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지금' 물음표를 낳게 하는 뜬금없는 타이밍에도 집에 방문하여 소소한 친절을 크게 강조하는 사람.
양복은 차려입었으되 그 반질반질함이 결코 고급스럽지 않고, 명품이라고 온몸으로 말하는 가방은 들었으되 그 손마저도 어딘가 경박한, 하지만 풍채만은 좋아 보이는사람.
손에 든 건 텃밭 상추이면서 입으론 산삼이라도 캐논 듯 말주변과 넉살이 좋은 사람.
그 사람이 우리 집과 집 주변을 오간 지 몇 달이 지나고
난 후 아빠는 시골에 보여줄 땅이 있다면서 온 가족을 대동하고 나섰다.
이 땅에서 저 땅 끝을 가리키던 아빠의 손가락엔 뿌듯함이 잔뜩 실려있었는데... 엄마와 우리 세 딸들은 강한 의구심을 지울 수 없었다.의혹은 있으나 섣불리 의심을내비칠 수 없던 상황. 그러던 어느 날 삼삼오오 모여, 심증들만 소극적으로 쏟아내던 세 명의 여자들을 뒤로한 채 얼마 뒤 아빠는계약서 한 장을 내밀었다.
십수 년간의 공직 생활을, 고위직으로 어떻게 마무리할 수 있었을까 싶게... 말이 안 되는 계약서를 가지고 와 내밀던 아빠의 얼굴엔 뿌듯함의 미소만이 면면히 번져있었다.
그제야 '일을 그르쳤음'을 인지한 네 여자가 강하게 반발했지만 아빠의 귀는 닫혀있는 듯했다. 이미입장을 번복할 수 있는 상황에서 벗어나,오히려 법의 테두리 안에 갇혀 '반박 불가' 지경이었다. 사기를 당했다.
늘 모든 순간 야무지던 엄마는
아빠가 결정한 일이니,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우리에겐 네 아이들이 있으니...
어쩔 방도가 있겠느냐, 힘없이 말했다.
일은, 늘 야무진 사람의 손 끝에만 달랑달랑 맺히는 법인건지.. 엄마는 며느리 사표를 어렵게 결심하고 시댁에서 발을 뺐지만 가까스로철모를 쓰고 우리 세 딸의 육아 전선에 함께 뛰어들어야 했다.
세 딸들의 출산과 육아는 6개월 차이로 겹치고 겹쳐, 아이들 울음소리에... 한 때 '난임'의 그림자가 드리웠던 근심의 집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