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다양한 안주로 모십니다 <내 고향 부산, 동래 맛집 1편>
밥집이 되었든 술집이 되었든 기본적으로 한 가지 메뉴에 충실한 곳이 신뢰를 주곤 한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여러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는 욕심은 자칫 업장의 아이덴티티가 모호해진다거나 여러 가지의 메뉴가 다 그저 그래서 기본적으로 '맛이 그냥 그런' 식당으로 판별 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음식의 과공급 시대에 주력메뉴 하나로도 맛집 인정을 받기란 하늘의 별따기라, 보통의 식당들은 필살기 카드 하나와 여러 가지의 사이드 카드로 업장을 운영하는데, 오늘 소개할 두 곳의 식당들은 보스몹을 때려죽이고도 남는 필살기 카드가 여러 장인 그런 집들이다.
우선, 내가 생각하는 '맛집'의 기준은
1) 처음 맛보았을 때 "우와" 감탄사가 나온다기보다, 마지막 한 입까지 "이 집 괜찮네"를 여러 번 말하게 하며,
2) 다른 식당들과는 어떠한 차별점이 명백하게 존재하고,
3) 적당량의 가격(저렴하든 비싸든)이 납득 가능한 범위에 있어 재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야 한다.
의외로 나의 주관적인 맛집 기준 모두를 가진 식당은 흔하지 않은데,
아래 두 곳은 내 고향 부산에 소재하고 있으며 나의 맛집의 기준을 충족해 감히 '최애 술집'으로 판명난 곳들이다.
1. 40종이 넘는 안주가 모두 미친 맛의 동래 <복천안주마을>
타지 생활 3년 차, 부산 출신이라고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공통되게 떠올리는 여러 이미지가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빈도로 언급되는 키워드는 '해물'인데, 서울에서 생활하며 오히려 부산 사람들 보다 서울 사람들이 회나 해물류를 안주로서 훨씬 선호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너무 흔해서일까. 개인적인 경험상 부산사람들은 여기에서도 저기에서도 예나 지금이나 발에 치이는 해산물에 대해서는 특별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또, 꼭 맛집이 아니라 동네에 있는 횟집도 웬만하면 회나 해산물의 신선도나 맛이 상향평준화 되어있기 때문에 '맛있는 해산물'에 대한 기준도 높다.
이 집은 횟집도, '해물'만을 주력으로 하는 식당도 아니다. 메뉴판을 보면 어마어마한 숫자의 메뉴들이 빼곡하게 적혀있는 것도 모자라 추가 메뉴까지 구비되어 있고, 처음 방문한 사람들은 여기서부터 어지럼증을 느낄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동래 <복천안주마을>을 N번째 방문한 사람으로서, 혹자의 첫 방문에 이 흘러넘치는 메뉴의 홍수 속에서 딱 하나만 추천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여수 노랑새조개숙회를 권할 것이다. 생소한 이름의 새조개를 이 집에서 처음 접했는데, 비린내 없는 쫄깃한 식감이 평소 자주 접할 수 있는 조개류와는 조금 다르다. 같이 방문했던 친한 여수 출신의 언니에 의하면 여수에서 유명한 음식인데 부산에서는 처음 마주했다 했고 고향인 여수에서 먹은 맛과 견주어도 뒤처지지 않는다고 했다.
새조개숙회를 가볍게 애피타이저로 맛봤다면, 후포리 백골뱅이탕이나 알곤이탕을 주문해 따뜻하면서 한편으로는 시원한 소주 안주 본식을 즐기면 된다. 개인적인 선호도가 그렇게 높지 않은 재료인 골뱅이임에도 시원한 국물과 어마어마한 크기의 골뱅이, 그리고 계속되는 육수리필에 쥐도 새도 모르게 알딸딸함을 느낄 수 있었다.
단백질과 국물을 채웠으면 그 다음 나올 친구는 당연지사 탄수화물이다. 복천안주마을에 여러 번 방문했지만 그때마다 파김치+짜파게티 조합은 항상 빼놓지 않고 주문했고, 일행이 한 명씩 돌아가면서 입안에 들어오는 강렬한 MSG의 맛과 감칠맛이 터지는 파김치 조합을 맛보면 한 턴만 돌아도 금방 바닥난다. 그리고 사이드메뉴에 계란프라이 4알을 3000원에 판매하시는데, 파김치+짜파게티와 함께 주문해 반숙계란을 함께 먹으면 취하는 술을 잠정적으로 리셋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안정감을 얻을 수 있다.
이 외에도, 문어숙회, 오징어무침, 꽃게탕 등 해물메뉴들은 두 말하면 입 아플 정도로 그 맛은 보장되어 있다. 거기다가 이 집은 비해물 메뉴도 잘한다. 함께 간 언니의 요청으로 소불고기 전골을 한 번 주문해 맛본 적이 있는데, 달짝지근한 자작한 국물에 아낌없이 들어있는 불고기와 당면은 말해 뭐 해 소주 안주 그 자체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집은 해물을 좋아하든 아니든 단백질위주의 술안주를 좋아하든 탄수화물을 좋아하든, 그게 누구든 넓은 스펙트럼의 손님들에게서 사랑받을 수 있는 집이다.
40개가 족히 넘는 안주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맛있고, 짜거나 자극적이기보단 재료 본연의 맛을 살려 '술안주'에 적합하도록 요리한 메뉴들은 주당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런지 항상 웨이팅이 있는 편이고 늦게 방문하는 날이면 인기 메뉴들은 품절이 돼버리기 일쑤이지만, 상경한 지금도 부산에 방문하게 되면 꼭 한 번은 방문하는 내 마음속 1위 안주 최고 맛집이다.
2. 부산에서 느끼는 정겨운 강원도 바이브 밑반찬 12종의 동래 <강원도 드래요>
이 집은 방문하게 된 지 그리 오래되진 않았다.
부산에는 해운대, 광안리, 남포동... 등 소위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동네들에도 정말 많은 맛집들이 소재하고 있지만 20대 초중반 시절 나의 주 활동반경은 대학가와 가까운 동네인 금정구나 동래구였다. 그래서인지 웬만한 맛집들은 이름을 들어보거나 방문해 본 적이 있었고, 주변 지인들과도 자주 방문하는 곳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편이었다.
어느 날 내가 좋아하는 부산 맛집 인플루언서께서 동래구 명륜동 근처에 12종의 밑반찬과 끝내주는 메뉴들이 있다며 작성하신 글을 보고는 호기심이 생겼다. 우리의 속칭 나와바리 구역에 위치한 맛집 리스트에는 없었던 새로 등장한 식당이었으며 주력메뉴가 경상도 사람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강원도 음식이라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왔기 때문에 부산에 방문했을 때 친하게 지내는 언니들과 함께 주저하지 않고 방문했다.
메뉴는 한식 냄비 요리 위주인데 가짓수가 많았다. 백숙, 닭볶음탕, 해물탕, 스지오뎅탕 등 쉽게 고를 수 없는 화려한 메뉴진에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첫인상을 결정하는 첫 방문 메뉴로 어떤 음식을 선택할지 머리를 모아야 했고 고뇌 끝에 선택한 메뉴는 한우스지&한우우족 수육이었다.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
우선 내가 먹어본 스지탕, 혹은 수육 중에서 가장 국물이 진했다. 진함을 넘어서 사골의 깊이가 깊어서 시원함이 느껴지는 고소함 때문에, 다들 국물 한 입을 먹자마자 진실의 미간 발동 후 아무 말 없이 각자의 소주잔을 채웠다. 거의 태어나서 먹어본 수육 국물 중 가장 맛있다고 감히 이야기할 수 있는데, 국물도 국물이지만 들어있는 스지의 크기가 일반적인 크기 수준을 한참 넘어섰다. 거기에 젓가락만 갖다 대도 뼈와 살이 분리되는 쫄깃한 우족과 부추를 함께 먹으면 이 집은 과음을 참기 정말 힘든 집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이 집이 특별한 점은 비단 '맛'때문은 아닌데, 우선 앞에서도 서술했듯이 12종이 넘는 밑반찬을 제공한다. 밑반찬은 그날 그날 사장님의 기분이나 재료의 수급 따라 조금씩 다르게 서브되는 것 같은데, 각종 나물과 전, 볶음 무침류, 샐러드 등 거의 한식뷔페를 방불케 하는 라인업이 결코 작은 크기가 아닌 탁자에 넘쳐난다.
개인적으로 두 번째 방문했을 때 나왔던 무나물이 정말 정말 맛있었고, 기본적으로 음식솜씨가 정말 좋은 사장님께서 배포까지 크시니 이보다 좋은 게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었다. 다양한 가짓수의 밑반찬뿐만 아니라 메인 메뉴의 포션도 크기 때문에 (거의 3-4인분), 가격대비 퀄리티를 고려했을 때 이렇게 장사를 하면 남는지 진지하게 의문이 들었다.
첫 방문 때 계산을 하며 사장님께 정말 맛있었다고 말씀을 드리니, 손을 잡고 주방을 직접 보여주셨던 에피소드도 있다. 따라 들어갔던 주방은 정말 깨끗하게 운영되고 있었고 사장님이 가리키며 보여주신 며칠을 끓인 사골은 그 양과 정성이 정말 대단해 보였다. 업주가 손님에게 주방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게 정말 쉽지 않은 일임을 고려할 때, 자부심과 자신감의 측면에서 이런 가게가 많아져야 할 텐데...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마지막 한 입까지 맛있는 집, 포만감과 심리적 만족감을 함께 주는 <강원도 드래요>는 재방문의사 200%이다.
번외) 또 지인들과 자주 갔던 나만 알고 싶은 동래구 맛집
1) 소문난 초량할머니주꾸미 - 온천장역 앞 위치, 자칭타칭 쭈꾸미 샤브샤브 전국 1위
2) 스지고집 - 매운 불스지, 그냥 스지탕, 로제 스지 전부 다 맛있어서 주기적으로 꼭 방문하는 곳
3) 바로바로횟집 - 가성비 횟집으로 유명하지만, 이 집의 진가는 산초를 가득 넣은 매운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