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그의 회사에서 나온 후 할 일이 없다. 일 년을 목표로 휴직을 내었는데 그의 태도 변화에서 더는 버틸 수가 없었다. 잘못되었다고 느끼게 되면 얼른 정리하는 것이 맞다. 그래서 다시 대구로 내려왔다.
바쁘게 돌아가지 않으면 늘 허전함을 느끼는 나는 또 일정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러다 소선 레스토랑 대표가 같이 아침에 수영하러 가자고 한다. 수영은 언젠가는 해야 할 투두리스트 중에 하나였었다. 그렇게 수영 아침반을 시작하게 되었다. 피트니스 대회 출전 이후 근력관리를 위해 꾸준히 해오고 있던 웨이트와 함께 수영까지 하니 아침이 더 바빠졌다. 이어서 드럼까지 시작하니 아침 6시부터 점심때까지는 장소만 바뀌었을 뿐 회사를 다닐 때처럼 바쁘다.
오전 7시 수영을 한다. 한 달 만에 자유형과 배형을 배운 후 레벨이 한 단계 올라갔다. 옆 레인으로 옮겨서 평형을 배우고 이제 접형 기초를 배우고 있는 중이다. 처음에는 몸매가 드러나는 수영복에 깐 달걀 두상을 만들어 주는 수영모를 쓰고 컨트롤할 줄 모르던 팔다리를 허우적 거리던 것이 어색했는데 자유형, 배형이 25M까지 쉬지않고 가는 정도가 되니 남의 시선에서도 좀 편해졌고 수영만 신경 쓰게 된다. 그렇게 물과 놀이를 마친후에는 웨이트를 하러 온다. 운동의 순서는 무산소를 하고 유산소를 하라고 한다. 그래야 운동 시 발생했던 젖산도 없애고 또 인체가 꺼내 쓰는 에너지원의 순서가 탄수화물 - 지방 - 단백질 순이라 웨이트에 수영을 하는 게 이론상으로 맞겠지만 7시 이전에 웨이트는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계산이 되지 않는다.
아침에 수영을 마치고 다니는 헬스장으로 갔다. 여성스러운 쉐이프를 만들어주려면 어깨 넓히고 골반을 강화하고 허리를 짤록하게 만들어야 한다. 오늘은 어깨와 등 상부 운동을 하기로 하고 무게를 15KG부터 시작했다. 횟수를 마칠 때마다 중량을 한 단계식 올려가면서 당길 때는 가슴을 펴는데 주의하고 놓을 때에도 등 상부의 긴장을 유지하는데 집중하면서 4세트를 마쳤다. 동시에 아이고 힘들어~가 무의식 중에 입에서 나온다. 아차!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의 뇌는 거짓과 참을 구분 못해서 내뱉는 데로 믿어버리는 성질이 있는데 내가 지금 힘들다고 한 것이다. 안돼 안되지 하면서 힘들지만 할 수 있다! 를 의도적으로 말한다.
2022년 피트니스 대회에 출전한 이후 소홀했던 운동을 올해 다시 열심히 하기 시작했는데 IFFB Pro를 목표로 운동하고 있던 담당 트레이너가 '올해 대회 한번 같이 나가시죠?' 한다. 그때는 솔깃했다. 왜냐면 전에 첫 번째 대회는 떨리고 긴장되어서 무대 위에서 제대로 보여주기가 힘들지만 두 번째 대회는 승부를 떠나서 무대를 진정으로 즐기고 내려왔다는 선 경험자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삼월에 그의 사업을 돕고자 용인으로 가면서 모든 것이 중단이 되었지만 언젠가는 두 번째 무대도 만들어 보고 싶다.
어깨와 등상부 6종 근력운동을 한 후 땀복을 입고 천국의 계단을 이십 분간 걸었다. 허리 뒷부분에 살짝 잡히는 지방을 없애기 위해서는 50분 이상은 걸어야 할 것 같은데 언제나 오른쪽 무릎의 통증이 내 발목을 잡는다. 대신 긴팔 면티 위에 두 겹의 땀복을 입고 20분을 걸으면 땀이 폭포같이 흘러내리는데 이것으로 스스로 충분하다는 위로는 하고는 샤워실로 이동했다.
요즘 헬스장에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분들이 많이 보인다. 용인에 잠시 있을 때 정자동에서 멤버십으로 운영되고 헬스장을 다녔었는데 핫한 지역이니까 몸 좋은 젊은 친구들이 많이 오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실제는 정 반대였다. 몸 좋은 MZ세대는 가물에 콩 나듯이 보이고 주 연령대가 60-70대였다. 아침잠도 적고 또 정년 후 출근할 직장이 없는 시니어들이 아침에 운동을 하러 와서 내가 시니어들만 본 건지는 모르겠다. 다른 사람의 말에 의하면 초저녁 시간이 지나면 직장에서 돌아온 젊은 사람들이 운동하러 온다고 한다.
시니어들이 그렇게 몸을 챙기는 줄 그때 알았다. 대구에서 올라간 촌사람이라 분위기 적응 못하면 어쩌지 하고 걱정했던 것은 기우였다. 내가 제일 운동하는 사람처럼 옷을 입고 노출도 제일 많이 했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헬스장에서 제공하는 반바지에 반팔티를 입고 운동을 하던지, 아니면 여자들은 긴 레깅스에 브라탑이나 탱크톱을 입은 후 그 위에 얇은 잠바나 커버업을 걸쳤다. 반면 내가 레깅스 쇼츠에 브라탑을 입고 들어가면 어느 곳에서 운동을 하든 사람들이 쳐다본다. 시선을 돌릴 때마다 수많은 눈들과 마주쳤다. 서울에서 이런 이목을 받다니 이외였다.
지금 운동하러 다니는 이곳에도 아침시간대에 남편과 자녀들을 출근과 학교에 보낸 후 운동하러 오는 중년의 여성들이 많다. 그들의 특징은 어디서든 꼭 뭉친다는데 있다. 얼굴 몇 번 마주치면 통성명과 나이를 파악하게 되고 이어서 언니 동생이 정해진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중년 여성분들이 깔깔거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듣지 않으려고 등을 돌려도 좁은 공간에서 그녀들의 말소리는 등뒤로 다 들리기 마련이다. 그중 한 분이 말씀하신다.
"언니, 어제 뭐 했어?"
"돼지고기 안심사서 돈가스 만들어서 아들 며느리 집에 갔다 주었어, 얘들이 뭐 할 줄을 알아야지, 장가를 갔으면 뭘 해? 맞벌이하느라 밥 할 시간 없으니 몸에 좋지도 않은 외식만 하고 집은 치우지 않아 정신이 없고, 그러니 내가 이 나이 되어도 장 봐서 음식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주고 해야 한다니까"
"얼마 전에는 군대에 있는 작은 아들한테 면회 가서 맛있는 거 사주고 했다고 하지 않았어?"
" 그럼 어떡해, 고생하고 있는데 내가 가서 챙겨야지"
"에고 자식은 나이가 적으나 많으나 손이 너무 많이 가~, 안 그래 언니?"
"그래 그래 무자식이 상팔자라니까~언제쯤 되면 이런 걱정 없이 살게 될까?"
나이가 오십후반이 되어서도 그녀들에게는 여전히 남편과 자식이 최우선이다. 그것이 자신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인 것처럼 엄마라면 아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우주의 가장 큰 기적인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왜 그녀들은 세상의 중심은 외부에 두고 있는 것일까. 남편이나 자식이 아닌 나에게 중심을 두어야 세상의 모든 에너지를 담을 그릇으로서 역할을 하게 될 것인데 하는 생각이 든다.
삼십 대 후반일 때 미국 유학을 준비하면서 000 어학원 토요일 핫토픽반을 다닌 적이 있다. 그곳에는 나이가 오십 대인 병원장 사모님인 리디아가 있었다. 이십 대에 결혼을 해서 대학 졸업 후 다니던 무역회사를 그만두고 아이들 키우는 것에만 집중하던 분이었다. 그녀는 자기 나이 또래의 분들과의 대화에서 재미를 못 느끼고 토요일 핫토픽반에서 그녀보다 스무 살은 적은 우리들과 이야기하는 재미로 어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녀의 쌍둥이 아들이 대학입학시험을 치르게 되고 고려대에 붙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 아들 둘을 동시에 서울로 보내고 난 후에 그녀는 허전함과 공허함을 심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정신을 분산시키려고 일부러 과외를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그녀는 어느 날 별다른 설명도 없이 수년간 재밌게 다니던 핫토픽반을 나오지 않았다.
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후 이십 년이 지났다. 이제 내가 그녀의 나이가 되었다. 그때 또래와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시간을 보내는 그녀를 보면서 왠지 나의 미래 모습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내 주변에 결은 다르지만 그냥 그냥 지내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과는 시간을 함께 보내도 가슴속의 텅 빔은 여전히 남아있다. 오히려 헤어질 때 가슴이 더 텅 빈듯하다. 그들과 보낸 내 시간이 너무 아깝다. 책을 보든, 드럼을 치든, 운동을 하든 공부를 하든 더 생산적인 것을 할 수도 있었는데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 말을 들으려 애를 쓰니 에너지만 고갈된다. 공부나 책을 보았다면 내면을 건강하게 했을 것이고 드럼이나 웨이트 등 좋아하는 것을 했다면 자존감이 더 높아졌을 것이다.
한 4, 5년 전만 해도 혼자서 여기저기 배우러 다니면서 외롭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럼에도 꿋꿋이 계속하다 보니 어느덧 내 주변에는 백그라운드는 다르지만 추구하는 것을 같은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알게 된 그들은 내가 어려울 때 불쑥불쑥 나타나서 나를 위로해 주고 내 등을 토닥거려 준다.
시절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처음 누군가로부터 시절인연을 믿는다는 말을 들을 때는 많이 서운했었다. 친하고 싶은 사람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그가 나에게 방어벽을 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다 시절인연이다. 나의 솔메이트인 미미가 2022년 8월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생긴 빈자리를 그가 나타나면서 지금까지 재미있게 살 수 있었고, 그와 헤어진 직후 그의 분노와 협박에 시달리고 있을 때에는 마음공부를 하면서 만났던 사부들이 나를 위로해주고 있다. 힘든 시기를 잘지내고 있는게 알고보면 모두 시절인연 덕분이다.
그중 한 명은 나 공부와 사람 공부가 미숙한 나에게 말한다.
"이렇게 자기를 몰라서 어떡하지? 세상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과 관련된 것에 최우선을 두어야지 그것과 관련 없는 것들에 그렇게 마음 아파하면 어떡해? 그리고 그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야. 그가 화가 나서 욕설을 했다는 거가 본질은 아니잖아, 그 사람의 내면에 있는 진짜 생각은 무엇인지를 알려고 해야지. 욕설했다는 것에 가로막혀서 그 마음을 못 보고 있잖아"
다시 한번 나의 어리석음과 쓸데없는 걱정에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동탄에서 양산에서 곡성에서 부산에서 그렇게 좋은 인연들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어려울 때마다 불쑥불쑥 나타나는 귀인들로 인해 오늘을 버티고 있는 것 같다. 그들로 인해 부족하지만 내적 성장을 멈추지 않고 계속할 수 있는 것 같다.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그 답은 내 안에 있다. 한 남자의 아내로서, 아이들의 엄마로서 사는 삶은 희생의 길이다. 내 삶에 대한 피동적인 자세이고 남에게 주도권을 넘겨버린 것이다. 주도권을 포기해 버린 삶을 선택하고 살면서 어떻게 내가 이 땅에 온 이유를 찾을 수 있다는 건가.
어떤 쓰임으로 살고 싶은가. 외부가 아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라. 그 답은 내 안에 있다. 나를 인간으로 인식하기 이전에 먼저 존재로서 인식을 한 후, 나와 내 안의 무의식이 가진고 있는 무한한 에너지가 다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진정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언제 제일 행복한지를 생각해 보자. 그리고 내가 원하는 상태를 선포하자. 선포한다는 것은 지금 원하고 있는 상태가 이미 된 것처럼 나 자신을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시공간적 에너지들이 반응을 하고 스스로 그 일들이 일어나도록 하다.
알아차림이 중요하다. 몸이 말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먼저 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 등 오감을 민감하게 활성화시키자. 민감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순간순간에 오롯이 집중해야 한다. 지금 있는 그 자리에 백 퍼센트 집중하고 현존함으로써 우리의 오감은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한다. 오감이 민감해지고 활성화되면 무의식의 무한한 에너지를 사용하게 되는 육감의 문이 열리는 것이다. 육감이란 사물이나 현상의 본질을 직관적으로 꿰뚫어 볼 수 있는 힘이다. 주변에 흔들리지 않고 I AM(나)으로 센터링(Centering)되어 우주와 연결되는 상태이다.
그러므로 여자여, 지금 내 안에 머물라. 그리고 순간에 현존하라. 내부에서 파동으로 전달되는 에너지를 오감으로 느끼며 육감을 개방하자. 본질을 깨닫는 순간을 지나 내면의 에너지를 외부와 연결하여 평온한 우주 어머니의 품 안에 머무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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