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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희 Nov 14. 2024

나는 여보의 엄마가 아니다.

아침식사에 컴플레인이 접수되었습니다

공복에 마시는 따뜻한 작두콩 한 잔, 오색의 해독주스를 마시며 시작하는 나의 아침 루틴. 빈틈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끼니 앞에 난 진심일 때가 많아

모자란 게 있을 진 몰라도,
이보다 더 할 수는 없어!


생각이 들었다. 최선을 다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애당초 누군가 내게 주방에서 쏟는 공력에 대해 지적하는 걸 참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쌍둥이 육아가 시작된 이후, 일상에 몇 배의 수고로움이 더해졌던 터라...


난 더 이상 주방에서 마냥 즐거운 김 새댁이 아니었다.


(난 이제 더 이상 소녀가 아니에요)

수줍은 와중에, 섹시하게 나오는 이 노랫말을 개사한다고 해도

(난 이제 더 이상 김 새댁이 아니에요) 노래가 쉬이 나오지 않았다.


손가락으로 어깨만 찔러도, 힙합 특유의 거친 느낌이 묻어나는 디스전 랩이 시작됐달까. 쌍둥이 육아가 시작된 이후로 내 음악의 장르가 바뀌었다. 그리고 아픈 사람의 곁을 지키게 된 이후로, 내 소리의 톤이 바뀌었다. 새초롬한 김 새댁은 없었다. 갑자기 속사포 랩을 쏟아내다 말고, 거칠고 퍼석해진 소리로 한을 토해낼 지경이었다.


(빈 소리를 무엇으로 채울 거냐. 나라면 눈물로 채울까나, 한숨으로 채울까나)


I can't survie the way I want
너무 많은 기준 또 너무 많은 noise
but 우린 완벽하지 않아

덕 쌓고 사는 것과 unfortune은
절대 관계가 없다는 거

여실히 뼈저리게 느껴도
의미 부여하며 덕을 쌓는 삶에 충실히
살아가는 자들이 덧대는 의미
lts already a metaphor 그 자체야 이미

- 타협, 이영지



아빠의 투병을 겪은 뒤로 식사 앞에 난 매번 사삭(호들갑)을 떨었다. 이전보다 현저하게 줄인 '흰 빵' 앞에서도 주춤. 당뇨 수치가 높은 것도 아닌데, 흰쌀밥 앞에 멈칫. 건강 염려증으로 나도 모르는 사이 새어나가는 잔소리도 늘었다.


딸에게 어느 날 선심 쓰듯 베이글 끝이 약간 바삭해지도록 구워, 크림치즈와 과일잼을 두 겹으로 발라주면.

엄마, 나 이거 안 먹을래.
이거 피부에 안 좋잖아. 나 빵 안 먹어.


8세의 답변이 돌아왔다. 머쓱해졌다. 내가 들숨 날숨처럼 잔소리를 쏟아냈나, 혼잣말을 중얼거렸나... 싶었다.


신혼 때는 아침 식사 메뉴가 '밥과 국, 반찬'으로 단출했다면 건강 염려증 속 아침은 더 다채로워졌다.



양배추, 당근, 브로콜리, 바나나, 케일 등 각종 야채들이 그날 그날 다른 구성으로 파이팅 넘치게 갈려진 가운데...


찐 계란, 사과 몇 조각, 찐 고구마, 견과류 올린 연두부, 불고기, 살짝 찐 두부 등이 그때그때 더해졌다.


그렇게나 좋아하던 빵과 호박 인절미 떡이 이벤트처럼 올라오는 식탁이었다.


아침부터, 이렇게 챙겨줄 수는 없지!

미리 해독주스 재료 밑작업도 해놓지 않은 채, 그날 그날 아침의 주스를 준비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으므로. 나는 '감히' 아침 식사 앞에 당당했다. 결국

이번 생에, 나는 아프면 안 되어서!


오롯이 내 건강 챙긴답시고 하는 일이었지만 마음속 밑바닥 한 구석엔

아무리 전업주부라고 해도, 저처럼
차려줄 수는 없을걸요!


스스로 반론을 제기되었나 보다. 자리에도 없는 나를 까댄 남편의 여자 동료의 말이 미웠음을 인정한다.



그런데,

무슨 환자용 식단도 아니고.
나는 이렇게 먹고 가면 오전에 금세 배가 고파!


컴플레인이 접수되었다. 내가 06시를 시작으로, 주방에서 빈틈없이, 아주 직관적으로, 촘촘하게 움직여서 살뜰히 낸 밥상 앞에.


평일 기준 5일 동안, '밥과 국과 반찬'을 안 준 것도 아니구먼! 예상치 못한 컴플레인 앞에 목소리가 달달 떨리면서 사투리가 나왔다.


05시 50분을 시작으로, 화장실에 들어가 변기 위에서 한참을 앉아계시다가... 또 한참 동안 샤워기 물을 살뜰하게 맞으시는 남편의 아침 루틴도 갑자기 미워졌다.


여자여도, 훌훌 털고 바디로션까지 싹싹 발라도

15분이면 끝날, 샤워를...ㅔ
뭔났다고 그렇게나 물을 맞음서!!!

물론, 마음의 소리로 내지르다, 끝났다.



차갑고 도시적인 이미지라는 소리를 꽤나 듣는 첫인상 앞에, 누군가 '할 말도 따박따박 잘할 것 같다.'라고 말한 적 있는데...


나는 하고 싶은 말을 대부분 삼키는 스타일이었다. 마음속에서 속사포 랩을 쏟아내는 한이 있더라도, 입 밖으로 내뱉어 갈등을 조장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갈등 앞에 마음 여린 평화주의자. 사실, 말을 꺼내기도 전에 코 끝이 시큰시큰해지고 눈가에 눈물이 도는 통에... 준비했던 말들이 울먹거림 속에 묻히는 때가 많았다. 감정형이 분명하다.


엄마는 그런 나를 늘 답답해했다. 그건,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너는 내가 뭔 말을 했다고, 우냐!


남편의 컴플레인 앞에, 아침부터 눈물이 새어 나왔다. 늘 나에게도, 남편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최선을 다했던 나의 아침 루틴이었기 때문에 그랬다. 나의 최선 앞에, 물을 한 바가지 끼얹는 기분이었다.


아침부터, 이렇게 챙겨주는 걸
고마워할 줄 모르고!
쌍둥이들도 안하는 아침밥 투정을!


영양학 전공이 아닌 자의 눈으로도, 밥과 국, 반찬보다 영양 면에서 뒤지지 않는 훌륭한 식단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그렇담 괘씸하게 여긴 나는 접수된 컴플레인을 반려시키고,


(어디 한번 며칠 굶고 가봐랏. 배 쫄쫄이 맛을 느껴봐야, 고마운 줄 알지!!!)


앙칼진 말 끝에, 느낌표를 열 개쯤 붙인 말들을 야무지게 쏟아내고 아침 식사를 안 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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