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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Oct 05. 2021

나에게 밥상을 처음 차린 날



피그말리온 효과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지만  '생각한 대로 이루어진다는 말' 에는 분명 힘이 있다.


대학을 가지 않고 음악을 선택한 큰아이가 몇 년만 해보고 다른 것을 찾는다는 이야기에

'된다고 생각해야지, 엄마도 도망갈 곳을 만들어놓고 무엇인가를 했었는데 그것의 결과가 그다지 좋지는 않았던 것 같아. 이 것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해야 최선을 다하게 되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최선을 다하지 않은 삶은 아니지만  마음자세에서 차이가 났던 것 같아  네가 선택 한 길을 믿고 가렴'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안 됐을 때를 생각했던 내 모습이 생각이 났다.


확신이 없이 시작했던 단식이었다. 몸은  아프고 살은 빼야겠고 그런데 분명 요요는 올 것이고

그래도 이거라도  안 하면 안 되기에 단식을 하면서도 요요가 가장 무서웠다. 단식을 마치고 나서도 '요요 언제 오나'했다


요요는 인체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다시 말해  요요가 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

몸은 항상성의 원리에 의해 예전으로 돌아가려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살을 빠지면 특히, 나처럼 20킬로가 넘게 빠지는 고도비만은 단식 후 숨만 쉬어도 잠만 안자도 살이 붙는 느낌이 들 수 있다.

그렇다고 매일 단식을 할 수도 없는데 어떻게 이런 몸의 성질을 극복할 수 있을까?

단식을 하면서 바뀐 생활의 리듬을 그대로 가져가는 것이다.

단식을 하면 모든 음식을 먹지 않는다. 염분과 미네랄 비타민을 보충할 수 있는 차를 계속 마시면서 고형물의 음식을 먹지 않으니 소화기는 멈춰있는 상태가 된다. 그렇게 원하는 대로 내가 바라는 대로 세웠던 단식 기간을 정해 진행한다. 단식이 마무리되면 음식을 먹을 준비기간을 단식한 날만큼 지킨다. 음식을 먹을 준비라는 것은 소화기에 좋은 식품위주로 생식의 형태로 먹는다. 이렇게 준비하고 회복하는 시간을 회복식이라고 한다.

소화기가 먹을 준비를 마쳤으니 이제 음식을 먹는다.


죽을 먹으면 입맛이 살아나고 씹지 않고 빨리 위로 보내지니 위산이 빨리 분비된다. 그래서 과식의 위험과 함께 위가 좋지 않은 사람들은 속이 쓰리게 된다. 속이 쓰린 사람들의 특징은 속 쓰림을 잠재우기 위해  다른 음식을 먹으려고 한다. 먹으면 덜 쓰린다고 생각해서 먹게 된다. 나 역시 단식 전에 만성위염에 식도염이 있어 속이 쓰리기 전에 음식을 먹었다.


하지만 위산은 음식을 먹어야 분비가 된다.  음식을 먹지 않으면 위산이 분비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른 체  속이 쓰려 음식을 먹고 다시 위산이 분비되고 그리고 또 먹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된다. 그래서 죽대 신 현미밥을 먹는다.


'"그게 소화가 돼?"


신기하게도 소화가 된다. 이미 음식을 받아들일 준비를 마친 몸상태이고 현미밥을 입안에서 30번 이상 씹어서 위로 보낸다. 아밀라아제 효소로 입안에서 소화되기 쉬운 상태로 만들어서 위로 보내지니 위는 어렵지 않게 음식을 받아들이게 된다. 충분히 씹으며 먹기 때문에 먹고 싶은 욕구가 해결되고 천천히 먹게 되니 포만감도 빨리 느끼게 된다. 확실히  현미채식은 죽을 먹는 것보다 단식 후 실패하기 쉬운 보식에서 성공할 수 있는 식단이다


단식 후 조절식은 아가들이 하는 이유식과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아기들에게 김치나 맵고 짠 음식을 먹이지 않는 것처럼 간이 되지 않은 음식부터 시작한다. 뿌리채소부터 시작해서 잎채소로  가짓수를 넓히고 익힌 채소로부터 시작하면서 생채소를 먹는다 말린 채소는 영양소가 더 응축되니 말린 채소를 불려 먹어도 좋다

채소를 먹지 않았던 내가 채소를 좋아하게 되었고 단식 후에도 나물반찬이나 샐러드를 더 좋아하게

입맛이 변했다. 나이가 든 이유도 있겠지만 단식을 하게 되면 세포가 재생이 되면서 오감이 새로 세팅이 된다.

미각이 살아나는 것은 단식 후 음식을 먹어보면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게 된다.  한 달 만에 음식을 입에 넣었을 때의  그 맛은 지금 생각해도 군침이 돌게 한다.  밍밍하다고 생각했던 두부의 풍미도 즐기게 되면서 쑥갓을 데쳐 으깬 두부로 한 그릇 뚝딱 만든다.



익힌 채소는 생채 소보다 몸의 온도를 떨어뜨리지 않는다. 요즘에는 샐러드가 다이어트나 건강에 좋다고 하면서 계절 가리지 않고 샐러드를 많이 먹고 있다. 하지만 생채소 샐러드는 몸을 차갑게 만드니 찬바람이 나는 계절에는 샐러드 대신 나물 위주의 식사가 건강에 좋다.  샐러드와 달리 나물로 먹는 채소는 여린 잎보다는 노지에서 자란 것도 많고 대부분 햇빛을 오래 받아 강하다. 그리고 생명력이 강한 채소를 먹으려면 자주 장을 봐야 한다. 텃밭이 있으면 정말 좋겠지만 아쉬운 대로 가까운 재래시장에 자주 간다. 대형마트에 가면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식품을 사 오게 되고 냉장고를 꽉꽉 채우는 것이 싫어 2~3일 먹을 양만 장을 본다. 그러면 냉장고에서 쳐져서 버리지 않게 되니 오히려 식품비를 줄이게 된다. 물론 상태가 좋으면  충동구매도 한다

어제는 얼갈이배추가 싸고 싱싱해서 박스채 사 왔다. 한 박스 가득 만원도 안 되는 가격이다. 채소값이 폭등했다는 기사나 김치가 금치가 되었다고도  하며 삼겹살을 먹으려는데 상추가 비싸 그냥 왔다는 이야기도 한다.  무게로 비교하면 고기보다 채소가 비쌀 때도 있다. 그래도 고기에 비하면 턱없이 싸고 담가놓으면 두세 달 먹는 김치가 아무리 비싸도 매식 한 끼보다는 싸다.  얼갈이배추 한 박스를 어떻게 먹을까 하다가 된장에 한번 무쳐먹고 간장에 먹었다. 그리고 양이 꽤 많이 남아서 김치를 담갔다. 김치를 담글 생각이 아니었는데  충동구매한 덕분에 김치한 통이 생겼다. 파김치 고구마김치 배추 김 김치 밑반찬이 많아져  흡족하다.  찹쌀풀을 쑤어서 담는 대신 양념을 믹서기에 갈 때 밥 두 스푼을 넣어서 함께 갈아서 썼다. 세상 쉬운 방법을 모르고 풀을 쑤는 수고로움을 매번 했었다.  



단식을 하면 먹는 존재를 잊어버려 오히려 시간적 여유가 많고 편할 때가 있다. 하지만 잘 먹기 위해 단식을 하는  우리는 단식 후 먹거리에 신경을 많이 쓴다.  뿌리나 줄기 잎 열매 꽃 등 부위별로 색깔별로 다양하게 먹되 반찬의 가짓수가 많지 않아도 된다. 이것 저것 섞어 먹는것보다는 한두가지를 먹는 것이 좋다. 채소와 고기, 밥 과일은 소화되는 속도가 모두 다르기때문이다.  너무뜨겁게도 너무 차갑게도 먹지 않고 양념과 조리법을 최소화한 자연그대로의 재료의 맛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



먹을 것이 많아지는 가을이다. 고구마와 밤의 계절이고 호박죽을 자주 해 먹을 수 있는 시기이다. 호박죽 안의 콩과 팥이 입안에서 터져 풍미가 정말 고소하다. 언젠가부터 막내딸만 호박죽을 먹고 두 아들은 먹지 않는다. 어릴 때는 잘만 먹더니 어느 날부터 안 먹어 가성비가 떨어진다. 노동력을 들여 만든 음식을 다 같이 먹어야 하는데 딸과 둘이 먹으려니 '다음부터 하지 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비싼 교구를 살 때 아이 하나 있는 엄마와 서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애가 하나니 사줘야겠어요"

"애가 셋이니 사줘야겠어요"


셋이 먹다 하다가 먹으니 노동력의 가성비가 떨어진다

하지만 먹거리는 허기를 채우거나 영양을 공급하는 것 외에도 누구를 향하는 마음이다

혼자 먹는 밥이라도 정성을 쏟는 것 역시 나를 향한 마음이라는 것을

그래서 다시는 밥솥을 열고 서서 밥을 먹는 일은 하지 않는다


혼자 먹어도 제대로 먹어야 한다는 첫 단식의 교훈을 다시 한번 환기하고 이렇게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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