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속 Jul 20. 2024

사모님의 값진 선물

  그녀는 찻잔 속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홍차를 응시한 채 생각에 잠겼다. 합의금으로 마련한 에르메스 티팟의 고고한 자태를 보며 손잡이를 매만져봤다. 이깟게 뭐라고 주도권을 빼앗겼을까. 스스로가 어이가 없었다.

  종합병원 사모는 금융치료  아파트 주변에서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80평대 고가의 집이 홀랑 팔리긴 만무하고 그렇다고 아이가 잘 다니는 영어유치원을 관둘 리도 없고 사모는 시터를 고용하여 등하원 때 부딪혀야 하는 학부모들을 피했다. 그녀는 원장에게 합의금을 받은 후 사모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했고 알고 싶지 않았지만 당사자에게  직접 사과를 받지 못하고 일이 마무리된 건 아쉬웠다.

  그녀는 도준맘을 따로 만나 결정적 증거를 준 고마움을 담아 카드지갑을 선물했는데 극구 사양하는걸 억지로 손에 쥐어주고 도망쳤다. 그녀가 포함된 학부모들의 단톡이 새로 만들어졌고 그사이 병원 사모는 카톡을 탈퇴했다. 물을 흐리던 미꾸라지가 사라진 단톡에서 학부모들은 서로 학원 정보를 나누고 전시회나 체험극 같은 소식을 알리며 일상을 교류했다. 그녀도 기안 84의 전시회 일정을 그들과 공유하며 일상을 되찾았다. 그리고 모두가 입을 맞춘 듯 애초에 없던 사람인양 누구도 병원 사모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한 가지 눈에 띄게 달라진 게 있다면 개인플레이를 하게 됐다는 것. 정보 교류만 있을 뿐 어울려 식사를 한다거나 집으로 초대를 한다거나 친밀해지려 노력하지 않았다. 아, 물론 누가 누가 더 잘 사나 돈자랑도 없었다. 아쉬울 게 없는 사모님들은 사람도 아쉽지 않아 혼자 잘들 놀았다.

  그녀는 아이의 이름을 새로 작명하러 지역에서 유명한 철학원을 찾았다. 시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 단명한다니 그냥 흘리기엔 찝찝했다. 안 좋은 이름이 맞았고 좋은 이름을 받아와 개명 신청을 했다. 만약 그가 아니었다면 아이의 이름을 바꿀 생각은 하지 못했을 텐데... 덕분에 아이가 무병장수할 새 이름도 짓고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녀는 그동안 소위 사모님이라 불리는 전업주부들을 관찰하며 기본소양에 대해 나름의 정의를 내렸다. 

  값비싼 명품으로 외모를 치장하고 돈 잘 버는 남편덕에 호화 아파트에 산다고 전부 사모님은 아니었다. 졸부와 사모님의 한 끗은 염치의 유무였다. 적어도 남에게 명품자랑, 돈 자랑을 하고 싶다면 두당 삼만 원 이상의 밥을 사야 마땅했다.

  그녀는 자본주의의 특혜를 톡톡히 받고 있어 사회주의에 비관적이 자신에겐 관대하게 돈을 펑펑 쓰면서 남에겐 인색한 사람은 왠지 모르게 얄미웠다. 이를테면 새로 산 명품가방을 실컷 자랑해 놓고 계산할 땐 한발 뒤로 뺀다거나 자신은 명품 브랜드 화장품만 쓰면서 남에게 선물할 땐 홈쇼핑에서 덤으로 주는 크림을 생색내며 주는 속이 훤한 얄팍한 행동말이다.

  진정한 사모님이라면 교양이 있어야지. 그녀는 교양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고 평소 생활 습관에서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종합병원 사모의 태생이 부유한 집안의 자제는 아니었을 거란 합리적인 의심을 가졌다. 그녀는 자신보다 부자를 만나면 쫄보가 됐는데 비록 외면은 그들처럼 화려하지만 내면아직도 궁핍한 것이 아닌가 자조했다.

  그녀는 남들 눈에 자신은 어떤 사람으 비칠지 궁금했다. 그림 좋아하는 사업가 남편을 둔 팔자 좋은 여자로 보일까? 아니면 남편 내조와 아이들 케어에 온 힘을 쏟는 희생적인 전업주부로 보일까? 오늘도 그 질문의 답을 찾는 긴 여정이 시작된다.


  "빨리 일어나 이러다 셔틀 놓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