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의 인생과 융의 심리학, 그노시스 철학까지 녹아있는 인생의 필독서
이번주 새벽에는 청춘의 상징과도 같은 책, <데미안>을 꺼내 읽었다. 청소년기에 한 번쯤은 읽어본, 혹은 읽었다고 착각할 정도로 유명한 책이 바로 <데미안>이다. 나 역시 중학교 시절 책을 좋아했던 단짝 친구와 이 책을 함께 읽고 서로를 데미안이라 불렀다. 그때 당시 읽었던 데미안을 떠올려보면, 모범생의 길을 따라가던 나는 청소년 필독서로 이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뭔가 있어 보이는 문장들이 막연하게 좋았던 느낌만이 남아있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데미안의 내용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고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이 한 문장만 내 기억 속 한쪽 구석에 남아있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이 다섯 문장은 주인공 싱클레어의 친구 데미안이 싱클레어가 그린 그림을 보고 보낸 답장이다. 다시 <데미안>을 읽어보니 이 다섯 문장이 <데미안>의 내용을 압축한 문장이었다. 문장은 간결하고 단순하게 보이지만 이것을 이해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헤세의 인생과 융의 분석 심리학, 고대 그노시스 철학까지 아우르는 배경지식이 있어야 좀 더 깊은 이해가 가능하다. 아, <데미안>이 이렇게 난해한 책이었다니.... 어른의 나이인 우리가 이해하기에도 벅차다는 생각에 청소년 필독서라는 타이틀을 떼어내고 인생의 필독서라는 타이틀을 붙여주고 싶다.
이 책을 여러 시기에 여러 번 읽은 회장님은 10대엔 완독을 위해, 20대에는 지적 허영심을 위해, 30대는 아이들을 위해, 40대에는 자신의 삶을 위해 <데미안>을 읽었는 데 50대인 지금 다시 읽는 <데미안>에서 내가 알을 깨치고 나아갈 수 있는 힘은 어찌보면 알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에 깊이 공감했다. 알은 내 생명의 원천이고 그 속에서 성장하지만 그것을 파괴하고 나와야만 진정한 내가 창조될 수 있다. 헤세는 성장기 시절의 방황을 경험으로 이것을 깨달았음에 틀림없다.
독실한 신앙에 바탕을 둔 집안 분위기에서 자라난 헤세는 부모가 만들어 준 알 속에서 나오기 위해 방황을 한다. 아들을 성직자로 키우려고 했던 부모의 손에 이끌려 헤세는 신학교에 입학하지만 시인 이외에는 아무것도 되지 않고자 했기에 학교에서 도망친다. 자살을 시도하여 정신 병원에 입원한 경험도 있고 서점 점원, 시계 공장 견습공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며 홀로 작가로서의 길을 가기 위해 고투하여 결국은 자신에게 주어진 세계를 파괴하고 자신이 창조한 새가 되어 날아 올랐다.
헤세는 스위스 정신과 의사이자 분석 심리학의 창시자인 카를 구스타프 융의 제자인 랑 박사에게 상담 치료를 받았다. 이 경험은 <데미안> 집필에 영향을 주었다. 융은 인간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기실현, 즉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온전한 개인이 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는 데 <데미안>의 주인공 싱클레어도 친구 데미안과 베아트리체, 피스토리우스, 에바 부인을 통해 진정한 자신의 자아를 발견한다.
헤세는 영적인 깨달음을 추구하며 영지주의라고도 불리는 고대 그노시스 철학에 몰두한 융과 랑 박사를 통해 아브락사스를 알게 되었다. 융의 저서 <죽은 자를 위한 7가지 설법>에는 아브락사스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는데 아브라삭스는 선과 악,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양면적인 신으로 닭의 머리, 인간의 몸, 뱀의 다리를 가지고 방패와 채찍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모습은 그의 복합적인 성격을 상징한다.
싱클레어는 아브락사스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데미안의 어머니인 에바 부인을 흠모한다. 그녀는 데미안과 비슷한 외모에 남자처럼 보이기도 하고 모성애와 엄격함, 깊은 열정을 지녔고 아름답고 매혹적인, 아름답긴 해도 다가갈 수 없는 존재였으며 데몬이자 어머니, 싱클레어의 운명이자 연인이었다. 싱클레어는 데미안과 에바 부인과 함께 평화로운 행복을 느낀다.
싱클레어의 행복은 예상대로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싱클레어와 데미안은 파괴와 창조가 공존하는 전쟁에 참여한다. 전쟁터에서 폭격으로 다쳐 누워있는 싱클레어는 옆 침대에서 데미안을 발견한다. 데미안은 에바 부인이 싱클레어에게 전해주는 입맞춤과 함께 사라지면서 이야기는 끝난다.
이번 주는 에 바부인같은 리더 선배님의 양질의 질문으로 풍성한 시간이었다.
✅ 생각해보기
1. 나에게는 어떤 모습의 두 세계가 있을까?
2. 내 주변에 데미안 같은 인물이 있는가?
3. 나는 어떤 존재 또 무엇에 의존하고 살아가는가?
4. 나는 어떤 일들에 흥미로워하며 열광하는가?
5. '언제나 물어야 해,'...나에게 자주하게 되는 질문은?
6. 나는 어떤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왔는지...그것은 지금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7. 지금 내가 깨야 하는 알은 무엇인가?
8. 피스토리우스가 싱클레어에게 하였듯이 내 마음에 망치질을 해 준 사람은 누구인가?
9. 진정한 나 자신이 되는 길은 무엇인가?
10. 진정한 나 자신이 되는 길을 방해하는 자기검열이나 회피의 상황을 벗어나는 나만의 방법은?
11. 데미안의 집처럼 나를 풍요롭고 행복하게 하는 장소나 상황 아니면 시간들이 있었는가?
리더 선배님은 자기 자신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라고 말씀하셨고 이 질문들로 나의 내면을 좀 더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내 마음에 망치질을 해준 사람에 대한 질문이었다. 이에 많은 선배님들이 남편과 책이라고 답했고 나 역시 책 그리고 새온독 선배님들이라고 답했다.
<데미안>에서 노자를 발견하고 노자의 말씀을 나누어주시는 선배님들은 나에게 망치같은 분들이다. 새온독 선배님 한 분이 망치라는 나의 말에 동감해주시며 책은 재방송이지만 새온독에서 나누는 베스(Butterfly Effect Speech)는 생방송이라서 더 생생하게 와닿는다고 말씀해주셨다. 선배님의 말씀은 또 다른 망치질이 되어 나에게 되돌아왔다. 이렇게 우리는 진화하는 공동체인 새온독에서 시공간의 일부를 공유하며 매일 새벽 자신을 둘러싼 알을 조금씩 깨뜨려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