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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시울 Oct 22. 2024

잠깐 숨을 돌린다기엔, 11년만의 신작이었는데? :)

파리 마카롱 수수께끼 - 요네자와 호노부(엘릭시르)  ●●●●●●○○○○


파스텔컬러 마카롱, 마블 무늬 마카롱, 원색에 가까운 마카롱,
커팅하지 않은 치즈 케이크, 쌓아 올린 슈크림 위에 초콜릿을 부은 타워.



   "오사나이." 

   고개 돌린 오사나이의 표정을 보고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눈에서 눈물이 굴러 떨어진 것이다. 뺨은 발그레했고 입술은 립스틱을 바른 것처럼 붉다.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걸 대번에 알았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알 수가 없었다. 할 말을 잃은 내 앞에서 오사나이는 새끼손가락으로 눈가를 훔치며 의연한 태도로 억지스럽게 웃었다. 

   "아, 고바토." 

   바로 고개를 돌리더니 어딘가 딱딱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놀랐지? 미안, 보기 흉하지." 

   "저.... 무슨 일 있었어?"

   "아무 것도 아니야. 미안, 오늘은 이만 돌아갈게." 

                                                                                                                    - p. 164. 베를린 튀김빵 수수께끼.




   . 봄, 여름, 가을이 있었으니 당연히 그 다음은 겨울이 되어야 할 텐데, 소시민 시리즈의 이번 편은 계절 없이 그저 디저트 이름만 붙어있다. 무려 11년만에 나온 소시민 시리즈인데 겨울편이 아닌 '외전'이라니. 완결을 내버리기가 아까웠던 건지, 아니면 너무 오랫동안 소시민 시리즈를 떠나 있었다보니 작가 스스로도 영 감을 못잡겠어서 잠깐 숨을 돌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번 편은 가을편에서 다시 손을 잡은 고바토와 오사나이의 다음 이야기가 아니다. 뜬금없이 앞으로 되돌아가 봄편과 여름편 사이의 어딘가를 다룬 이야기이다. 


   . 각각의 이야기가 시간순으로 촘촘하게 흘러가는 고전부 시리즈와는 달리 - 한 권이 3개월 정도를 다루는 고전부라 완결나려면 12권이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 소시민 시리즈는 그 정도로 꼼꼼하게 계획한 것은 아니었는지 제목상으로는 계절이 이어지지만 그게 '다음 해' 여름이 되기도 하고, 그 다음 편은 또 '같은 해' 가을부터 시작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통째로 넘어간 고등학교 1학년의 가을과 겨울을 채우자는 생각으로 (아마도) 나온 게 이 파리 마카롱 수수께끼인 것. 





   "그래, 뭘 할 지 말하지 않았네."

   "아, 말해줄거야?" 

   "우리는 지금부터 새로 오픈한 가게, '파티스리 코기 아넥스 루리코'에 가서 신작 마카롱을 먹을 거야."

   그래, 뭐 그런 사정일 줄 알았지만,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나를 데려가는 이유는 뭐야?" 

   "이 잡지에 따르면 가을철 한정 마카롱이 네 종류 있는데."

   허벅지에 올려놓은 잡지를 탁탁 치며 오사나이는 매섭도록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티&마카롱 세트로 고를 수 있는 마카롱은 세 종류 뿐이니까." 

   즉 나머지 한 종류를 나더러 주문하라는 말씀. 

                                                                                                                         - p. 12. 파리 마카롱 수수께끼.






   . 9월부터 그 다음 해 2월까지를 다룬 이번 단편집에선 한 편에는 전작에서 활약(?)했던 겐고와 신문부원들이 나오고, 나머지 세 편에는 '코기 코스모스'라는 이름의 중학생이 나온다. 완전히 새로운 인물이라 완결을 앞둔 지금 왜 갑자기 새로운 캐릭터일까 했는데 아니나다를까, 작중에서 잡지에도 실리는 유명한 파티시에의 딸이라고 한다. 역시. 이정도는 되어야 고바토와 오사나이의 지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흠흠(....) 아무튼 그런만큼 이번 편에서는 마카롱과 케이크와 슈크림 등 온갖 디저트와 베이커리가 자연스럽게 하나 가득 등장하는데, 특히 모든 사건이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 후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베이커리 천국" 장면은 오직 코기이기에 만들어낼 수 있는 장면이기에 자연스레 그 비중에 납득하게 된다. 그 와중에 슈크림을 옹기종기 올려서 만든 탑에 초콜릿을 부었다는 크로캉부슈도 꼭 한 번 보고 싶어지고. :) 


   . 다만 시리즈 전체로 본다면 11년 만에 - 그것도 여름편과 가을편을 거치며 고바토와 오사나이가 한 단계 성장한 모습을 그려낸 이후에 쓰여진 이야기여서 그런지 이번 권은 봄편과 여름편 사이의 이야기라기보단 가을편 이후의 후일담에 가깝지 않나 하는 느낌을 준다. 봄편과 여름편의 고바토와 오사나이가 아직 갈 길이 멀구나(....) 싶은 느낌이었다면, 이번 편에선 인간관계를 쌓아나가는 데 있어 한결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그래서 뭔가 이 뒤에 여름편이 이어진다는 것에 좀 위화감이 든다. 아무래도 가을편이 2학년 가을부터 3학년 여름까지 1년 가까이 이어지는 긴 이야기였기 때문에 이제 졸업까지는 6개월 밖에 남지 않은터라 남은 겨울편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었다는 게 어른의 사정이었겠지만, 그럴거라면 그냥 겨울편을 쓰는 게 가장 좋은 선택이지 않았을까? :)


   . 추천은 오사나이의 눈물을 볼 수 있고(^^;) 유일하게 겐고가 등장하는 '베를린 튀김빵 수수께끼', 그리고 마지막 이야기인 '피렌체 슈크림 수수께끼'의 마지막 '베이커리 천국' 장면.  




   파티스리 코기 아넥스 루리코의 내부는 과자로 가득했다. 파스텔컬러 마카롱, 마블 무늬 마카롱, 원색에 가까운 마카롱, 커팅하지 않은 치즈 케이크. 쌓아 올린 슈크림 위에 초콜릿을 부은 타워. 크로캉부슈라는 이름은 나중에 알았다. 그리고 평소 같으면 프랑스 과자점인 파티스리 코기 아넥스 루리코에 진열될 리 없는 베를리너 판.... 뭐더라, 으음. 베를린 튀김빵도. (중략) 

   오사나이는 두 손으로 입가를 가리고 눈을 글썽거리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어어, 응? 나, 오늘 죽는거야?" 

   코기가 까르르 웃었다. 때마침 6시 정각을 알리는 바깥의 대형 시계에서 흘러 나오는 <오, 아름다운 목장>의 멜로디가 가게 안을 가득 채웠다. 

                                                                                                                     - p. 326. 피렌체 슈크림 수수께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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