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 지드의 양면적인 삶을 통해 얻은 지상의 양식을 풍요롭게 하는 방법
새벽 독서 모임에서 고전을 읽기 시작했다. 리더 선배님이 청춘에 읽었던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이 좋았던 기억이 있어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과 <새 양식>이 한 권에 담겨있는 책을 선정하였다. 자비로운 태양이 지상 위를 비추며 풍요로운 열매를 맺고 있는 듯한 표지가 인상적이었다. 배경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이 책을 받았을 때 지상에서의 행복과 자연에 대한 예찬에 대한 글이 아닐까 상상했다.
나의 상상은 그저 상상일 뿐이었다. <지상의 양식>은 내세의 행복이 아닌 지상의 현실에서 쾌락과 자유를 찬미하는 산문시 형태의 작품이다. 소설로 분류되는 데 책 속의 화자 시인이 제자 나타나엘에게 인생의 조언을 하고 자신의 스승 메날크에게 받은 영감을 서술하는 방식이다.
앙드레 지드가 생각의 흐름에 따라 기술하여 사실 그의 생각을 따라가기가 벅차다. 성경, 그리스·로마 신화, 단테의 <신곡>, 괴테의 <파우스트> 등을 먼저 다 읽었다면 <지상의 양식>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을까. 배경지식이 부족한 나에게 28살의 젊은 지드의 말은 정돈되지 않은 생각처럼 읽혔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지상의 양식>은 출판된 후, 초판 500부가 다 판매되기까지 10년 이상의 세월이 걸렸다고 한다. 그 당시 사람들도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이었겠구나 싶어 나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새 양식>은 <지상의 양식>이 출간되고 난 후 20년이 지나고 지드가 48세 때 집필을 시작하여 66세 때 출판한 책이다. 그래서 인지 <지상의 양식>처럼 개인의 쾌락과 자유에 흥분한 젊은 영혼이 아니라 <새 양식>에서는 다음 세대를 위해 조언하는 노년의 화자가 등장한다. 그는 인간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나의 행복을 위해서 타인의 행복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이제 다 살았다.
이제는 네가 살아야 할 차례다.
이제는 나의 젊음이 네 안에서 연장될 것이다.
그 역량을 너에게 건넨다.
네가 나를 계승한다고 느끼면
내 죽음을 더 잘 수긍할 것이다.
나의 희망을 너에게 넘겨주마.
(...)
동지여, 사람들이 너에게 제안하는 삶을 그대로 수락하지 마라.
삶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확신을 절대 거두지 마라.
그것은 너의 삶이고 다른 사람들의 삶이다.
삶의 거의 모든 고통을 책임지는 자는 신이 아니라
인간임을 네가 깨닫게 될 그날부터,
너는 그 고통들을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 새 양식 P.316 -
처음에는 지드가 말하는 쾌락은 지적인 유희와 같은 쾌락을 의미하는 줄로만 알았다. 계속 읽어나가다 보니 동성애를 포함한 육체적 쾌락이나 도덕이나 사회적 규범을 의도적으로 거스르는 행위와 태도를 의미하는 배덕주의를 포함하고 있어 놀랍기도 하면서 그의 삶이 궁금해졌다.
성품이 관대했던 아버지는 지드가 열 두 살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나고 그는 어머니의 청교도적인 엄격한 가르침 아래에서 성장한다. 외숙모의 외도를 목격하고 그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던 사촌 누이 마들렌에게 사랑을 느끼고 그것은 자신의 의무이며 자신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한다. 지드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그의 대표작인 <좁은 문>을 집필한다.
지드의 인생을 이해하기 위해서 <좁은 문>을 읽었다. 첫사랑을 시작할 때의 그 경이로움과 사랑이 식어가는 과정에 대한 내면이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어 단숨에 읽었다. 단, <좁은 문>의 결말은 결혼에 실패하고 사촌 누이 알리사(마들렌)가 외롭게 요양원에서 죽는 장면으로 끝이 나지만 실제로 지드는 사촌 누이 마들렌과 결혼을 한다. 하지만 이들의 결혼은 결코 해피엔딩이 아니었다. 마들렌같이 고상하고 순결한 여인에게 육체적인 욕망이 없으리라고 믿고 그녀와는 육체적 관계가 없는 백색 결혼을 하고 지드 자신은 혼외정사와 동성애를 즐겼다.
평소에 좋은 글은 좋은 인생에서 나온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지만 지드의 삶을 보고는 저자의 삶과 문학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하기 힘들었다. 그래서인지 20세기 프랑스 문학에서도 앙드레 지드는 논란의 대상이었다. 현대사상의 가장 자유롭고 인본주의적인 해방자라는 평가와는 반대로 종교적이고 윤리적인 면에서는 악마의 화신으로 매도되었다. 지드에 대한 엇갈린 평가처럼 나 역시 그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무척 혼란스러웠다. 그런 나를 위해 지드는 <지상의 양식>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너는 인간에게 이 모든 다양성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너와 다르다고 비난하는 일을 그만두어라.
-지상의 양식 P.292-
소설을 읽는 이유가 인생이 한 번뿐이기 때문이라는 이동진 평론가의 말처럼 타인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소설을 읽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불완전하다는 사실이 진실임에도 우리는 나와 다른 누군가를 이상하게 여기고 비난한다. 나 역시 실수하고 실패하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나와 타인을 좀 더 너그럽게 바라보는 것이 이 지상에서의 양식을 풍요롭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