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가벼운 발걸음
가뿐한 몸 따라
또박또박 걸어가며
마주치는 청춘들의
발그레한 볼터치와
볼륨 있게 찰랑이는 머릿결을
스치면서
저만 아는 미소로 화답하고
화장실에 들어가
입꼬리가 올라간 채 손을 씻고
머리를 매만지려
고개를 들어 거울을 보다
멈칫
내게도 발그레한 볼터치가
내게도 선명한 아이라인이
내게도 촉촉한 피부가
있을 것 같던 기분이
밤새 내린 서리에 젖어
뭉기듯 흘러내려졌더라
가방에서 급히 응급처치를 할
화장품을 꺼내 덧발라보지만
바를수록 가면이 되고 마니
제 나이를 잊고 가볍던 마음이
제 나이 곱절까지 더해가며 무거워져 가니
닦아내고 닦아내
풀 죽은 입술에만 살짝 생명을 넣고
느긋한 걸음으로 걸어본다
거울보고 흠칫 놀란
그 기분이 새삼 우습다가
거울 보고 기대했던 제 모습이
예쁨이었던 마음에
여전히 사랑스럽고 만다
거울 없이 제 멋에 제 맛에 취해
또박또박 걸으며
나이를 모르는
나잇값을 못하는
그런 날도 살아보고
생각했던 것보다 채색이 어색한
그런 날엔 색을 죽이고
물을 들여 촉촉하게 찰박이는
이런 날도 살아본다
살아있다는 건
채색이오
착각이오
완성이 없는
데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