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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희 Nov 21. 2024

정숙한 세일즈 김성령 김원해 부부 vs 우리 부부

틀린 그림 찾기

그대여, 욕망을 곧추 세워라!


1992년 보수적인 시골마을에 상륙한 성인용품 방문판매업과 그 가운데 정숙한 세일즈를 펼치는 방판 시스터즈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JTBC 주말극 '정숙한 세일즈'는  방판 시스터즈의 자립, 성장, 우정을 그린 풍기문란 방판극이었다. 뒤늦게 시작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정주행에 빠졌던 작품!


빌런 없는 드라마인 데다, 욕망을 소재로 재미와 감동까지 사로잡았다! 생각했는데... 나 말고도 뒤늦게 정주행에 빠진 분들이 많은 모양이었다.


집 안에서 히죽거리며 혼자 보던 드라마는, 집 밖 커피 마실 테이블에서도 이어졌다. 육아와 집안일 사이를 오가다, 욕망을 잃은 지 오래인 또래 친구들과의 대화였다. 


드라마 정숙한 세일즈로 시작했다가 39금 토크로 빠지는 재미란! 아주, 사례가 봇물 터졌다. 물론, 남의 집들 사례였다. 우리 중에 밤마다 코끼리 울음소리를 듣는 이는 없다 하였으니 말이다. (그 사례들은 추후 다루기로 한다)



드라마 속 방판 시스터즈 멤버 중 김성령과 그의 남편역 김원해 부부 단연 입체적인 캐릭터들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드라마 종용 후, 김원해 배우에게

'출연료를 반납해야 한다' 댓글이 나왔을 정도.


김원해는 보수적인 남편으로 시작하여, 코끼리 울음소리가 우렁찬, 돌적인 남편이 되었다. 그러다 섹시한 빨간 슬립을 입고 선 춤을 추던 남편으로 열연을 펼쳤다. 마지막엔 '저런 남편 어디에도 없다.' 눈물샘을 자극하며 감동의 도가니 빠트리기까지 했다.


난 김성령과 김원해 부부의 에피소드 씬에서, 얼핏 우리 부부와 닮은 점을 읽었다. 보수와 코믹, 39금 도발과 감동. 과연 어느 씬이었을까. 


린 그림 찾기 시작!



다시 식사로 돌아간다. 갓 지은 8첩 반상을 차려놓고 남편을 기다리지만 남편은 연락도 없이 오지 않는다. 다 식은 밥을 뒤로 한채 소파에 우둑하게 앉아있던 아내.


맨날 나 혼자만 아등바등 허고 당신은 천하태평... 진취적인 현대 여성이면 좋을 텐데
아쉽기는 허지! (...) 집구석은 더럽게 빤딱빤딱허네. 뭔 청소 못하고 죽은 귀신이 붙었나.


일단 나는 8첩 반상을 차려놓고 혼자 기다렸던 아내는 아니었다. 신혼 때는 그날그날 다른 술안주에, 안주 따라 반주할 술 한 병을 놓고 기다다. 육아 일상에 접어든 후엔, 종종 육퇴 살롱을 열어 소파에 나란히 앉아 맥주 한 잔에 마른안주를 질겅질겅 했다. 


남편은 연락 없이 오는 일이 거의 없었다. 오히려 정확했다. 10분, 30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 사는 사람이었으니... 칭얼대는 쌍둥이들을 데리고 외출 준비를 할 때면 5분, 10분 시각을 체크하며 마음이 덩달아 바빠졌다.


그렇다고 '집구석은 더럽게 빤딱빤딱허네.' 말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집이 빤딱빤딱 빛이 나는 날이 거의 없었거니와. 간혹 그런 날이 있다 하더라도 그는 그 와중에 쌍둥이들의 잠들기 전, 행적을 읽어낼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마룻바닥을 스치고 지나가는 양말의 감촉에서, 쌍둥이가 목욕 후 동백 오일을 발랐다는 것을 감지해 냈으니!  끝으로 느껴지는 적임 정도로 로션인지, 크림인지, 오일인지 제형을 구분할 수 있었다. 바닥을 수평 삼아 엎드려 자국을 들어다 보는 모습은 흡사 CSI 과학수사대 일원 같았다.



그런데도 내가 이 씬에서 우리 부부의 닮은 모습을 읽어낸 건... 소파와 물아일체가 되어 다리를 꼰 채 자기주장을 강력 어필하는 저 모습.


'언제는 쓸데없이 뒤섞여 수다나 떠는 그런 여자들보다 낫다면서요.' 말 한마디는 쏙 들어가게 만드는 장황한 연설력. F의 말에, 공감 대신 T발언으로 응답하는 고집.


그 일장연설 앞에, 소파쿠션을 소심하게 쥐어짜기만 하다 "융통성, 취미생활  현대 여성?" 남편이 내뱉은 단어들을 곱씹으며 분노의 숟가락질로 꿀물을 타는 아내 김성령의 모습었다.


말로 형언할 수 없지만 저 씬에서의 두 사람의 구도, 오가는 대화 속 온도는 이상하리만큼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아침식사를 차려준 정성 앞에,

당신 덕분에,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가네.
그런데...


칭찬의 말 한마디만 먼저 나왔어도 속상하진 않았을 텐데.


하지만 나도 서운한 점에 대해 웅얼거리기만 할 것이 아니었다. 속으로 꿍한 채 감정적으로 속상해만 할 일이 아니었다. 말하지 않아도 나의 노력을 상대방이 알아주길 바라기만 할 것이 아니었다. 버거운 육아일상에, 사사건건 말다툼이 싫어 매사 피했던 것이 능사는 아니었다.

 

난 남편에 꿍한 마음을 주로 글로 썼다. 나름 저격의 의도가 담긴 글이었다.



여기서, 나는 슬기양이었다.



정숙한 세일즈에서, 김성령 말했다. 하늘하늘한 슬립 원피스를 벗어던지며.

내가 어떤 여잔데요?
온종일 집안에 틀어박혀서 하는 가장 큰 고민이라고는
오늘은 뭇국을 끓일지 청국장을 끓일 지고.
그렇게 애써 차려놓은 밥상
 술 먹고 늦은 남편 때문에
차갑게 식어가도 뭐 바깥 일하다 보면 그럴 수 있지 이해하면서 다음날 속풀이 해장국 끓이는 게 가장 행복인 그런 여자요?

똑부러지는 김성령의 말이 끝나자마자 남편은 아내의 입을 입으로 틀어막고 본격적으로 둘만의 야릇한 대화에 빠져든다. 에로로 갑자기 장르가 바뀌었다.


우리 부부의 장르는 바뀌었을까. 남편은 나의 저격 글에서 자신의 화법이 슬기롭지 않았다는 걸 캐치해 냈을까.


나도 섹시한 슬립을 입는 상상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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