움을 준다는 가톨릭 주관의 부부교육이었다. 남편에게 한듣한내의 칼날을 벼려준 시어머니는 꼼짝없이 먼 길을 달려와 두 손주를 봐야 했다.
교육장에는 한듣한내의 상처로 눈물짓는 아내들이 많았다. 어떤 남편도, 어떤 아내도 한듣한내의 태도에서 180도 회전하지 않고는 따라갈 수 없는 교육이었다. 2박 3일 동안 부부는 서로에게, 서로의 대화에 집중했다. 교육의 키워드는 교육장에 걸려있던 현수막에서 읽혀졌다.
‘사랑은 결심이다.’
사랑은 관계 맺기에 따라 주어지는 결과가 아니라 관계를 시작하는 첫 단추였다.
2박 3일의 교육이 끝난 후 많은 부부들이 제2의 신혼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교육이 끝났다고 다 끝난 게 아니었다. 부부 각자에게 셀프 재교육이 평생 프로그램으로 주어졌다. 교육에 참여한 3쌍의 부부와 후속 모임을 이어갔다. 1996년도에 시작한 모임이니 올해로 25년째이다. 3쌍의 부부는 정기적으로 만나 각 가정을 돌며 숙제를 발표한다. 숙제는 배우자에게 쓰는 편지다. 모임에서 정한 대화의 주제에 따라 아내는 남편에게, 남편은 아내에게 편지를 쓰고 발표하며 세 부부가 내용을 공유한다.
당시 30대 중반이었던 우리 부부는 보기만 해도 서로의 존재에 웃음 짓던 사랑스런 봄의 계절을 보내고 작렬하는 태양만큼이나 치열하게 다투는 부부의 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역시나 맹렬한 여름을 보내는 30대 두 부부와 적금 붓듯 편지 부부모임을 해 나갔다. 냉전을 하다가도 모임이 다가오면 체면상 화해를 했다. 겉보기 화해로 시작해도 모임이 끝나면 마음으로 화해가 되어 있었다.
육아로 지쳐있던 아내들과 어떤 이유로든 가정에 불충실하다는 오명을 쓰고 있는 남편들의 편지 대화는 끓어질 듯 끓어질 듯 하면서도 계속 이어졌다. 편지를 읽다 누군가 울컥하면 아내들은 모두 같이 울먹였고 모든 남편은 함께 죄인이 되기도 했다. 매 달 편지 주제는 달라졌지만 각 부부가 안고 있는 문제를 주제에 따라 풀어가는 내용은 달라지지 않았다. 음주라는 키 워드가 바뀌지 않는 우리 부부의 경우처럼 각 부부도 각자의 키 워드로 매달 이야기를 진행했다.
세 부부는 매달 배워 나갔다. 편지 대화를 통해 화해하고 성장해가는 다른 부부의 모습을 보며 배웠다. 함께 하는 부부에게서 ‘사랑은 결심’이라던 그 날의 교육장 표어를 되살리고 살을 찌웠다. 한결같이 성실하고 원칙주의자인 아내를 둔 3명의 남편도 성실한 모임 참여자가 되어갔다.
25년이 지난 지금도 각 부부가 문제로 삼고 있는 주제들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잦은 음주가 문제였던 우리 부부가 여전히 그 문제에서 해방되지 않았듯이 다른 부부들도 여전히 자기들만의 문제를 안고 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것을 바라보는 각자의 시선이다. 세 부부의 시선에 세월이 주는 관용과 이제는 우정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부부간의 깊은 이해가 더해졌다.
잊어버릴 만하면 상대 부부를 보며 다시 기억해냈던 ‘사랑은 결심이다’라는 문구가 세 부부에게 결실의 부부 가을을 선사해주었다. 남편이 누구보다도 가장 좋은 친구라고 느껴지는 지금이 우정이라는 결실을 맺은 우리 부부의 가을이다. 서로에게 편지를 쓰고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는 세월을 경험하며 우리 부부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다. 언젠가는 부부교육을 떠날 딸 내외를 대신해 손주를 보게 될 것이다.
남편의 주 특기인 한듣한내는 이제는 나에게도 도래했다. 들어도 들어도 도통 무엇을 기억하기가 어렵다. 한쪽 귀로 들어와 흔적도 없이 흘러 나간다. 남편과 나는 자주 서로 했던 말을 전혀 들은 적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노화의 진행이니 어찌할 도리가 없다. 슬그머니 서로의 주장을 내려놓는 수밖에.
이제 우리 부부에게는 언젠가는 모든 것을 버리고 귀천歸天으로 서로에게서 떠나야 할 부부의 겨울이 올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마음에 스산한 바람이 분다. 엄연히 존재할 그 시간을 준비해 가는 오늘이 우리 부부에게는 최고의 가을이다. 오늘, 부부가을의 중심에 서서 ‘사랑은 결심이다’라는 표어 앞에 나를 다시 올려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