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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시울 Oct 12. 2024

크리스티 여사, 홈즈와 뤼팽과 노란방과 자신을 리뷰하다

4개의 시계 - 애거서 크리스티(해문)  ●●●●●○○○○○


"아니, 셜록 홈즈가 아냐! 내가 경의를 표하는 사람은 아서 코난 도일 경일세."



   "자네 아버님이라면 아주 흥미로운 것들을 들려줄 수 있을텐데 말이야. 나는 자네 아버님을 아주 존경하네. 옛날부터 그래왔었지. 알다시피, 그 양반이 사용하는 방법들이란 것이 아주 흥미롭거든. 아주 솔직한 것들이지만 말야. 그는 그 누구도 사용해 본 적이 없는 아주 확실한 방법을 사용하네. 언제나 눈에 다 드러나는 함정을 만들어놓거든. 그래서 그가 잡으려고 하는 사람들까지도, '이건 너무 뻔한 거잖아. 아마 사실이 아닐거야.' 라고 생각하고 마는게야. 그리고는 그 함정에 걸려드는 걸세." 

                                                                                                                                                          - p. 137.




   . 솔직히 너무 빙빙 꼬아져 있었다. 죽 늘어서 있는 단독주택 단지의 빈집에서 발견된 남자의 시체, 일거리를 받고 집을 찾았다가 시체를 발견한 출장 타이피스트와 외출에서 돌아온 눈 먼 여인. 그리고 4시 13분을 가리킨 채 거실 이곳저곳에 놓아져 있던 주인을 알 수 없는 네 개의 시계. 무대라는 측면에서, 구도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아름답기까지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이 아름다운 무대가 눈속임에 불과하다는 게 드러난다. 동네에 사는 이웃들이 죄다 나와서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고, 그러는 와중에 정작 무대는 점점 잊혀져 간다. 결국 결말에 이르면 4시 13분을 가리킨 채 멈춰져 있던 네 개의 시계는 - 무려 책 제목인데도 - 완전히 잊혀져버린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초반에 깊은 인상을 남기던 눈 먼 여인도 어느 새 진상과 별 상관없는 곳으로 밀려나 있다. 그와 반대로 가장 존재감 없고 먼 곳에 있던 인물이 갑자기 끌어올려진다. 미스디렉션들이 여기저기 두서없이 흩뿌려져 있다. 


   . 정작 이 소설에서 흥미를 끄는 건 사건의 진상보다는 포와로의 입을 빌어 크리스티 여사가 말하는 고전 명작 리뷰 모음집(^^;)이다. 크리스티 여사는 이 책에서 뤼팽, 를루타뷰, 홈즈, 구석의 노인 등 선배들과 그녀 자신에 대한 평을 하고 있는데, 찬사 뿐만 아니라 디스가 섞여 있다보니 아주 꿀잼이다. :) 특히 올리버 부인에 대한 평을 통해 자기 스스로에 대한 평을 하는 부분이 가장 재미있다. 인정사정없는 비판으로 시작하다가 그래도 그 작가 나름 독창적이기도 하고 예리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오랜 시간 꾸준히 노력하다보니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하는 게 얼마나 귀여우신지. 이 때 크리스티 여사가 무려 일흔 두 살이셨는데. :)





   "애리어든 올리버 부인의 초기 작품 몇 가지도 읽어보았다네. 그 부인은 내 친구일 뿐만 아니라 자네의 친구이기도 할 걸세. 하지만 그녀의 작품을 완전히 인정할 생각은 없네. 알겠나? 그녀의 작품에는 전혀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가 하면, 있을 것 같지 않은 우연의 일치가 너무 남발되고 있다네. 게다가 그때는 젊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덮어놓고 핀란드 인 탐정을 등장시켜 놓았지만 실제로 그녀가 핀란드나 핀란드 인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시벨리우스의 작품밖에 없단 말야. 하지만 그녀는 나름대로 독창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고, 때로는 예리한 추리력을 발휘하기도 하지. 최근 들어 그녀는 예전에는 몰랐던 그런 일들에 대해서도 지식이 많이 풍부해진 것 같더군. 예를 들어 경찰의 수사방식에 대한 지식 같은 것 말일세. 무기에 대한 지식도 많이 늘었고. 그 외에 그녀에게는 법률에 대한 지식이 많이 결여되어 있었는데, 그런데로 변호사 친구를 통해서 법률에 대한 조언도 얻고 있는 것 같더군." 

                                                                                                                                                          - p. 144.





   . 그리고 이 소설에는 정말 뜬금없이 헤이스팅즈가 언급되는데, 몇십년만의 언급이자 젊은 시절 미리 써둔 '커튼'을 제외하면 마지막 언급이지만, 정말 단호하게 오랫동안 헤이스팅즈의 연락을 들은 바 없다며 선을 긋는다(....) 그저 불쌍한 헤이스팅즈. 다른 곳도 아니고 60년대의 아르헨티나에서 연락두절이라니(....) 이쯤되면 정말 크리스티 여사가 실제로는 헤이스팅즈를 별로 내키지 않아 했다는 일부의 주장도 설득력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맨 위에 나와있는 것처럼 배틀 총경에 대해선 아들에게 말하는 것이긴 하지만 상당히 좋게 평가해주는데. ㅠㅠ





   "셜록 홈즈의 모험" 그는 사랑스러운 듯 중얼거리더니 경의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거장이지!" 

   "셜록 홈즈가 말인가요?" 

   "오, 아니, 아니, 셜록 홈즈가 아냐! 내가 경의를 표하는 사람은 아서 코난 도일 경일세. 이 셜록 홈즈 이야기는 실제로는 부자연스럽고 기만에 차 있는데다 아주 기교적으로 구성되어 있다네. 하지만 그 문장의 예술성에 있어서는 - 오, 그 점에 있어서는 완전히 달라지게 되지. 그 말이 주는 기쁨, 그리고 무엇보다도 와트슨 박사라는 멋진 인물의 창조! 오, 정말로 굉장한 성공이었네." 

                                                                                                                                                         - p. 144. 


   "이제 아르센 뤼팽에 대해 얘기해보세." 그는 계속 말을 이었다. "아주 공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지. 하지만 그 속에서 넘쳐나는 활기를 보게! 그 활력, 그 생동감! 한편으로는 황당무계하기도 하지만 현란하기도 하다네. 게다가 유머도 있단 말이야." 

                                                                                                                                                         - p. 140. 


   "그리고 이것은 '노란 방의 비밀'이라네. 이것이야말로 - 정말 고전이라고 할 수 있지! 처음부터 끝까지 흠잡을 구석이 없어. 이 이야기의 논리적 구성! 이 책에 대한 비평 중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불공평하다는 것이었네. 하지만, 콜린, 그것은 불공평한 것이 아니었어. 오, 아냐, 아냐. 아마 그런 쪽으로 굉장히 근접해 있기는 했겠지만 꼭 그렇다고는 할 수 없네. 머리카락 한 가닥 정도의 차이밖에 없어. 아니야. 전편을 통해 그 소설에는 어휘를 조심스럽고 교묘하게 사용함으로써 감추어진 진실이 있어. 모든 것은 사람들이 세 개의 복도 모퉁이에서 만나는 그 결정적인 순간에 밝혀지게 되었던 걸세." 

                                                                                                                                                         - p. 140. 



   "친애하는 내 친구 헤이스팅즈. 내 친구 헤이스팅즈에 대해서는 내가 자네에게도 종종 얘기했을 걸세. 내가 그 친구의 소식을 들은 것도 벌써 오래 전의 일이로군. 남미에 가서 파묻혀 지내는 것은 참 바보 같은 짓인데도 말야. 그곳에선 항상 혁명이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 p. 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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