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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우종영, 578권

by 우보

감상

나무처럼 살아가고자 하는 작가의 생각이 고스란히 책 곳곳에 담겨 있습니다. 모든 나무는 그 나름의 매력과 역할이 있습니다. 흔해 보이는 회양목은 도장 두께가 되기 위해선 수십 년을 자라야 합니다. 약해 보이는 대나무는 60년은 넘어야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나무처럼 살고자 하니 나무와 닮아버린 작가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모두가 그처럼 살 수는 없을 테지만, 책 속 어디 나와 비슷한 나무를 만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의 한 문장

대나무 꽃은 60년에서 120년 사이에 단 한 번 피어나기 때문이다.


1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 썩어 천 년, 합해서 삼천 년을 이어간다는 주목나무. 얼마나 줄기가 붉었으면 그 이름까지도 ‘붉을 주朱’를 써서 ‘주목朱木’이라 했을까.


2

그때 사람들을 불러 모으던 나무가 바로 이팝나무다. 농가 근처라면 어디서든 볼 수 있었던 이 나무는 무리 지어 피는 꽃 모양새가 꼭 밥공기에 수북이 담겨 있는 쌀밥을 닮아서 예전에는 ‘이밥나무’라고 불렀단다. 멀리서 보면 꼭 하얀 밥 덩어리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것 같다고 할까. 그래서 예로부터 이팝나무 꽃이 풍성하게 피면 그해 농사도 풍년이라고 했다.


3

전국 어디든 5리마다 한 그루씩은 볼 수 있었다는 오리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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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가 흔히 ‘아카시아’라고 알고 있는 나무의 진짜 이름은 ‘아까시’이다. 진짜 아카시아나무는 열대 지방에서만 자라는 나무로 그 생김새가 아까시와는 전혀 다르다. 개인적으로는 아까시라는 이름보단 왠지 모를 달콤함이 느껴지는 아카시아라는 이름이 훨씬 더 좋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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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끈질김에 정나미가 떨어진다나.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뽑아 내도 없어지기는커녕 묫자리까지 뿌리를 뻗어 가는 집요함을 어느 누가 곱게 보겠는가. 게다가 아까시나무는 스스로 독성을 뿜어 주위 풀들을 자라지 못하게 만든다. 자라면서 워낙 많은 양분을 필요로 하는 탓에 경쟁 상대가 될 만한 나무는 씨부터 말려 죽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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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젖은 채로도 불에 넣으면 ‘자작자작’ 하며 타들어 간다는 자작나무. 하얀 수피가 너무나 아름다워 옛날 우리 조상들이 무척 귀하게 여겼지만, 워낙 추운 곳에서만 자라는 탓에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좀처럼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영화 〈닥터지바고〉의 눈부신 설경을 기억하는 사람은 자작나무를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눈이 시릴 만큼 하얗게 펼쳐진 설원 위에 하얀 수피를 입고 하늘로 곧게 뻗은 자작나무 숲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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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진을 받아 본 요셉 수녀님은 너무 좋아 어쩔 줄 몰라 하셨다. 가톨릭에서는 동백꽃을 순교자에 비유한다며 연신 고맙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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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 중에 흰색이 가장 화려하다고 했던가. 온갖 천연색의 꽃들이 만발하는 5월, 조팝나무가 유독 눈에 띄는 것은 오히려 그 꽃이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순백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한창 꽃이 만발할 때의 조팝나무를 보면 가지에 붙은 하얀 꽃잎이 마치 한겨울의 눈꽃을 보는 것 같다. 그래서 원예가들 사이에서는 ‘설류화’라는 별칭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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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자라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워낙에 느티나무는 속이 잘 썩는 나무다. 가지가 부러지거나 하늘소 같은 벌레가 들어가 작은 구멍이 생기면 걷잡을 수 없이 썩기 시작해 결국엔 속이 텅 비어 버린다. 그래도 신기한 것은 전혀 끄떡도 않고 그 육중한 무게를 버텨 낸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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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라는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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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굴식물인 등나무는 혼자 힘으로는 줄기를 뻗지 못해 두 줄기가 서로 의지하며 자란다. 워낙에 다른 나무를 타고 올라가기도 하지만 가만 보면 저희들끼리 서로 몸을 꼬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그렇게 어울려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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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 향과 비슷한 냄새를 풍긴다는 생강나무. 하지만 생겨 먹은 모양새는 생강과 영 딴판이다. 아니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보는 순간 “저게 나무야?” 하는 말이 튀어나올 정도로 웃기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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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직경이 한 뼘 정도 되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까. 한 10년? 길어야 20년? 그러나 회양목이 그 정도의 직경을 가지려면 최소 50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주변에 웬만큼 나무 모양새를 갖춘 회양목이 있다면 최소한 증조부 때부터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고 생각하면 맞다.


느림보라는 별명이 꼭 어울리는 회양목. 그러나 그렇게 더디게 성장하는 동안 회양목은 그 속을 다지고 또 다져 그 어떤 나무와도 비교할 수 없는 단단함을 지닌다. 더디 자라는 만큼 조직이 치밀하고 균일해져 그 어떤 충격에도 뒤틀리지 않는 견고함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단단함은 귀한 가치를 지녀 도장을 만드는 훌륭한 재료로 쓰인다. 우리가 흔히 갖고 있는 나무 도장들이 대부분 이 회양목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예로부터 선조들은 회양목을 가리켜 ‘도장나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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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은 사진 중 유독 내게 없는 게 있다. 바로 대나무 꽃 사진이다. 대나무야 서울 시내에서도 볼 수 있지만 그 꽃은 여간해선 눈에 띄지 않는다. 아니 내 평생 한 번이라도 볼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대나무 꽃은 60년에서 120년 사이에 단 한 번 피어나기 때문이다.


나무는 보통 1년을 주기로 같은 일을 반복한다. 이른 봄 새순을 올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꽃을 피운 다음, 가을에 열매를 맺고, 겨울엔 다음 해를 기약하며 긴 수면기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대나무는 그런 일반적인 나무의 삶에서 참 많이도 벗어나 있다. 다른 나무들은 살면서 수십 번, 많게는 수천 번까지 꽃을 피우지만, 대나무는 단 한 번 꽃을 피우고 즉시 생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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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에서만 서식하는 특성 탓에 요새 들어서는 은행나무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지고 있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가장 인상 깊게 본 것 중 하나가 바로 오래된 은행나무라고 할 정도니 가히 나무의 왕이라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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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귀나무는 밤이 되면 양쪽으로 마주 난 잎을 포개고 잠을 잔다. 재미있는 건 잎마다 서로 맞닿을 짝이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밤이 되어 서로 포개질 때면 외롭게 홀로 남는 잎이 없다. 그렇게 정답게 짝을 이루는 특성 탓에 옛날엔 자귀나무를 신혼부부 집에 선물하기도 했단다. 사람들은 봉황의 깃처럼 화려한 꽃에 후한 점수를 주지만, 나는 낮 동안 서로 떨어져 있다가 해가 지기 무섭게 제 짝을 찾아 정답게 마주하는 잎의 생리가 더 귀엽고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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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가까이 있는 두 나무가 자라면서 하나로 합쳐지는 현상을 연리連理라고 부르는데, 두 나무의 뿌리가 이어지면 연리근蓮理根, 서로의 줄기가 이어지면 연리목蓮理木, 두 나무의 가지가 서로 이어지면 연리지連理枝라고 일컫는다. 연리지 현상이 일어나면 처음에는 그저 가지끼리 맞닿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종국에는 맞닿은 자리가 붙어 한 나무로 변한다. 땅 아래의 뿌리는 둘이면서 지상에 나온 부분은 그렇게 한 몸이 되는 거다. 연리목은 가끔 만날 수 있지만 가지가 붙은 연리지는 매우 희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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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근본주의자 스콧 니어링은 사람들에게 죽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노동력이 없어지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

그래서 그는 백 살이 되던 해에 스스로 곡기를 끊고 편안한 죽음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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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을 병들게 만드는 것은 사람의 지나친 손길이다. 사람 손끝에는 미세한 염분기가 있는데 그 손으로 잎을 자꾸 만지니 난이 스트레스를 받아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것이다. 염 성분은 난이 자라는 데 치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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