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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희 Oct 12. 2024

내 결혼식엔 안 왔는데 우리 아빠 장례식엔 온 남사친

10년 만에 만난 대학 동기 남사친

장례식은 그냥, 애틋하고 슬프려고 작정한 장소 같았다. 아빠를 보낸 내 슬 큰 덩어리에, 아빠를 제각기 추억하는 타인들의 감정들까지 방울방울 더해져 덩어리가 점점 커졌다.  


짧고 굵은 단어 한 마디로도 큰 울림을 주시던 조문객들 앞에 눈물 바람. 맞잡는 두 손을 부들부들 떠시면서도, 그렁그렁한 눈에 눈물을 다잡던 어떤 눈과 마주쳐서 또다시 후드득. 영정사진 속에 갇힌 아빠를 보다가 또르륵. 물의  다르지만 애도라는 한 웅덩이에 모였다.


내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남편은, 이제 눈물을 거두라 말했다. 상주가 그렇게 너무 많이 울어도 조문객들이 어쩔 줄 몰라하실 수도 있며. 실제로 그렇기도 했다.


(눈물을 거둬야 할 땐, 아이들 앞으로 가야지. 암암.)



눈물은 아이들 앞에서만 말랐다. 아이들은 장례식장을 부산스럽게 뛰 다니거나. 할아버지 영정사진 앞 쪽에 포도 알이를 올망졸망 놓거나. 평소에 구경도 못한 마른안주 모둠 세트 접시에서 한 주먹 쥐어 입넣고 오물오물하거나. 캔 망고주스와 캔 콜라를 실험적으로 섞 환호하고 있었다. 아이들 앞에선 퉁퉁 부은 부었던 눈이 절로 부라려졌다.


극과 극 사이를 오가 휘몰아치던 내 감정들은 두 번째 날 21시 즈음되자 가까스로 진정되었다. 수고한 두 눈에 안경을 씌워줬다. 안경을 써도, 꾸안꾸 스타일로 힙하게 보이고 싶다는 열망을 담아 샀던 '레트로 투브릿지 보잉 안경'이었다.


안경을 장착하고 홍어와 묵은지 냄새, 이틀 동안 먹었던 육개장 향이 진하게 베어든 검은 상복 코를 갖다 대며 킁킁하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서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유령이라도 본 듯, 안경을 벗어 눈을 비비다가 그 와중에 안경을 벗어던졌다.



내 결혼식에 말도 없이 안 와, 그 서운함에 10년 동안 연락도 안 하고 지냈던 내 남사친이었다.


30대 초반,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고 아름다웠을 그날, 말없이 오지 않았던 녀석. 미리 양해를 구하지도 않고 다른 동기를 통해서 못 온다는 소식을 듣게 했던 놈. 내 딴에는 얇은 지갑 사정에도 절친이라며 지 결혼식 때 30만 원 축의금으로 인사했건만... 내 결혼식엔 오지도 않고 5만 원 뺀 25만 원 축의금 봉투만 보내왔던 아이.


아무런 이성 감정 없이 남자와 여자가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결혼 후에도 남사친, 여사친의 관계가 지속될 수 있을까요?


그 아이는 이런 질문에 딱히 응답을 해야 하나... 생각도 나지 않을 만큼 대학 시절 내내 늘 함께였던 동기이자, 졸업 후에도, 항상 친했던 친구였다. 서로의 이성 친구와 있든 말든. 같이 듣는 강의가 있든 없든, 각기 다른 시기에, 다른 나라로 어학연수를 갔든 말든. 취업을 위해 서로 다른 공부를 하든 말든. 누군가 취업에 성공하든 말든. 늘 같이 붙어 다니는 것도 아니었는데 또 그렇다고 떨어져 있어 본 적도 없던... 소중했던 사람이었다. 남자, 여자 이성을 넘어서 그냥, 좋은 사람 친구.



그런데 웨딩드레스 입고 예쁘고 싶어 작정한 내 결혼식엔 오지 않았던 그 녀석이 나타나다니. 나 말고도 근 10년간 친했던 다른 대학동기들과도 연을 끊다시피 지냈던 내 친구는, 도대체 여길 어떻게 알고 온 걸까.


이제까지 장례식장에서 흘렸던 눈물과는 또 결이 다른 눈물이 새어 나왔다.


보고 싶었던 친구. 보고 싶어도 못 보고, 안 봤던 친구. 10년 만에 우리 아빠 장례식장에서 다시 만난 내 친구.


다행이었다. 내 인생, 손절한 인연이 몇 안되었는데... 십 년의 공백을 뛰어넘어 다시 만나게 된 친구가 있다니!


그리워서, 다시 보고 싶어서, 어렵게 손 내밀 결심을 했는데 더 이상 맞잡을 손이 없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닫고 슬펐던 뒤라 더 벅찼다.


옹졸했던 나에게 다시 와줘서 고마웠다.

그 자리가, 내 아버지의 장례식이어서 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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