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아버지는 다른 생각 말고 공부만 하라고 했다. 난 그러지 못했다. 그 시절 관심이 가고 재밌는 것들이 참 많았다. 그게 공부가 아니었을 뿐. 나는 청개구리다. 이제야 공부가 하고 싶어졌다. 하라고 할 때 주어진 환경의 소중함을 몰랐다. 지금은 공부할 시간도 확보하기 힘든 상황에서 공부가 하고 싶다니. 종종 그런 게 있다. 죽어라 하기 싫던 것이 하고 싶어 지고, 간절히 하고 싶던 것이 하기 싫어지고.
가정을 이루고 지지고 볶고, 애들 키우며 살다 보니, 다른 생각 말고 공부만 하라던 그 시절이 그립다. 배움에 애틋함이 생긴다. 지난 기회들이 아쉽다. 가족의 경제적 책임을 지는 남편, 한창 성장 중인 아이들. 든든히 먹이고, 어깨 펴고 다닐 수 있도록 보살피고 돕는 게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할애된다. 이제 와서 공부를 하겠다는 생각은 사치처럼 여겨진다. 이제 나를 뒷바라지해줄 사람은 나라는 것도 부담이 된다. 그래서 아버지는 본인이 뒷바라지해줄 수 있을 때 공부하라고 그렇게도 채근을 하셨나 보다.
인생은 저글링이다. 시기에 따라 손 위에 놓이는 공의 무게와 개수가 달라진다. 삶의 다양한 요소들이 내 손위에 놓이고 한 번 속도가 붙으면 멈추기 어렵다. 육아에 집중하며 육아라는 공의 무게가 너무도 무거워 커리어를 놓친다. 가정을 돌보며, 일도 차질 없이 하며, 자기 관리까지 잘하는 사람들이 있다. 삶의 균형이 잘 잡힌 사람들이다. 저글링의 핵심은 균형감각이다. 많은 공들이 있지만, 내게 지금 가장 큰 공들은 가족과 일 그리고 자아실현이다. 저글링을 잘하는 사람은 공의 크기와 개수에 상관없이 공을 바닥에 떨어트리지 않는다. 비틀거리는 건 비단 실패가 아니다.
어떤 공은 유리 공과 같아서 떨어트리면 금이 가고, 깨져서 다시는 전처럼 돌이킬 수 없다. 건강, 가족, 친구나 대인관계가 그렇다. 어떤 공은 고무공과 같아서 떨어졌다가도 다시 튀어 오를 수 있다. 일이나 공부가 그렇다. 놓쳐버렸어도 지금 당장은 아니라도 언젠가 다시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너무 비대해진 혹은 왜소해진 것들이 균형을 무너트린다. 어느 한쪽으로 기형적으로 기울거나 치우치지 않도록 똑바로 서서 하루를 맞이한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저글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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