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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류

정대건, 580권

by 우보

감상

고등학생 때 처음 만난 인연.

부모의 불륜과 죽음으로 이어진 악연.

우연한 만남으로 악연을 사랑으로 이어간 노력.

급류 같은 중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다시 헤어지는 운명.

시간이 결국은 치유하게 한다는 해솔 할머니 말처럼,

우물 같은 아픔의 구덩이는 결국은 메워진다.

사랑으로 말이다.


이 책의 한 문장

낙관도 비관도 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거센 물살을 헤엄치듯이.


1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세상의 많은 것을 해솔은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 부분에서 도담은 해솔과 잘 맞았고 텔레파시가 통하는 쌍둥이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2

“별로 슬프거나 하진 않아. 애초에 없었으니까 그립지도 않고. 그저 남들은 모두 알고 있는 세상 사는 매뉴얼 같은 걸 나만 모르는 건 아닌가 싶은 기분이야.”


3

“근데 와류가 뭐야?”

해솔이 물었다.

“계곡물 아래 움푹 팬 웅덩이에 생기는 소용돌이 말하는 거야. 빨려 들어가는 거.”


4

“그건 과연 위대한 사랑일까?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새도 없는 즉각적인 반응이 정말 용기와 관련 있는 걸까? 자기 자식이니까 유전자에 각인된 본능 같은 거 아닐까? 그럼 자신과 상관없는 타인을 위해 뛰어드는 경우는 뭐지? 물에 빠져 위태로운 강아지나 고양이를 위해서라면? 뛰어드는 사람도 있을 거야. 하지만 물에 빠진 게 토끼나 닭이라면? 만약 평생 집에 소홀하던 사람이 물에 빠진 가족을 위해 뛰어들면 그걸로 사랑이 증명되는 걸까…….”


5

“호랑지빠귀라는 새 울음소리야. 한밤에 우는데 소리가 으스스하다고 귀신 새라고 해. 사람마다, 기분에 따라 다르게 들린대.”

누군가는 그 울음소리를 듣고 기괴하다고, 누구는 재밌다고, 누구는 슬프다고 했다.


6

떠들썩했던 소문은 고3 수험 생활과 모의고사에 잦아들었다. 희진의 말처럼 남 이야기를 수군거리는 것은 자신에게 집중할 일 없는 사람들의 가벼운 유흥에 불과했다.


7

도담은 외로움이 사람으로 하여금 얼마나 잘못된 선택을 하게 만드는가 생각했다.


8

사랑이면 다 되는 걸까. 도담은 술을 마시며 창석을 생각했다. 엄마는 내가 해솔과 만나서는 안 된다는데 아빠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고 싶었다.

“예지야, 넌 감정에도 정당함이 있다고 생각해?”


9

“나 인생을 낭비 없이 백 프로 살고 싶어.”

해솔이 말했다.

“나도 그러고 싶어.”

도담도 그 말에 동의했으나 그에 대한 해석은 달랐다. 해솔은 나태하지 않고 성실한 삶을 추구했고 도담은 늘 새로운 자극을 추구했다.

“나는 모든 가능성을 살 거야. 여행처럼 신나게 살 거고, 모든 걸 경험해 볼 거야.”


10

도담은 불행의 크기를 다이아몬드라도 되는 양 자신의 것과 남의 것을 비교했다. 도담에게는 여전히 자신이 가진 불행이 가장 크고 가장 값졌다.


11

분노는 그 분노의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 앞에서 더욱 쉽게 뿜어져 나온다.


12

도담은 그 말을 듣고 해솔을 떠올렸다. 해솔과 그렇게 지냈다면 어땠을까. 승주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관계를 흐릿하게 맺는 만큼 이별도 모호해지는 게 그의 방법이었다.


13

승주도 떠올리기 싫은 실망스러운 기억을 가졌구나. 사람들은 저마다 깊은 우물을 가지고 살아가는구나. 도담은 동질감을 느꼈다.


14

“맞아요. 위대한 사랑 이야기라고 하는 「타이타닉」도 결국에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람을 위해 대신 죽을 정도로 도취되었던 거 아닌가요? 그 둘이 살아남았으면 결국 「레볼루셔너리 로드」처럼 진절머리 나는 결혼 생활을 했을 걸요.”


15

“도담 씨, 그런 얘기 들어 본 적 없어? 7년인가 지나면 사람의 몸을 이루고 있는 모든 세포가 교체된대. 10년이면 도담 씨 온몸의 세포가 교체된 거야. 그러면 이제 도담 씨도 그 사람도 그때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지 않을까?”


16

승주는 자신이 이전에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할 수가 없기에, 자신이 사랑을 줄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사랑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달리 보면 승주는 계산이 정확한 사람이었다.


17

내가 얼마나 수영을 잘했던가. 수면에 나와 눈부신 햇살을 받으니 살아 숨 쉬는 그 자체로 좋았다. 지나간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있을지 모를 미래에 목매지도 않으면서 진정으로 살고 싶어졌다. 낙관도 비관도 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거센 물살을 헤엄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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