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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주체성

루틴 5.5 _ 5

by 루메제니

2년 후, 나는 다시 병원에 서 있었다. 이번에는 내가 아닌 아들이 생사의 기로에 놓여 있었다.


나 : 아니에요. 뭔가 분명히 이상하다고요. 지금은 괜찮지만, 분명히 혀가 비정상적으로 빨개졌었어요.

의사 : 어머니, 좀 더 지켜보시죠.

남편 : 여보, 의사 선생님이 그렇다면 그런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일명 ‘딸기혀’는 희귀병인 가와사키병의 전형적인 증상이었다. 며칠째 밤을 새서 헛것을 본 건 아니었다. 의사는 상투적인 자세로 무미건조하게 말을 내뱉었다. 그의 눈에 비친 나는 아이의 작은 변화에도 과민 반응을 보이는 예민한 보호자일 뿐이었을까. 의사를 향한 불신은 아니었지만, 내 직감은 분명히 달랐다. '원인 불명'이라는 진단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고, 이 불길한 예감이 틀리기를 바랐다.


반복되는 고열에 항생제와 해열제를 투여하며 아이의 상황을 그저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차디찬 병원 바닥. 겨우 몇 센티 떨어진 낮은 보호자 침대에서 내 아이와 같은 증세를 겪은 아이 엄마들이 온라인에 기록한 글들은 모조리 찾아 읽었다. 아이 옆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지 않았을까. 잠시 쪽잠이라도 들면, 악몽을 꾸다가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나만큼 아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사람은 없었고, 관찰했던 증상들이 모여 하나의 병명으로 좁혀지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아이의 손끝이 갈라지는 것을 보고 나는 병원을 나왔다. 병원과 가족의 동의 없이 보채는 아이를 등에 업고 짐 꾸러미를 들고 나섰다. 허락이 필요 없는 선택이었다. 홀로 아이를 태우고 자유로 위를 달렸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뭉뚝해진 손끝으로 밀어내며, 앞만 보고 달렸다.


가와사키병 명의인 소아 심장전문외과 홍영미 교수와 마주했다. 그녀는 아이의 손과 발을 살펴보고 말했다. “가와사키 병이 맞네요. 잘 오셨어요. 치료가 늦어질수록 심장 혈관에 합병증이 생길 수 있으니, 면역글로부린 투여 치료부터 빠르게 시작해야 합니다.” 운이 좋았다. 아니 다행이었다. 묘한 감정이 들며 두려움과 안도감이 교차했다.


만약 이전 병원에 남아있었더라면, 아이에게 평생 남을 후유증이 생겨 심장 합병증으로 어느 날 갑자기 깨어나지 않는다면, 어쩔 뻔 했는가. 그저 하늘 탓, 병원 탓, 주변 탓을 하며 나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고 여기며 지내진 않았을까.


아들은 두 돌을 조금 넘긴, 가만히 누워있기 가장 힘든 시기였다. 면역글로불린 주사액은 아주 천천히 들어가기 때문에 움직이면 안 된다고 의료진은 당부했다. 아이는 꼼짝 없이 12시간을 병원 천장을 바라보며 누워있어야 했다. 울다 잠든 아이가 조금만 더 길게 자기를 간절히 바랐다. 온몸에서 나타났던 증상들은 사라졌고, 아이는 잘 이겨냈다.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아서, 적합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추적 검사 결과도 다행이 무사했다.


이토록 단호한 선택을 내린 적이 있었는지 돌이켜 보았다. 처음이었다. 분명 많은 선택을 하며 살았다. 하지만 그 선택들은 소극적이고, 수동적이고, 피동적이고, 방관적인 것이었다. 주소지로 결정된 학교를 다니고, 동네에서 만난 친구를 사귀었다. 스스로 선택할 수 있던 전공마저 부모의 권유에 따랐다. 먹어봤던 음식을 좋아했고, 취향이라 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내부보다 외부에 요인에 선택되어져 자라왔다. 이제는 주체성을 가지고 선택해야 할 시기가 되었다는 진실을 나는 유난히 느리게 흐르던 12시간 동안 온전히 받아들였다.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려면 자기 주체성이 있어야 한다. 나의 단호하고 주체적인 선택에는 세가지 이유가 있었다. 기필코 지켜야 한다는 마음의 명확함, 누구보다 가장 자세히 관찰했다는 확신, 병원에서 일하면서 느꼈던 병원 생리에 대한 지식이었다. 간절한 마음, 확신, 앎, 그리고 선택에 따른 책임까지 고려할 때 비로소 주체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외부 요인에 영향을 받고, 자신의 생각을 억압하는 것이 익숙하다. 그리고 매번 주체적인 선택을 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다. 집단 주의와 연장자 존중, 사회적 압력 등의 요소가 강한 문화권에서는 더욱 그렇다.


여기서 내적 통제와 외적 통제의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내적 통제는 자신의 행동과 결과에 대한 통제권이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믿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외적 통제는 자신의 행동과 결과가 외부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는 것을 뜻한다. 외적 통제가 강할수록 주체성과는 멀어지게 된다. 스탠퍼드 대학교의 심리학자 캐럴 드웩에 따르면, 내적 통제는 학습되는 능력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어린 시절에 내적 통제 능력을 배우지만, 성장 과정에서 이를 억누르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억압은 성인이 되어서도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훈련을 통해 내적 통제를 회복할 수 있다고 한다. 주체성은 타고 나는 것이 아니라 반복하는 훈련에 통해 향상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우리는 여전히 사회의 한 부분에 속해 있다. 다양한 직군과 환경에 속하게 되면, 여러 입장을 고려해야 할 상황이 많아진다. 이런 때일수록 주체적인 선택을 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래야 나와 내가 소중히 생각하는 것들을 지킬 수 있다.


삶에 쫓겨 성장하기를 멈추고 배움이 부족하면 다양한 사고에 노출되기 쉽다. 사고는 예기치 않게 일어나기도 하지만, 정보 부족, 경험 부족, 위험 인식 부족, 대응 능력 부족이 사고를 일으키기도 한다. 모든 것을 안다고 해도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세상이지만, 세상을 부지런히 배우면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주체적인 선택을 하기 위해 꾸준히 배워야 한다는 깨달음이 내 인생의 두 번째 중요한 교훈이었다.


더 이상 공부하라고 잔소리하는 부모님도 없고, 지켜보는 선생님도 주변의 기대도 없지만 나는 세상을 배우는 학생의 자세로 돌아갔다. 스스로 성장하려면 동기부여 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했다. 그 계기로 루틴을 의도적으로 만들어 나를 움직이게 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루틴을 통해 나는 외부의 영향을 줄이고, 내 기준에 따라 선택하는 훈련을 했다. 덕분에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믿었다. 내가 원했던 것들을 하나 둘 씩 이루어 나갔으니 말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루틴을 위해 기계적으로 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루틴의 장점은 분명했지만, 맹목적으로 따라하는 루틴과 기계적인 반복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없었다. 또 다른 인생 수업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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