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나 자신의 세계인거야. 벽은 나 자신을 둘러싸는 벽이고, 강은 나 자신을 흐르는 강이고, 연기는 나 자신을 태우는 연기인거야."
그 때 무엇인가가 희미하게 내 마음을 두드렸다. 한 화음이 마치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 듯, 불현듯 내 머릿속에 남았다. 나는 눈을 뜨고 그 코드를 다시 한 번 눌러보았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그 코드에 맞는 음을 찾아보았다. 오랜 시간을 들여, 나는 그 코드에 맞는 최초의 네 음을 찾아낼 수가 있었다. 그 네 개의 음은 마치 부드러운 태양 빛처럼, 하늘에서 내 마음 속으로 천천히 춤추며 날아내려왔다. 그 네 개의 음은 나를 찾고, 나는 그 네 개의 음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한 코드의 키를 누르면서, 몇 번이고 네 개의 음을 차례로 눌러 보았다. 네 개의 음은 그 다음의 몇 개의 음과 다른 코드를 원하고 있었다. 나는 먼저 다른 코드 쪽을 찾아보았다. 코드는 금방 찾아졌다. 멜로디를 찾는 데는 시간이 걸렸지만, 최초의 네 음이 나를 그 다음의 다섯 음으로 인도해주었다. 그리고 또 다른 코드와 세 음이 나를 찾아왔다.
그것은 노래였다. 완전한 노래는 아니었지만, 노래의 처음 한 소절이었다. 나는 그 세 코드와 열두 개의 음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되풀이해 보았다. 그것은 내가 다 알고 있었을 노래였다.
<대니 보이>.
- 하권, p. 268. 아코디언(세계의 끝)
. 세계의 창조. 그 세계가 나 자신과 연계되어 있다는 설정.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 약간 거창하게 얘기해보자면 - 그 세계의 운명을 판가름짓는 나 자신의 결정까지. 하루키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구판 '일각수의 꿈')는 이것만으로도 한 권의 환상문학이 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갖췄으면서도 현실의 모습 역시도 결코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이 작품을 훌륭한 수작을 넘어 최고의 걸작으로 만들었다.
. 원래 이 작품 이전에는 하루키가 초기에 썼던 '마을과 그 불확실한 벽'이라는 중편소설(이번에 나온 신간과는 다르다. 젊은 시절에 썼던 중편이다)이 있었다. 지금도 인터넷에 검색하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이 중편에는 한 번 들어가면 나갈 수 없는 마을, 분리된 그림자, 도서관의 여자아이, 꿈읽기, 벽과 숲, 그리고 강과 웅덩이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끝'의 원형에 해당될 법한 내용들이 실려 있었다. 그 이야기를 처음부터 통째로 고쳐쓰면서, 하루키가 가장 먼저 했던 작업은 원래 있던 부드럽고 꿈같은 환상의 이야기에 차갑고 딱딱한 현실의 이야기를 나란히 병렬시키는 것이었다. 그 결과 비록 감정은 희미해졌지만 조용하고 안온한 마을을 다룬 '세계의 꿈'과 계산사와 기호사라는 두 조직이 벌이는 정보전쟁과 그 가운데에 있는 의문의 노박사 사이에서 주인공이 겪는 모험을 다룬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라는 두 이야기가 마치 전혀 다른 이야기인 양 나란히 세워진 채 서로를 바라보며 진행되어 간다.
좋은 소파를 사기 위해선 그 나름의 식견과 경험과 철학이 필요한 것이다. 돈은 들지만, 돈만 내면 되는 것이 아니다. 소파란 무엇인가 하는 확고한 이미지 없이 훌륭한 소파를 손에 넣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 p. 71. 계산, 진화, 성욕(하드보일드 원더랜드)
. 도심 속의 스릴러를 보는 듯한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편과 안온하고 낙후된 낡은 마을의 동화 같은 '세계의 끝' 편이 반복되는 이 소설에서 하루키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 그리고 현실과 가상을 자유자재로 오간다. 세계의 끝은 물론이고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세계 역시도 SF에서나 가능한 '소리뽑기'나 무의식을 통한 암호와 해석을 둘러싼 정보전쟁, 거기에 도쿄 지하에 있는 야미쿠로(암흑) 무리나 일각수 등의 요소들로 인해 한 발만 더 디뎠다간 판타지로 날아가버릴 것 같지만, 하루키는 이야기를 땅에 뿌리박게 하기 위해 그 특유의 고유명사 폭격과 - 이 소설에는 밥 딜런이나 로렌 바콜, 발자크, 심지어는 콘도 마사오미까지 등장시킨다 - 세세한 일상묘사를 통해 주인공을 80년대 도쿄 어딘가의 현실에 단단히 매어놓는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면 과연 나 역시도 투르게네프의 '루딘'을 동정할 수 있을지 궁금해지고, 밥 딜런의 '폭풍우'를 찾아봤다가 이 노래가 14분이나 된다는 것에 놀라게 된다. 레몬 수플레를 찾아 빵집을 헤매게 된다. 무엇보다도, 편안한 소파를 고르는 방법에 대해 궁금해하게 된다. :)
"잘 들어, 마음이란 것은 빗방울과는 다른 것이야. 그것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다른 것과 구별해 낼 수 없는 것도 아니야. 만약 네가 나를 믿을 수 있다면, 날 믿어 줘.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걸 찾아내겠어. 여기에는 무엇이든 있고, 무엇이든 없다. 그리고 나는 내가 구하고 있는 것을 꼭 찾아낼 수가 있을거야."
"제 마음을 찾아내세요." 하고 잠시 후에 그녀가 그렇게 말했다.
- 하권, p. 242. 두개골(세계의 꿈)
.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주인공의 뇌 속의 경계가 용해됨에 따라 현실은 가상과, 가상은 현실과 -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와 세계의 끝은 - 자연스럽게 맞닿아간다.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이야기에서 정체불명의 2인조의 습격으로 인해 완전히 박살났었던 집을 도서관 여자는 그저 '퇴근하는 길'에 아무렇지도 않게 치워놓고, 박사의 손녀딸은 무시무시했던 2인자를 아무렇지도 않게 쫓아버린다. 한편,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가상의 세계처럼 느껴지던 '세계의 끝'에서는 모든 기억을 잃었던 '내'가 기억을 하나하나씩 정성스럽게 되살려 드디어 '대니 보이'를 연주한다. 주인공이 낡은 손풍금으로 대니 보이를 연주하고, 그 음들이 두 세계의 연결고리가 되는 장면은 이 소설에서 - 그리고 하루키의 모든 작품 중에서도 가장 감동적인 부분이다. 그리고 주인공이 자신이 만들어 낸 세계를 받아들이고, 그 세계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더없이 아름답고, 더없이 완벽하며, 더없는 설득력을 가지고 읽는 이에게 가슴 한구석이 시리면서도 벅차오르는 '선한 서사'를 전달하는 이야기.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 빛나는 시절의 (라퓨타와 키키 정도일까) 지브리를 떠올리고, 몇 번이고 이 책을 되읽으며 역시 책읽기를 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웅덩이가 내 그림자를 몽땅 삼켜버리고 난 후에도, 난 오랫동안 그 수면을 쳐다보고 있었다. 수면에는 파문 하나 남지 않았다. 물은 짐승들의 눈처럼 파랗고, 그리고 잠잠했다. 그림자를 잃어버리고 나자, 나 자신이 우주의 끄트머리에 홀로 남겨진 듯이 느껴졌다. 난 이제 어디로든 갈 수 없고, 어디로도 되돌아갈 수 없다. 여기는 세계의 끝이고, 세계의 끝은 그 어떤 곳과도 통하지 않는 것이다. 거기에서 세계는 끝을 고하고, 고요하게 멈춰 있는 것이다.
나는 웅덩이에 등을 돌리고, 눈 속을 서쪽 언덕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서쪽 언덕의 저편에는 마을이 있고, 강이 흐르고, 도서관 안에서는 그녀와 손풍금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눈 속으로 한 마리 하얀 새가 남쪽을 향하여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새는 벽을 넘어, 눈으로 뒤덮인 남쪽 하늘로 삼켜져 사라져 갔다. 그 뒤에는 내가 밟는 눈의 뽀드득뽀드득하는 소리만이 남았다.
- 하권, p. 326, 새(세계의 끝)
p.s. 나는 이 책을 문학사상사에서 나온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로 먼저 읽어놓고 동네 헌책방에서 고른 '일각수의 꿈'이라는 책으로 샀고, 꽤 고민하다가 결국은 '일각수의 꿈' 쪽을 계속 소장하기로 했다. 물론 워낙 예전 책이라(무려 권당 5,000원이다. 그런 시절이 있었지^^;) 오타도 있고, 고유명사는 이상하며, 때로는 실소가 나오는 표현도 있다. 특히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쪽에 그런 부분이 많은데, 무지막지한 2인조가 집안을 온통 부숴대는 상황에서 30대 남자인 주인공이 마치 여학생처럼 "참 정말"이라고 말하는 건 아무래도 좀. :) 그럼에도 이 책을 놓지 않는 이유는, 김난주가 번역한 세계의 꿈 부분은 너무나도 따뜻하고 부드러우며, 유독 김난주의 목소리로 읽는 '나'의 상실은 다른 번역가들에 비해 더 아련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녀는 어디선가에서 담요를 몇 장인가 찾아내 와, 그것으로 나를 몇 겹이나 둘둘 말고, 난로 앞에서 자도록 해주었다. 누일 때 그녀의 머리카락이 내 볼을 스쳤다. 그녀를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그 생각이 나 자신의 의식에서 우러나온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오랜 기억의 단편 속에서 떠오른 것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잃어버린 것은 너무나 많고, 나는 너무도 지쳐 빠져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