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감과 타이프]
“끈적끈적할 만큼
밀도 높은 점액질의 문장으로,
때로는 헐렁하게 풀어진 여유로운 문장으로,
매일 한 장씩 완성시킨다는 건,
그것이 쌓여간다는 건 꽤 멋진 일 같다.”
_ 어느 날의 메모
매일 한 페이지의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우선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켜거나 펜을 손에 잡기까지의 과정이 무척이나 험난하게 느껴진다. 글쓰기의 첫 과제는 심리적 두려움, 스스로를 옥죄는 압박감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평생 글을 썼지만 매순간이 두려웠다는 박완서 선생님의 말씀이나, 글을 쓰는 첫 순간은 마치 눈을 질끈 감고 얼음으로 가득한 강물에 뛰어드는 것과 같다던 수전 손택의 말이 생각난다. 그림이 나를 이완시키고 마냥 행복하게 만든다면, 글쓰기는 나를 긴장시키고 늘 주저하게 만든다. 그 앞에서 나는 자주 절망스럽다.
그런데도 어째서 글을 쓰려고 하는 걸까. 대학에서 글쓰기를 전공하고 지금까지 글을 써서 먹고 살아왔지만 스스로에게 물어본 기억도 별로 없고 명확하게 답을 내릴 수도 없던 질문이다. 하나의 이유만 꼽을 수도 없을뿐더러, 생각할 때마다 답이 달라진 적도 있으니까. 그렇게 어려우면 그냥 안 쓰면 되는 거 아닌가 싶은데, 어째서 나는 그토록 오랜 시간 글을 붙잡고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것이 정육면체 큐브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맞춰나가는 과정과 비슷하다고 여겨질 때가 있다. 몇 개의 키워드에서 시작한 단어와 문장들을 가장 최선의 순서로 배열해 마치 하나의 유기체처럼 완벽한 구조물을 만들어내고자 한다는 점에서. 때로는 글쓰기가 지점토나 찰흙으로 무언가를 빚어내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끼기도 한다. 머릿속에 막연히 자리하고 있는 생각이나 이미지를 차근차근 언어화 시켜 점점 정교하고 섬세한 형태로 발전시킨다는 점에서.
비교적 최근에 떠올린 이유는 이런 거다. 나는 꿰매고 싶은 것이다. 누구에게나 조금씩은 있는, 당연히 나에게도 존재하는, 부서지고 찢어진 마음의 조각들을 언어라는 실로 잘 꿰매서 이어붙이고 싶다는 것. 내가 겪었던 절망이나 그로 인한 상처가 얼마나 깊든 간에, 그것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고 지켜볼 수 있을 만큼 튼튼하고 강한 심장을 갖게 되는 일. ‘나’라는 사람을 누군가에게 이해받기에 앞서 자기 자신부터 먼저 납득시키는 일. 그렇게 하나씩 이어붙인 나만의 고유한 무늬들로 결국 다른 누군가에게 가 닿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