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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희 Oct 04. 2024

영정사진 앞, 뒤늦은 고백

근사한 딸이 되지 못해서 미안했습니다.

엄마와 아빠는 나에게, 세 딸들에게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바람을 드러낸 적이 없다. '공부해라' 채근한 적이 없고 학교 생활은 이러저러하게 해야 한다 방을 제시한 적이 없다.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 돼라' 조언한 적도 없다. 속적인 망을 비 적이 없다.


그저 엄마와 아빠가 짜놓은... 화려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헐겁지도 않은 울타리 안에서 안전하게만, 안온하게만 살기를. 어떤 사람이 되지 않아도 좋으니, '나와 너, 우리 그대로, 그것으로 되었다.' 말하는 듯했다.


물론 그 마저도 입 밖으로 꺼낸 적은 없었다. 관심은 있었지만 지대하다고 할 만큼은 아니었고 제재 정도 하였지만 과하다 싶을 정도도 아니었다.


간간히 살얼음판을 걷게 하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집 안에 흐르는 공기 정도로 짐작될 그 긴장감을, 눈치껏 느끼게 하던 정도랄까.


하지만 그 마저도 예민한 감정형인 나와 나보다는 이성적이며 직관적인 두 아이들은 서로 다르게 체감하는 정도였다. 둘째 동생은 타격감이 거의 없었다고 하니, 표면적으로도 썩 나쁘지 않았던 듯하다. 


피아노 팔고 집을 나가, 서울을 찍고 두바이를 시작으로, 유럽의 여러 나라, 오만까지 갔다가 집에 돌아왔건만. 한 번도 허투루 산 적은 없었지만 결국 여권에 도장만 찍고 돌아온 나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세요.'라는 질문에 늘 애매하게 대답하게 되는 사람이 되었다.


그 집 딸은, 뭐 해


그 집 자식들이 어떤 대학을 나와, 뭐 하고 사는 사람인지가,  그 집 부모들이 이룩해 놓은 성취이자, 자랑 척도가 될 때 나의 부모는 나에 대해 아무것도 말할 게 없어 보였다. 아니, 없었다.


'암'이라는 예기치 못한 병을 '부득이하게' 고백하게 된 아빠에게 고육지책으로 짜낸 뒤늦은 효도의 방책이,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는 일이라니. 드라마틱한 반전이 없는 내 인생이 새삼 미안해졌다.

뭔가 해내지 못한 딸이어서,
자랑할 만한 큰 딸이 되지 못해서, 미안했습니다.
그래도, 있는 그대로
평생, 사랑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아빠가 키워주신 것만큼
아픈 아빠를 잘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했습니다.



영정사진 앞에서 아빠에게 닿지도 않을, 과거에도 고백한 적이 없던, 그 말들을 속삭였다.


괜찮다는 대답이 들려왔다.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말이었지만 내내, 엄마 아빠는 나에게, 우리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장례식장에 와준 여러 분들이 말씀하셨다.

아빠가 늘 이야기하던,
사랑하던, 그 세 딸들...

아이를 낳고 키워보니

아이의 모든 순간을 지지하고

담백한 응원을 보내고

조건 없는 사랑으로만 응답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되었다.


우리가 부모가 됐을 때 비로소
부모가 베푸는
사랑의 고마움이 어떤 것인지
절실히 깨달을 수 있다.
- Henry Ward Beecher


그래도, 어찌어찌 결혼하여 세 딸들이 다섯 명의 손주들을 낳았던 일이, 아팠던 아빠에게 가장 큰 활력이자, 동력이 되었다.


나로선, 유일하게 잘한 일이었다. 난임의 강을 건너 쌍둥이를 낳았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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