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건물이 아이를 키우고 있어

이가 없으니 잇몸으로 육아 중

by 가나다라봉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It takes a village to raise a child).”


아프리카의 속담이 떠올라. 유발 하라리의 도서 사피엔스를 보면, 인간은 생명유지에 필요한 많은 시스템이 덜 발달된 미숙한 상태로 태어난다고 해. 갓 태어난 망아지는 곧 걸을 줄 알고, 고양이는 생후 몇 주만 지나면 어미 품을 떠나 혼자 사냥에 나설 수 있. 하지만 인간의 경우는 미숙한 상태로 태어나기 때문에 교육을 받고 사회화할 수 있는 기간이 다른 어떤 동물들보다 길다고 해. 그러니 아이의 성장에는 여러 해 동안 양육자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지. 그런데 양육자가 한 명이라면 24시간 한 아이를 바라보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거든. 사실 양육자 두 명도 쉽지 않아. 본업도 있고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일도 있고 말이야. 아이를 키우다 보면 왜 마을이 필요한 지 이해하게돼. 주양육자 외에도 함께 해줄 어른이 많으면 좋고, 사회에서도 긍정적인 이해와 관심이 있다면 더욱 좋아.


우리는 아이를 키우는 하나의 마을은 없지만 하나의 건물은 있어.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살아가고 있지. 예전의 마을은 어땠을까 생각을 해보면, 누구네 집 아들, 누구네 집 딸, 어디에 사는 누구 다 알고 있잖아. 아이들이 밖에서 옳지 않은 행동을 하면 어른들이 직접 훈육하기도 하고 말이야. 가족 구성원도 아이와 같이 일을 하기도 하고 도움을 받기도 하고, 아이들이 유대할 수 있는 사람이 꽤 다양했을 거야. 지금은 어때? 미취학 아이가 혼자 다니는 것은 눈을 씻고 보려야 보기 어렵고, 주변 어른의 자발적인 도움을 기대할 수 없어. 그런데 다행히도 학원들이 그 역할을 해주고 있더라고.




아이가 유치원에 가던 해, 처음부터 학원을 고려한 것은 아니었어. 다섯 살에게 학원은 너무 빠르다는 생각이었거든. 하지만 유치원 입학 후 한 달이 되기도 전에 그 생각은 바뀌었어. 아이가 말하길, 친구들이 삼삼오오 태권도 가방을 들고 태권도복을 입은 선생님을 따라간다고 하더라고. 정규반 끝난 시간에 친구들이 하나둘씩 가는 모습을 보니 자기도 어딘가 갈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아. 아이가 엄마, 아빠에게 의견을 전달할 나이가 된 거지. 그래서 아차 싶었어. 친구들을 보며 부모님을 기다리기보단 다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학원을 알아보기로 했어.


집 앞 건물에 있는 태권도 학원에 보내는 것은 빠르게 결정되었어. 아이와 방문 상담하고 받은 햇 노란색 도복 보며 아이는 정말 신나는 표정이었거든. 유치원 하원 시간에 맞추어 태권도 차량 운행하니 안심이 되기도 하고 평일 매일 수업인데도 비용이 부담되진 않았어. 상담하며 각 유치원에서 모인 아이들이 태권도장에 가득 차 있는 광경을 보고 처음엔 꽤 놀라웠어. 그리고 오후 시간대 그 건물의 엘리베이터는 아이들 웃음소리, 목소리로 가득 차있고 끊임없이 아이들을 각 층으로 데려다주고 있었지. 1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아이들이 무언갈 배우는 시간은 사실 20분이나 될까? 무엇을 배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같은 자리에 다시 모여서 어떤 규칙에 따라 생활하고 친구들을 만나는 또 다른 사회로 보였어.


태권도뿐만 아니라, 유치부 대상 음악학원, 미술학원, 수 놀이 학원, 줄넘기 등 정말 많은 학원이 있더라고. 우리 집 앞 건물에도 가득 찬 것을 보면 그만큼 수요가 있다는 거겠지? 들여다보니 시간대별로 학원들끼리 유기적으로 아이를 돌보고 있었어. 서로의 시간표를 공유하듯 "몇 층에서 몇 시에 끝나면 다음은 몇 층이에요~"가 가능했지. 평일 낮시간, 엄마 아빠의 업무 시간 동안 아이를 돌봐줄 그 건물의 시스템을 잘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야.




누군가는 아이들이 학원 뺑뺑이 도는 것에 대해서 안타까움을 표현할 거야. 맞아. 이게 최선은 아닐 수 있어. 나도 아이 낳기 전에 '그럴 거면 왜 아이를 낳을까' 싶은 마음이 있었어. 하지만 요즘의 육아에서 학원의 역할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어. 특히 태권도가 유치부의 방과 후 시간뿐만 아니라 저학년 초등학생 등하원을 책임지는 것 보면 육아 생태계에서 엄청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거든. 인정해야겠더라고.


아이들이 학원에 가는 목적이 교육측면일 수도 있고 돌봄일 수도 있고, 그건 가정의 상황에 따라 다를 거야. 아이들의 연령에 따라 그 목적이 달라질 테고. 하지만 공통적으로, 가정에서 아이들의 양육과 성장 모두 챙길 수 없는 사회가 되었다는 점이야. 아이를 맡기고 일을 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고, 아이 교육을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더 좋을 수도 있어. 또 이런 표면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라마가 바라보는 학원이나 유치원의 긍정적인 면은 타인과의 활동에 대한 부분이야. 정확히 말하면, 우리 가족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람과의 만남과 소통 모두를 포함해. 다소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아이는 주체적인 태도와 스스로의 조절력, 판단력이 생길 거라 믿어. 요즘엔 한 가정에 아이가 한 명 또는 두 명이잖아. 가정에서는 작은 사회를 접하기엔 많이 부족해. 그렇기에 늘 아이만 바라보는 부모가 매일 붙어있는 게 아이의 성장에 좋다고 생각하지 않아. 부모도 마찬가지야. 아이와 보내는 환경과 시간을 선택적으로 지내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거야. 주양육자가 일을 하든 하지 않든 말이야. 양육자도 한 뼘 아이와 멀어져서 일을 하든 운동을 하든 취미활동을 하든 무언가를 꾸준히 하는 게 좋아. 그러니 한 건물이 아이를 키우는 것에 안타까워 말자.


그럼에도 안타까운 양육자라면, 아이와 만나는 시간을 더 잘 보내는 것에 집중하면 돼. 그리고 엄마, 아빠가 아이를 돌보지 못하기에 맡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이에게 알려주면 돼. 그리고 점점 더 아이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그 기회를 많이 만들면 돼. 조금만 더 커도 아이가 엄마아빠와 함께하지 않을 거란 것을 이해한다면, 지금의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소중하다고 느끼면 돼. 그리고 진심으로 표현하면 돼. 그러면 돼.








keyword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