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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양이 CATOG Aug 30. 2023

아로마 향기, '삶'의 안내자를 만나다.

아로마 향기를 그려볼까나

아로마테라피와의 첫 만남은 크게 기억에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아로마테라피스트인 엄마의 영향으로 스펀지에 물이 스미듯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었지만, 어렸을 적에는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항상 거기 있어서였을까? 아니면 집에서 풍겨오는 폴폴 풍겨내는 향기가 일로 바빴던 엄마의 흔적처럼 느껴졌기 때문일까? 어린 시절, 항상 바쁜 그녀를 항상 그리워했던 것 같다. 아로마 향기는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바쁜 그녀의 뒷모습을 연상시키듯, '그리움'을 닮았을지 모르겠다. 항상 바쁘게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그녀에게 잘 다녀오라고 인사를 건넸던 어린 시절 나에게, 아로마 향기는, 바쁜 그녀의 모습을 배웅하고 문득 덩그란히 남겨진 외로움에  살포시 이불을 덮어주는, 그녀의 뒷모습이 남긴 뭉근한 어떤 흔적 같은 것이었을 수 있겠다. 그러나 그다지 어떤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지는 않았다. 


'응 향기가 있나 보다.'


 이런 정도의 감정이었던 것 같다.


문득 이렇듯 매우 일상적인 요소로 내 삶 속에 스며들어있는 아로마 향기가 그림 다음으로 나의 관심을 크게 끌게 된 것은 캐나다와 한국을 오가며 생겨난, 나에게 생겨난 일련의 사건들이었다. 스물다섯, 교통사고를 기점으로, 무릎 부상, 발목 부상 등등... 예상치 못한 연속적인 사건 사고들로 거의 십 년의 시간 동안 고통과 매우 가까운 위치에서 보내는 시간이었다. 세상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운동선수들과 오랫동안 재활하는 경험을 하게 될 줄이야... 나름 신체가 건강하다고 자부했던 나에게 생겼던 이러한 사건을 견디는 동안, 그 시간들 속에서 복잡한 마음을 소화하는 방법을 배워보려고 고군분투했던 것 같다. 


그 시간들이 다 지나가고 문득 나는 생각은, 아마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나는 그림 그리기를, 아로마테라피에도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일에도 이토록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아마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때에 맞추어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꽤 긴 시간 동안, 그림 그리기, 아로마 향기 그리고 아로마 테라피는 그 시간을 견디게 하는 좋은 조력자가 되어주었다. 있는 듯 없는 듯 마치 공기에 가까운 감각으로 기억됐던 아로마 향기는 아로마 테러피를 공부하면서 드라마틱한 치유와 회복에 대한 경험으로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프루스트 현상(Proust Phenomenon)’이라는 것이 있다.

프랑스의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소설에서 화자는 어느 날 마들렌을 홍차에 찍어 먹으면서, 어머니가 마들렌을 곁들인 차 한 잔을 가져다주었던 과거를 추억한다. 프루스트는 화자가 먹는 마들렌의 향과 감촉을 한 편의 예술작품처럼 아주 세심하게 묘사한다. 


‘전율’, ‘감미로운 희열’, ‘강렬한 기쁨’


이 장면에서 '프루스트 현상(Proust Phenomenon)’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특정한 냄새를 통해 무의식 속에 잠자고 있었던 기억이 마치 그 시간으로 다시 되돌아간 듯, 되살아나는 현상을 이르는 용어이다. 과학적으로도 향기와 기억의 상관관계는 일찍이 증명되었다. 후각은 뇌의 기억과 감정을 관장하는 변연계에 작용하여, 후각 자극 만으로 기억과 감정에 강력한 영향을 줄 수 있다. 더 나아가 심신의 안정을 돕는 역할로 활용된다. 메디컬 아로마테라피의 근원지인 프랑스에서 때로 향기가, 권력을 공고히 하려는 왕가의 우아하고도 잔인한 살인 무기로 사용되었다. 메디치가에서 프랑스로 시집오게 된 한 여인은, 끊임없이 위협받는 왕권을 지키기 위해 경쟁자에 해당하는 사람을 향기로 서서히 증거를 남기지 않고 제거하는 생존 전략을 택했다. 그들은 향기롭게 천천히 죽어갔다. 향기는 생각보다 사람의 심신 건강에 강력한 역할을 주는 힘이 있다.


운이 정말 좋게도, 아로마 테라피를 공부할 때 호스피스 병동에서 일하고 계시는 수녀님과 간호사 분들과 함께 공부하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문득 '백의의 천사'라는 이미지처럼 막연히 한없이 보드랍고 희생정신이 투철하고 상냥한 그런 이미지를 떠올렸는데, 막상 마주했던 그분들은 '악을 이길 만큼' '강인한 선함'을 갖추신 분들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호스피스 병동이라는 곳은, 현대 의학이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서, 더 이상 병원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때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죽음을 맞이하고 싶어 찾는 곳이다. 이곳에서 죽음 가까이 갔을 때 심신의 안정에 도움을 받기 위해 되는 것이 아로마 테라피라고 한다. 


일반 병원에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때 마지막 존엄한 죽음을 위해 찾는 곳인 호스피스 병동. 수녀님과 간호사 분들의 실제 활용 사례들을 접목하며 공부하는 아로마테라피는 정말 현장감 있었다. 그리고 느끼게 된 것은, 호스피스 병동은 죽음을 기다리는 곳이 아니었다는 것, 그곳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지속되고 있었고 죽음 가까이에서도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는 생동감이 느껴졌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존엄한 죽음을 위해 봉사하시는 엄청난 분들... 그런 분들과 함께 공부하며 그분들의 삶의 지혜를 얻게 된 것은 내게 허락된 엄청난 행운이었다. 이런 시간이 허락되어서 진심으로 감사했다.


감정과 추억의 안내자 역할을 하는 향기, 거기서 더 나아가 향기로 치유하는 아로마 테라피는 흔치 않은 일련의 사건들로부터 회복하는데 도움을 주었고, 소화하기 버거워 어쩌면 좋지 않은 기억으로 박제되었을 뻔한 감정들을 희석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안내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예술은 결국, 사람을 이로운 방향으로 이끈다. 나에게 아로마 향기는 또 다른 형태의 예술이다. 

아로마 향기는 내게 '쓸쓸한 그리움'이라는 첫인상을 넘어 내 삶이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선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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