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쩜 팔 남편의 성공

by 안나 Apr 18. 2021


“바지가 왜 이렇게 짧으냐?”

신혼시절, 사위 바지를 다림질할 때마다 친정엄마는 고개를 갸우뚱하셨다.

친정아버지도 키가 작으셨다. 남편하고 그리 키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친정엄마는 번번이 그 미묘한 차이를 이렇게 표시하시곤 했다.      


 작은 키를 비하하는 ‘루저’란 낱말이 SNS 구설에 오르기도 했지만, 나는 33년 전 남편과의 두 번째 만남 이후로 남편의 작은 키에 대한 관점을 바꾸었다. 185cm의 남자와 선을 본 직후의 일이다. 맞선 상대의 키가 크다는 정보에 따라 하이힐을 신고 나간 나는, 그날 어린이 대공원을 한 바퀴 도는 데이트로 완전히 기진맥진하였다. 하이힐로 걷기에는 넓디넓은 대공원 동물원을 한 바퀴 돌고 난 무렵에는 늘어지게 하품하며 누워있는 원숭이가 부러워 보일 지경이었다.      


 남편은 작은 키에도 단화를 즐겨 신었다. 거추장스럽고 불편한 것은 단연코 NO였다. 두 번째 만남에서, 친구가 부른다는 잠실의 포장마차로 가기 위해 간신히 올라탄 지하철은 발 디딜 틈 없이 복잡했다. 키 작은 남편과 나는 이 사람 저 사람 사이에 끼어 납작해졌다. 그 와중에도 내 가방을 들고 나를 보호하고자 고군분투하는 남편을 보며 키 작은 사람과 친절한 사람 사이의 등호가 세워졌다. 남편은 큰 키의 남자와 걷는 일에 혼쭐이 난 나를 만난 덕에 ‘친절한 사람’이라는 명예를 갖게 된 셈이었다.     


 나는 남편의 키가 정확히 얼마인지 모른다. 키 작은 내가 굳이 신장을 밝히려 들지 않기에 키를 묻지 않는 것은 나름 예의를 갖추는 일이다. 단지 ‘쩜 팔(.8)’이라는 남편의 절친들 모임으로 추리할 뿐이다. 남편은 고만고만한 키를 가진 성당 형제들과 자주 어울렸다. 그 모임 이름이 ‘쩜 팔’이었다. 남편 말로는 키가 168cm 이하인 형제들 모임이라 했는데 쩜이 주는 뉘앙스로 짐작컨대 160.8cm일 가능성도 있어 보였다. 이 ‘쩜 팔’ 형제들은 모이기만 하면 서로 상대방의 ‘머리 정수리가 내려다보인다.'며 실랑이를 벌이곤 했다. 앉은키는 남부럽지 않은 남편도 술자리에서는 ‘정수리’를 안주삼아 목소리를 높였다.     




 선을 봤던 185센티의 남자보다 더 키가  큰 신부님이 본당에 부임하셨다. 나는 신부님과 가능한 멀리 떨어져 서라고 남편에게 충고했다. 가까이 서면 서로의 장점이 단점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는 합리적인 이유도 곁들였다. 그런데 어느 날 ‘쩜 팔’ 모임에 나가보니 모두의 정수리가 한참 내려다보일 신부님이 남편 옆에 앉아 계셨다. 남편은 ‘8’이라는 숫자가 들어가는 키면 누구나 ‘쩜 팔’ 회원이 될 수 있다고 술이 거나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쩜 팔’ 모임은 주당들의 모임이기도 했다. 모이기만 하면 과거의 주량을 자랑하듯 과한 술과 재담이 오갔다. ‘시작은 미미하였으나 마지막은 창대하였다’의 말씀처럼 ‘작은 키’로 만났지만 번번이 ‘엄청난 양의 술’로 모임의 키워드를 바꾸곤 했다,      


모임의 정체성이 변색되어가던 어느 날, ‘쩜 팔’ 모임의 고문 격인 신부님께서 한 말씀을 내리셨다. “테오필로(남편의 세례명) 형제는 성공하셨어요. 아들 요셉의 정수리는 한참 올려다 봐야잖아요.” ‘쩜 팔’ 기준을 벗어난 아들을 둔 남편은 신부님의 말씀을 복음 삼아 그날도 술이 거나해졌다. ‘인생 성공’의 주인공이 되었으니 매번 술값으로 주머니를 터는것도 당연지사였다. 아들의 엄마이니 인생성공에 협조한 격이 되어 버린 나로서는 남편의 귀가시간이 늦어지는 날이면, 남편의 짧은 바지에 여러 개의 주름을 잡아 다리는 것으로 소심한 복수를 할 뿐이다.     


복음-가톨릭 용어로 ‘기쁜 소식’이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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