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라이 - 엔도 슈사쿠(뮤진트리) ●●●●●●●●○○
말라빠지고 두 손이 못박힌 사내에게 왜 화가 나는지
사무라이는 자신도 이상했다.
방울 소리가 울렸다. 정적 속에서 다시 주교는 빵을 놓고 순금의 성배를 두 손에 들고 머리 위로 울렸다. 그것은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피가 되는 순간이었다.
'형식적인 일이다.' 모두가 머리를 숙이는 걸 따라하며 사무라이는 되풀이했다. '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말라빠지고 두 손이 못박힌 사내에게 왜 화가 나는지 사무라이는 자신도 이상했다. 만약 정말 형식적인 일이라면 이렇게 마음 속으로 같은 말을 되풀이할 필요는 없다. 위액 같은 쓰디쓴 감정이 차오를 리도 없다. 아버지나 숙부나 리쿠를 배신한 듯한 슬픈 마음이 들 리도 없다.
- p. 333.
. 시대와 역사에 농락당하고 배신당한 한 사람이 있다. 시대의 격변에 휘말려 하루 아침에 평생 살아오던 땅에서 척박하고 외진 땅으로 밀려나게 되고, 체념한 채 낯선 땅에서의 생활을 받아들여보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런 그를 놓아두지 않고 아무도 가지 않으려 하는 먼 여행을 떠맡긴다. 단순히 거리가 멀어서만은 아니다. 새로이 국가를 장악한 통치자가 크리스트 교를 탄압하려는 기미를 보이는 시점에, 혹시 통치자의 생각이 바뀌었을 때를 대비해서 버리는 패로 유럽에 보내는 사절단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세키가하라에서 승리하고 천하를 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오사카 성에 남아있는 한 줌의 도요토미 잔당 소탕을 준비하던 1613년의 일이었다.
이따금 사무라이는 장남 긴자부로를 데리고 집의 북쪽에 있는 구릉에 오른다. 일찍이 이곳을 지배하던 토착 사무라이가 세운 성채 터가 잡초에 파묻혀 있고, 관목에 가려진 물 없는 해자나 낙엽을 뒤집어 쓴 흙으로 쌓아 올린 작은 성채에서는 이따금 불에 탄 쌀이나 그릇이 나오기도 한다. 바람이 부는 산 위에서는 골짜기와 마을을 내려다볼 수 있다. 슬플 만큼 가련한 땅. 뭉개진 마을.
'여기가.... 내 땅이다.'
사무라이는 마음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린다. 앞으로 전쟁이 없다면 나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평생 여기서 살아갈 것이다. 내가 죽은 뒤에는 장남도 총령으로서 똑같은 삶을 살 것이니 우리 부자는 평생 이곳을 떠날 일이 없다.
- p. 17.
사무라이도 상인들에 섞여 요조, 세이하치, 다이스케 등 종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곧 헤어져야 하는 오지카의 산들을 바라보았다. 5월의 수목은 이미 짙은 색으로 산을 뒤덮고 있었다. 이것이 당분간 그가 볼 수 없는 최후의 일본 풍경이다. 돌연 뇌리에 골짜기의 구릉, 마을들, 그리고 자신의 집, 마구간, 리쿠의 얼굴이 하나하나 되살아났고, 아이들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하고 애달픈 생각이 들었다. 상갑판에서 커다란 술렁거림이 일어났다. 스페인인 선원들이 묘한 가락으로 노래 같은 것을 불렀다. 일본인 뱃사람 몇 명이 큰 기둥에 올라가 스페인인 선원의 지시를 받아 큰 깃발과도 같은 비슷한 돛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아딧줄이 삐걱거리고 하얀 괭이갈매기가 고양이 같은 소리를 냈다. 얼마 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큰 배는 천천히 방향을 바꾸었다. 파도가 배의 허리에 부딪히는 소리를 들으며 사무라이는 이제 운명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했다.
- p. 98.
. 엔도 슈사쿠는 다테 마사무네 휘하 영지의 사무라이였던 하세쿠라 로쿠에몬의 여행 기록을 바탕으로 시대에 휘말려 버림받은 한 사내의 행적을 따라간다. 17세기 초에 태평양과 대서양을 차례로 건너 스페인과 로마에서 펠리페 3세와 바오로 5세를 만난 그. 역사적으로 그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확실히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 작가는 교역 확대를 통해 크리스트교 박해를 완화시키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 그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그가 왕과 교황을 만났을 때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어버린 상태였다. 그가 길을 떠난 사이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오사카 성 전투에서 도요토미 잔당을 뿌리까지 뽑아버렸고, 그 과정에서 체제 안정을 위해 '기리시탄 추방령'을 발표하고 크리스트 교 박해에 박차를 가하고 있던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서구의 기독교 국가들에 있어, 일본은 버려야 하는 땅일 뿐이었다.
. 그렇게 고향을 떠난 지구 반대편의 먼 곳에서, 이제는 누구나 실패로 끝날 거라는 걸 알고 있는 무의미한 여행을 하는 하세쿠라에게 그제서야 비쩍 말라 나약하게만 보이는 남만의 신이 마음에 닿아온다. 사절의 임무가 성공하면 그 공을 인정받아 고향 영지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며 달콤한 미끼를 던지던 선교사 벨라스코가 설교하던 '기적을 행하는 전능한 신'으로서가 아니다. 모든 게 실패했다는 걸 알고 벨라스코조차도 하세쿠라를 외면할 때, 그가 머물던 현지 신자들의 집안 벽에 걸려있던 십자가에 못박힌 가련한 모습의 조각으로서다. 모든 것이 실패하고 모두가 그를 떠난 상황에서도 남만의 신은 떠나지 않는 가련한 개의 모습으로 그의 곁에 남아 있었다. 그때에서야 하세쿠라는 왜 사람들이 수척하고 힘없어 보이는 그의 모습을 받아들이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나는 형식적으로만 기리시탄이 되었다고 생각해왔네. 지금도 그런 마음에는 변함이 없어. 하지만 정치가 뭔지 알고 나서 이따금 그 사내를 생각해. 왜 그 나라들에는 어느 집에나 그 사내의 가련한 상이 놓여 있는지 알 것 같은 기분도 들어. 사람의 마음 어딘가에는 평생 함께해줄 사람, 배신하지 않을 사람, 떠나지 않을 사람을 - 설령 그것이 병들어 쇠약한 개라도 좋아 - 찾고 싶은 바람이 있는 거겠지. 그 사내는 사람에게 그런 가련한 개가 되어주는 거야."
- p. 469.
. 다른 한 편에 있는 선교사 벨라스코 역시 마찬가지다. 야망과 확신과 성취욕으로 가득한 그는 시련은 자신을 강하게 하고 이를 통해 더 큰 성취를 주는 시험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패기 넘치는 그는 일본에서의 포교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인맥과 정략을 총동원해 영주와 교단을 움직여 하세쿠라와 함께 사절단으로 떠난다. 이 모든 것이 결국은 성공과 영광을 돌아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 여행 내내 신의 전능함과 힘과 기적을 강변한다. 그러나 그 역시도 도착한 스페인에서 더 이상의 일본 포교가 불가능해졌다는 걸 깨닫는다. 그것은 자신이 한평생 쌓아온 것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이다.
. 그제서야 그는 그 어떤 지원도, 정략이나 계획도 없이 단신으로 일본에 밀항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도착하자마자 체포되어 감옥에 수감되고 곧 죽음을 맞는다. 벨라스코를 심문하며 그에게 너는 아무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며 그의 죽음 역시 아무 의미없다고 말하는 관리에게 - 그리고 스스로에게 벨라스코는 대답한다. "나는 살았습니다.... 나는 아무튼 살았던 것입니다. 후회는 없습니다."
"당신은 나의 무익한 행위를 어리석다고 했습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왜 그런 어리석은 업을 내가 알면서도 했을까? 왜 광기로 보이는 것을 내가 알고도 했을까? 죽음을 각오하고 일본에 왔을까? 언젠가 생각해주십시오. 그 물음을 당신이나 이곳 일본에 남겨두고 죽어가지만 내게는 이 세상에서 살았던 의미가 있습니다."
"이해가 안 가는군."
"나는 살았습니다.... 나는 아무튼 살았던 것입니다. 후회는 없습니다."
- p. 490.
. 그 전에 읽었던 '바보'나 '침묵'에서도, 엔도 슈사쿠의 시각은 항상 동일했다. 그의 신은 언제나 상처투성이의 가련한 모습으로 가장 낮은 자들 사이에서 그들과 함께 묵묵히 고난을 당한다. 전능한 신의 힘으로 세상을 뒤엎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고통받는 자들과 함께 남겨져 그들의 고통을 함께 받는다. 역설적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의 헐벗고 가련한 예수는 성공과 성취를 말하는 이들의 힘있는 예수보다 내게는 더 큰 위로가 된다.
해 뜰 무렵 옥졸이 신부의 시신을 거적으로 싸서 가져갔다. 거적에서 비어져 나온 그의 손발은 철사처럼 바싹 말랐고 때에 찌들고 흙이 들러붙어 있었다. 그것을 본 순간 하늘의 계시처럼 내게 번뜩이는 것이 있었다. 이것이 지상의 현실인 것이다. 지상의 현실은 아무리 속이고 미화해도 때에 찌들고 흙이 들러붙어 있는 바스케스 신부의 시신처럼 비참한 것이다. 그리고 주님은 그 비참한 현실을 피하지 않았다. 주님도 땀과 때에 찌든 채 돌아가셨다. 그리고 그 죽음으로 그 지상의 현실에 별안간 빛을 주셨다.
- p. 4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