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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욕박변 Oct 25. 2020

뉴욕박변: 돈 걱정 없이 살고 싶다.

로스쿨 빚만 3억 인 '빚' 좋은 개살구

한 해가 끝나는 마지막 날, 몇 시간 있으면 뉴욕 타임스 스퀘어에서는 화려한 카운트 다운이 시작될 것이고, 불꽃놀이와 함께 새해를 맞이하는 사람들로 교통이 통재될 것이다. TV 없이 산지 오래된 나는, 딱 한 번 갔었던 뉴욕의 새해맞이가 그 날의 기억과 함께 떠올랐다. 새해라고 사람들은 들떠 있건만, 나는 침대에 멍하니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이 주일에 한 번씩 나오는 월급 중 첫 반은 주택 융자금과 인터넷, 전기세 및 각종 공과금을 내면 끝이었고, 두 번째 나오는 월급의 반은 지난 한 달간 카드로 사용한 생활비와 학자금 대출에 대한 이자 $1,000 정도를 갚고 나면 끝이었다. 월급이 통장을 '스쳐가는' 반복되는 생활. 외식도 안 하고, 동생과 개 두 마리와 검소하게 산다고 사는데도 그랬다. 6월부터 11월까지는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했다. 채워야 하는 빌링 시간을 초과로 달성하면 소정의 성과급이 나온다. 난 그 해에 7개월간 성과급을 받았다. 그런데 그 대가로 결국, 응급실에 가야 했고, 인사과에 불려 가 건강에 유의하라는 경고를 받았다. 반나절 검사비 입원비는 $5,000. 그런데, 그 해 실적이 좋지 않고, 이미 초과 목표 달성금을 받았으니, 따로 보너스는 없다고 했다. 내 건강과 삶을 포기한 대가. 결국은 이렇게 소모되다가 다른 사람으로 채워지겠지. 처음에는 화가 났고, 그다음엔 서글펐고, 그리고 나니 허무했다.


나에게는 항상, 늦게 시작했다는 두려움과, 살아남아야만 한다는 절박함, 남들보다 잘하지 못하면 그만큼을 양으로라도 채워야 한다는 강박감이 합쳐져 매일 새벽 2-3시 퇴근인 생활을 6개월 동안 계속했다. 한 번은 이런 생활의 반복으로 더 이상 의자에 앉을 수도 없는 상태가 되어, 오피스 카펫 바닥에 누워 내 멘토 변호사인 탐 아저씨에게 전화해 울면서 '내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라고 딱 10분의 징징거림 후에 다시 앉아, 오후 5시부터 그다음 날 있는 중요한 증인 심문을 준비해야 했다. 대부분 뉴욕 로펌의 변호사들이 그렇듯, 나는 6분마다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 바로바로 자세히 적어 올려야 하며, 내 위에 파트너는 언제든지 내가 하루에 얼마큼의 일을 했는지 체크할 수 있다. 그런 결과, 8월에는 로펌 어쏘 변호사 중에 기록적인 빌링 시간을 채워서 내 위에 파트너가 다른 그룹에 자랑을 하고 다닐 정도였다.


내가 원하는 것은, 더 큰 집에 더 좋은 차에 호화로운 생활이 아니라, 검소하지만 먹고 살 걱정 없는, 내 삶의 일부를 남들에게 팔지 않아도 되는 그런 삶이었다, 그런데, 길이 보이지 않았다. 노후 준비는커녕, 매달 겨우 겨우 넘어갈 때가 더 많았다. 그중에는 월 $1,000불이 넘는 학자금 대출에 대한 이자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문제는 $1,000씩 갚아도, 높은 복리 이자로 매해 평균 $10,000씩 이자가 불어났다. 로스쿨 졸업 당시 학자금 대출은 $18만 불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26만 불이 되어 있었다. 한국 돈으로 3억. 또 비싼 렌트로 매달 버리는 돈이 아깝다며, 동생이 모아놓은 돈으로 디파짓을 해 주어 함께 작은 콘도를 구입했다, 나머지는 30년짜리 주택 융자로 해결했다. 남은 주택 융자금도 3억. 합치면 6억의 빚. 드라마나 영화에 가끔 나오듯 돈 많은 남자가 짠 나타나 구해주면 모를까, 희망이 없어 보였다.


 죽으라고 공부하고, 치열하게 경쟁해서, 뉴욕에 대형 로펌 변호사로 살고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학자금 빚만 3억 인 '빚’ 좋은 개살구.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 속사정이 비슷한 사람들이 많았다. 부모님 없이 힘들게 유학 생활을 견뎌내고 미국 회사에 취업을 했는데, 이민 1세대 부모님의 희생을 지켜보며 열심히 공부해 미국 주류 사회에 진출을 했는데, 그런 우리들에게, 엄청난 학자금 대출은 어떻게 갚아야 하는지, 미국 회사 생활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회사에서 제공하는 복리 혜택은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이렇게는 더 이상 못 살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가는 내가 먼저 위암에 걸려 죽을 것 같았다. 위산이 시도 때도 없이 코로 입으로 나오고, 허리, 목, 등, 어깨는 결리다 못해 굽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결. 심. 했다. 재정 공부를 작심하고 해 보기로... 그렇게 시작되었다. 내 재정적 자유에 대한 여정은...


#뉴욕박변 #결심 #결단 #재정적자유 #노후준비 #조기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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