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경심 May 03. 2024

당신이 아직 책을 못 쓴 이유

책 쓰기와 글쓰기의 차이

‘책 쓰기’라는 말에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책’이라는 명사에 동사 ‘쓴다’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었거든요. 책이라면 모름지기 ‘만든다’, ‘낸다’라는 동사와 함께 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거기에 하나 더 보태자면 입이 떡 벌어지는 강의 수강료와 각종 소송에 휘말리며 시끌벅적한 ‘책 쓰기’ 시장의 편견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저는 글쓰기는 나름 오랜 시간 해왔습니다. 글쓰기에 관심 있는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 저도 저만의 책을 세상에 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쉽지 않았죠. 글쓰기는 이어갈 수 있었지만 책 쓰기는 저에게 소위 넘사벽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책을 쓰며 알았습니다. 제가 그간 글은 썼지만 책을 쓰지 못한 이유는 바로 책쓰기와 글쓰기의 차이를 몰랐기 때문이었다는 것을요. 제가 생각하는 책쓰기와 글쓰기의 차이점을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해 보았습니다.


책쓰기와 글쓰기의 첫 번째 차이점은 ‘주제’에 있습니다.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며 일기를 씁니다. 영화를 보고 감상평을 씁니다. 책을 읽고 독후감을 씁니다. 모두가 글쓰기에 해당합니다. 이 글들을 묶어 책을 만들 수 있을까요? 만약 ‘소설 작법’에 관한 책을 쓰는데 ‘챗GPT를 활용한 영상 만들기’에 대한 글을 함께 탑재한다면 어떨까요? 아마도 독자는 ‘이게 뭐야?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하며 책을 덮을지도 모릅니다.      


 책을 쓰려면 하나의 주제를 관통하는 사십 개 글이 필요합니다. 주제라는 목걸이에 40개의 글 구슬을 꿰는 겁니다. 물론 글의 분량에 따라 글 개수는 달라집니다. 앞서 말한 일기, 영화 감상평, 독후감도 만약 하나의 주제에 부합하는 이야기라면 책으로 엮을 수도 있겠죠.   그러나 그간 제가 썼던 글들의 주제는 각기 달랐습니다. 제가 글은 쓸 수 있었지만 책을 못 쓴 이유는 바로 제 글들이 하나의 주제를 관통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주제란 쉽게 말해 ‘무엇’ 혹은 ‘어떤’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누군가 책을 쓰고 있다면 우리는 이렇게 물을 것입니다. “무엇에 대해 쓰고 있나요?”, “어떤 책을 쓰고 있나요?” 그에 대한 답이 바로 주제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만약 여러분이 책을 쓴다면 이런 식으로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공황장애를 극복한 엄마가 내면 아이를 통해 행복해지는 법에 대해 쓰고 있어요.”

 “나이 오십, 캘리그래피로 달라진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어요.”

 “이혼 뒤, 혼자 여행을 다니며 오히려 더 행복해진 삶에 대해 쓰고 있어요.”

 “25년 차 독서지도사가 알려주는 우리 아이 독서법에 대해 쓰고 있어요.”

 “네이버 인기 카페 주인장이 알려주는 성공하는 카페 운영법에 대해 쓰고 있어요.”     

책을 쓰고 싶다면 먼저 주제를 정해야 합니다. 그런 뒤 그 주제를 관통하는 40개 글의 목록, 즉 목차를 만들어야 하죠.


 책쓰기와 글쓰기의 두 번째 차이점은 ‘독자의 유무’입니다. 글은 일기장, 한글 파일, 워드 파일, SNS, 스마트폰 메모장 등 어디에든 쓸 수 있습니다. 글쓰기는 독자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일기 같은 경우 나 외의 독자는 없습니다. 일기는 독자가 없는 글이나 마찬가지죠. 그러니까 글쓰기는 독자가 없어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책은 반드시 독자를 염두에 두고 써야 합니다. 작가는 독자에게 감동이든 교훈이든 위로와 공감이든 정보이든 그 무엇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들이 돈을 지불하고 책을 사는 이유는 그만큼 얻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독자를 염두에 둔다는 것은 달리 말해 이타심을 갖는 것입니다. 저는 남을 위하거나 이롭게 하는 이타심을 가지고 책을 쓴다는 것이 처음에는 참 힘들었습니다. 그간 저는 독자를 염두에 두고 글을 썼다기보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써왔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독자를 염두에 두고 글을 쓸 수 있을까? 저는 고심 끝에 ‘과거의 나’를 독자로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이 무엇이 있을까, 어떤 위로의 말을 해줄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자 더디기만 했던 글의 진도가 마침내 속도를 내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나의 마음을 울리는 글은 타인의 마음도 울리는 글이 된다는 걸 알았습니다.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쓴다는 것이 어색하고 어렵다면 과거의 나를 독자로 두고 써보길 권해드립니다. 이것은 에세이뿐만 아니라 실용서를 쓰는 분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주로 정보를 주는 실용서는 책을 쓰는 작가가 자신이 지금 쓰려는 전문 영역에 들어와 배우고 알게 된 것들, 문제 해결 과정 등을 쓴다면 독자에게 제대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 완성될 것입니다. 독자를 염두에 두고 책을 쓴다면 어쩌면 여러분이 쓴 책이 누군가에겐 인생 책이 될지도 모릅니다.    

   

 마지막으로 책쓰기와 글쓰기의 세 번째 차이점은 ‘자료수집’에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그간 책을 못 쓴 결정적 이유이기도 합니다. 책 한 권을 완성하려면 적어도 A4용지 80~100장 정도의 분량이 필요합니다. 그 많은 글을 나의 생각만으로 채운다는 건 힘든 일입니다. 나의 생각을 뒷받침해줄 연구나 사례, 전문가의 의견은 글의 신뢰성을 높여주고, 나의 경험을 소설이나 시, 영화에 비유해서 표현하면 글이 더 생동감 있고 재미있어집니다. 책을 쓰는데 자료 수집을 안 한다는 것은 공부나 연구를 전혀 하지 않고 내 생각만으로 논문을 쓰겠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사실 저는 ‘자료 수집’에 대한 거부감도 있었습니다. 자료 수집을 해서 얻은 정보를 내 책에 쓰는 것은 그저 남을 따라 하며 짜깁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는 에세이, 즉 나의 이야기를 쓸 거기 때문에 자료수집 따위 필요 없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자료수집 과정을 치열하게 겪으며 저는 굉장한 성장을 경험했습니다. 잊고 있던 지난날이 떠오르기도 했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며 글감이 마구 떠올랐습니다. 나의 생각을 뒷받침해주는 전문가의 글을 보며, 각종 연구 결과와 사례들을 살펴보며, 나와 비슷한 책을 쓴 이의 삶을 엿보며 저의 철학이 더욱 확고해지고 주관이 뚜렷해졌습니다. 단 한 문장을 쓰더라도 자신감 있게 쓸 수 있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생각은 애초에 우리만의 생각이 아닙니다. 어린 시절부터 보고 배운 것들, 책에서 읽은 것, 누군가 해준 이야기 등 이 모든 것들을 조합해서 내가 내 생각을, 내 주관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또한 이 세상에 없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그리스 신화 ‘피라모스와 티스베’ 이야기를 모티프로 만든 것입니다.  셰익스피어는 피라모스와 티스베의 이야기를 자기 철학과 버무려 내면화시킨 뒤 자기 방식으로 표현했습니다. 그것은 수세기에 걸쳐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고전이 되었고요. 책 쓰기를 하려는 우리 또한 셰익스피어가 되어야 합니다. 자료수집은 책쓰기에 있어 꼭 필요한 과정입니다.      


 저는 이제 ‘책 쓰기’라는 말에 거부감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책을 쓰고 난 뒤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책을 쓴다 해도 인생이 달라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책을 쓴다고 해서 모두의 인생이 달라지지 않죠. 그것은 책을 쓰는 과정을 어떻게 보냈는가, 그리고 책이 나온 뒤 더 큰 성장을 위해 어떤 노력과 열정을 기울였는가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진정 나를 깊이 마주하고, 나아가 타인에게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책쓰기는 단시간에 삶을 바꿔줄 최고의 수단입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