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가 지긋하신 나의 할머니는, 다행히도 연세에 비해 정정하신 편이지만, 세월의 흐름에 생긴 자연스러운 관절의 삐걱거림과 전 같지 않은 체력에도 불구하고 수고스러운 음식 만들기를 계속하신다. ‘아이제 못하겠어.’라고 하시면서 때론 무리한 노동으로 인해 병원 신세를 지시기 도하는 모습에, 나의 부모님과 친척들은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어 ‘음식은 적당히 만드세요.’라고 종종 성화를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정성이 들어가는 음식 만들기를 계속하신다. 신선한 재료를 원산지에서 공수하거나 새벽 시장에서 공수해서, 느리고 우직한 햇볕에 재료를 말리고, 덕구고, 찌고 굽고 끓이고 우려내는 등에 대한 우직한 노동의 일을 계속하신다. 모두 속도와 가성비를 외치는 시대에 어쩌면 우직한 ‘사골’ 같았던 노동에, 할머니의 무르팍이 남아나지 않을까 봐 모두들 말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당연히, 빠르고 급하게 만든 음식보다, 사 먹는 음식보다 어김없이 할머니가 해주시는 음식은 맛있지만, 허리를 두드리며 하시는 정성 가득한 음식 노동에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서기는 마찬가지였것 같다.
그런데 그러한 '고됨'을 거쳐 만들어진 정갈한 음식을 보자기에 싸서 우리에게 주실 때, ‘역시 할머니 음식은 정말 맛있었어요 할머니.’라고 이야기해 드릴 때 할머니의 표정은 정말 행복해 보인다. 어쩌면 할머니는 손주들에게 수고스러운 노동을 거쳐 만든 음식을 나눠 주실 때, 할머니의 ‘몫’을 충실히 하신다고 느끼시는지 모르겠다. “힘드시니까 하지 마세요~ “라고 하는 것보다. ‘할머니, 음식 진짜 맛있는데 힘드시지 않으실 만큼만 해서 주세요.’라고 했을 때 여전히 더 행복해 보이신다는 건, 오늘도 역시 할머니의 ‘몫’을 다하고 싶어 하시는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럼 나 역시, 손주로서의 ‘몫’을 다해야겠다. 그럼 나 역시, 지금 있는 곳에서의 ‘몫’ 이란 걸 다해봐야겠다. 찬란한 수고로움을 기꺼이 받아들여 봐야겠다.
파초올리는 헛헛한 사람을 위한 향기이다. 최선을 다해 내몫을 다하고 상대에게 배풀었는데 내가 배푼 마음을 상대가 알아주지 않거나 나는 항상 주기만 하고 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잠길때, 팔짱을 끼고 게슴치레한 눈으로 그 상황이나 상황을 삐뚤게 바라보게 된다. 어쩌면 한쪽 방향으로 너무 부단히 노력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헛헛해하기 보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몫을 다해보는것. 다른 사람을 내 기준으로 재단하고 가느다랗고 삐뚤게 바라보기보다 둥글게 바라보는것. 파초올리가 전해주는 이야기이다.
파초올리
경주마처럼 앞만보고 달리다가 잠시 멈춰섰을 때 텅빈 허전함을 느낀다면
한쪽 면만 채우려고 너무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일꺼야.
채워지지 않은 부분을 채울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