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논어』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절을 뽑으라면 안자(顔子)의 뒷담화를 들고 싶다. 마치 수천(須泉) 선생①이 스승님을 표현한 것과 같은 명문이다.
선생님의 도는 우러러보면 볼수록 더욱 높아지고, 힘을 써 공부해 가면 갈수록 더욱 깊다.
앞에 계신 것을 보았는데 어느새 갑자기 뒤에 계신다.
(비록 이렇게 높고 깊어 쉽게 뵙기 어렵지만) 선생님은 우리를 차근차근 잘 유도하시어 각종 문헌으로 우리의 지식을 풍부케 하시고, 또한 예로써 우리를 단속해 주시어, 그만두려 해도 그만둘 수 없게 하신다.
나의 모든 재능을 다해 배우니, 앞에 세워 주신 지표가 우뚝한 듯하다.
비록 그 가르침을 따르고자 하나, 따를 길이 없다.②
사실 아름다운 말이기는 하지만 스승이 도깨비나 외계인이 아닌 이상 공간 이동은 불가능하다. 그저 좋은 비유(類情)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기해년 경오월 병술일 (2019년 6월 18일)부터 시작된 스승님과의 만남은 위 구절을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 글은 지난 3년간의 기록이다.
한자를 많이 알면 한문 고전을 읽을 수 있다고 믿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왕편③을 헤집어 가며, 찾아도 찾아도 고전 원문의 해석은 내게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다. 나는 그저 ‘고전 원문 해석의 난해함’이라는 정신승리로 허탈함을 달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대학원 수업에서 허사(虛辭)를 체계적으로 공부할 기회가 있었다. 고전의 숨어있던 절반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매일 왕편을 뒤져대며 찾았던 것은 실사(實辭)였지만 그 실사들이 실사일 수 있었던 것은 허사의 작용이었다. 거대했던 나의 무식이 安不愧乎!④
안병국 교수의 『맹자 한문 문법의 구조 분석』 통독을 마친 그날 새벽, 태양은 나를 위해 뜨는 것 같았다. 이제 나는, 내가 가진 시간에 비례해, 한문 고전을 독파해 나갈 수 있다는 감격에 한동안 울컥했었다.
바로 이 책이다.
하지만 그 맹랑한 꿈을 깨는 데는 그렇게 오랜 시간은 필요치 않았다. 고전 해석은 실사와 허사를 아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뭘 어떻게 더 해야 문장을 보는 문리(文理)가 트일까? 유자광, 원균, 선조, 인조, 심지어 이완용도 다 알고 이해했던 한문 문장인데 난 왜 안 될까?
더듬더듬 읽던 장자에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춘추 전국시대의 패자, 제나라 임금 환공과 수레바퀴를 깎는 장인 윤편의 대화이다.
“임금님께서 읽고 계신 것에 무엇이 씌어 있는지 감히 여쭙고 싶습니다.”
“성인의 말씀이지”
“성인은 살아 계신 분입니까?”
“이미 돌아가신 분이지”
“그렇다면 임금님께서 읽고 계신 것은 옛사람의 찌꺼기이겠습니다.”
“내가 책을 읽고 있는데 수레바퀴 장이가 어찌 논의를 할 수가 있겠는가? 올바른 근거가 있다면 괜찮지만, 근거가 없으면 죽여 버릴 것이다.”⑤
환공은 잔뜩 약이 올라 추궁했지만 윤편은 태연히 대답을 이어갔다.
(....) “수레바퀴를 깎을 때 엉성히 깎으면 헐렁해져 견고하게 되지 않고, 꼭 끼게 깎으면 빠듯해서 서로 들어맞지 않습니다. 엉성하지도 않고 꼭 끼지도 않게 하는 것은 손의 감각이 마음에 호응하여 이루어지는 것이지, 입으로 설명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 옛날 사람과, 그의 전할 수 없는 정신은 함께 죽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니 임금께서 일고 계신 것은 옛사람들의 찌꺼기일 것입니다.⑤
결국 한문 고전은 ‘옛사람의 찌꺼기에 불과하니(古人之糟魄已夫)’ 글자를 알고 문법을 알아 문장을 해석한다고 해도, 그 맥락(context)은 이해할 수는 없음이다. 눈먼 거북이가 죽은 사람들이 남긴 찌꺼기를 뒤지며 보물을 찾았으니 어찌 그 뜻을 이룰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필요한 것이 살아 숨 쉬는 스승의 끊임없는 훈도(薰陶)이다. 스승은 앞에 계시다 홀연히 뒤에 계시며(瞻之在前, 忽焉在後), 때로는 맵게, 때로는 뜨겁게, 때로는 아프게 사람을 들들 볶는, 훈연(熏煙)을 베푸시는 것이다. 그래서 하도 힘들어 더 이상 못할 것 같아 도망가려 하면(欲罷不能) 살살 잘 꼬셔가며(循循然善誘人) 인도해, 마침내 앞에 선 우뚝한 지표를 드러내신다. (如有所立卓爾)
그렇게 여러 번 계절이 바뀐 후 다시 이 구절을 읽어보니 원문 행간에 스민 안자(顔子)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손의 감각이 마음에 응한 것(得之於手, 而應於心)’처럼 말로는 전 할 수 없다.(口不能言)
본래 이 글은 스승의 날에 맞추어 완성하려고 했는데 인후(咽喉)가 포도청이라 그만 날짜를 놓쳤다. 이 인사를 어찌할꼬!
대문 그림 : ai가 그린 스승님의 초상화이다. 지시어는 다음과 같다. Composite the professor's photo and Confucius and express it using a brush and ink. must draw well
① 수천 이만재 선생. 백주(白酒)의 주향(酒香)과 서향(書香)에 빠진 신선 후보다.
② 杨伯峻。『論語譯註』中华书局. 北京. 2019. p.89. 백화문 해석은 내가 다소 의역했다. 『논어』 원문은 다음과 같다. 顏淵喟然歎曰 : 仰之彌高 鑽之彌堅, 瞻之在前, 忽焉在後. 夫子循循然善誘人, 博我以文, 約我以禮, 欲罷不能. 旣竭吾才, 如有所立卓爾. 雖欲從之, 末由也已.
③ 대한민국 5 공화국 성립 이후 옥편(玉篇)은 모두 왕편(王篇)으로 대체됐다. 이는 미당(未堂) 서정주를 말당(末堂)으로 대체한 것과 같다.
④ “어찌 쪽팔리지 않겠는가?”의 뜻이다. 물론 내가 한 작문이다.
⑤ 장주 지음, 김학주 옮김 『장자 상』 ㈜을유문화사. 서울. 2000. pp. 303-304. 원문은 다음과 같다. 밑줄 친 부분이 번역한 부분이다. 桓公讀書於堂上, 輪扁斲輪於堂下. 釋椎鑿而上, 問桓公曰:敢問公之所讀者, 爲何言邪? 公曰: 聖人之言也. 曰: 聖人在乎: 公曰: 已死矣. 曰: 然則君之所讀者, 古人之糟粕已夫. 桓公曰: 寡人讀書, 輪人安得議乎? 有設則可, 無設則死. 輪扁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