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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바램 Oct 28. 2024

뭣도 없고 멋도 없는

돈 좀 빌려줄 수 있어?

다음 달 바로 줄게!


염치도 좋지.

낫낫한 목소리로 돈을 빌리곤 했다.

다음 달 줄 수 있어서다.


돈을 빌릴 수 없을 때는

기약할 수 없는 날들


염치는 없으면서

눈치는 있고

거기에

충치까지 있었으니

그야말로

멸치처럼 짠내 나는 시간


돈이라는 게

없다가도 있고

있다가도 없는 것이라는데

없을 때는 한참 없고

있을 때는 잠시 있다.


돌잔치 금 한 돈

국산돼지 한돈

나는 돈돈


돈을 좇지 말고

돈이 나를 쫓게 하라는

뭣 같은 소리에 엿이나 먹이고

뒤돌아 소주나 한병 사

순간을 해악으로 바꿔버린 취기는

젊음이라야 멋이라도 있다. 


뭣도 없고 멋도 없는

이에게 세상은 그저

루저라 말한다.


손가락으로 가리키길 거둬

생을 가르쳐주면 좋으련만

내 생을 가리키며

저리 살지 말라 교훈한다.


참 훈훈한 세상의 교훈에

한몫 거둔 칙칙한 생이

바닥에 들러붙어

껌딱지가 된다.


애초엔 하얗던 껌은

쪽팔림에 땅바닥보다 더 시커멓게

납작 엎드리고 만다. 


혹시 몰라 마음씨 고운 이의 신발 밑창에 들러붙어 보지만

기를 쓰고 들러붙은 껌을 떼내느라

신발을 바닥에 미친 듯 비벼댄다.


길거리 환경미화를 한다며 껌을 떼는 날

한 번은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

검은 나를 긁다 보면 그리 밟히고 닳았는데도

하얗고 여린 속살을 얇게 지켜내고 있었다는 걸

보게 될 테지.


생각보다 꽤 많은 껌딱지가

길바닥에 납작 엎드려 살고 있다.


이리 길바닥에 납작 엎드려 살던 나도

제 신발 밑창에 들러붙은 껌을

얼마나 세차게 비벼대며 

뜯어냈는지 모른다.


신발의 뒤축이 닳더라도

껌딱지는 붙이고 다니지 않겠다는

결의에 찬 뿌리침에

빡쳤던 기억 따윈 애초에 없다는 듯.


뭣도 없으면서 멋도 없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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