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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향적 교만이었다

by baraem

가고자 마음을 먹는다

가야지 마음을 먹는다

가야 하는데 마음을 먹는다

가고 싶은데 마음을 흘린다

가고 싶었는데 마음을 접는다


가려는 곳은 마음을 먹다 접는 곳이다.

마음을 먹는다는 건 보이지 않는 의지를 삼키는 것이고, 마음을 접는다는 건 언제고 다시 펼칠 아쉬움을 미루는 것이다.






만날 때마다 돈이 없다고 말하는 이가 있었다.


그 말은 내게 새겨졌고, 그를 만나는 날이면 계산은 으레 내 몫이었다. 그가 내려고 해도 몰래 계산을 했다. 어느 순간 당연함이 되었고, 만남을 앞두고 주저하는 나를 느꼈다.


그러다 그의 소식이 들려왔다.

가족과 해외여행을 간다고 한다.

축하와 부러움을 밟고 배신감이 먼저 튀어 올랐다.

'그렇게 돈 없다고 앓는 소리 하더니..'

삐딱선 마음은 환히 웃는 여행 사진에 조소를 날리고, 관계에 뒷걸음쳤다.


그렇게 멀어진 이들이 있다.

그에겐 영문모를 일이겠으나 나에겐 이유 있는 분노였다.


가고 싶었던 것이다.


나 역시

로든.





그가 다녀온 여행에 부러움 보다 배신감이 먼저 마중했다. 내 멋대로 관계의 우위에서 배려를 앞세워 선한 인간이려 했다.


생각할수록 부끄럽다.

조금 더 부끄럽자면 그에게 이런 이야기까지 한 것이다.


'사람들 앞에서 자꾸 돈 없다는 소리 하면 듣는 사람이 부담스러워질 거야.'


이래놓고선 자비 베풀 듯 계산을 도맡았던 것이다.


나는 실수와 실패가 두려워 나서지 못한 채 현실을 움켜쥐고 절절매고 있었다. 없다면서도 길을 나선 그가 기분 상할 정도로 부러웠던 것이다.


그 역시 순간을 모아 떠난 나섬이었던 것이다.


나는 내향적으로 교만을 떨었고

그는 외향적으로 앓는 소리를 했을 뿐이다.


접힌 마음을 펼쳐서 구겨진 마음을 읽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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