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 10분 전 꼭 전화 주세요!
용기 내 초대했다.
'초대'보다는 '유인'에 가깝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댔다.
집에 드라이버와 렌치가 없어서, 고치고 조립해야 할 것들이 있는데 할 수가 없다고. 별로 쓸 일이 없어 집에 있지도 않은데 사러 가야 하나 고민이고, 또 내가 그걸 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했다. 조립에 소질이 없어 설명서를 봐도 잘 이해가 안 간다고 나름 귀여운 거짓말을 했다.
나는 초등학교 때 <과학 상자>를 이용해 멋진 비행기도 만들어 수상한 경험이 있고, '공대 아름이' 출신이다. 솔직히 이깟 거 고치는 데 10분도 안 걸리겠지만, 그래도 괜히 사인을 보내고 싶어 그렇게 말했다.
"혹시 그럼, 드라이버 좀 빌려주실 수 있어요? 조립까지 도와주시면 더 감사하고요, 기사님!"
수리 기사 노릇 하루만 해달라며 집에 와달라 했다.
그는 분명 내 뻔한 속내를 알아차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요, 제가 금요일에 시간이 될 것 같아요. 드라이버랑 렌치 챙겨서 퇴근하고 들를게요!"
"네! 저녁 식사는 제가 대접해드릴게요."
오래 묶어둘 심산으로 이케아에서 괜히 이것저것 조립이 필요한 소품들을 샀다.
아침부터 분주히 청소했고, 마트에 가서 장을 봤다.
어떤 걸 좋아할지 몰라 그냥 일단 고기만 잔뜩 샀다. 만들기도 쉽고 맛있고 내가 잘하는 요리를 구상해봤다. 사실 그냥 소고기를 잔뜩 때려 넣으면 웬만해선 어떤 음식도 맛있다.
그리고 거기에 어울릴 법한 레드와인도 한 병 샀다. 어떤 걸 더 좋아할지 몰라 화이트 와인과 포트 와인도 한 병씩 샀다. 그러니까 둘이 함께할 저녁 식사 한 끼를 위해 도합 세 병의 와인을 샀다.
7분. 스파게티 면을 익히는 데 충분한 시간. 물이 끓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10분.
스파게티 면을 건져내고 직접 만든 까르보나라 소스에 뒤섞으며 볶는 건 손님이 도착한 직후에 해야 가장 맛있을 때 먹을 수 있다.
그래서 "도착 10분 전에 꼭 알려주세요!"는 필수다.
향이 좋은 디퓨저를 현관 입구에 배치했고, 거실에는 캔들 워머를 켜서 온 집에 향이 감돌게 했다.
내 머리카락에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헤어 퍼퓸을 뿌렸고, 혼자 집에 있을 땐 입지 않을 법한 옷을 입었다.
화장실에 머리카락은 없는지, 밖에 나와 있는 속옷은 없는지 잘 살피고 이제 그가 오기로 한 시각까지 딱 30분 남았다. 미리 충전해 둔 블루투스 스피커로 좋아하는 재즈를 틀었다.
여유롭게 소스를 마무리하고 이제 '저 도착 10분 남았어요!'라는 메시지가 오면 물을 끓이고 파스타 면을 삶으면 타이밍이 딱 맞다.
터질 듯 행복한 기분을 안고 침대에 걸터앉아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 발생이다.
팀장님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다.
"승아 씨, 금요일 저녁인데 퇴근 시간 이후에 연락해서 미안해요.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그가 오기 10분 전까지는 꼭 다 끝내고 싶어서 키보드를 다다닥 쳤다. 생각보다 빨리 끝나지 않아 마음이 초조해서 팀장님에게 오늘 정말 급한 일이 있어서 최대한 빨리 미팅 좀 끝내 달라고 했다.
'띵동'
저런, 가스레인지 불을 올리지도 않았는데 그가 도착했다.
"미안해요, 많이 배고프죠? 저 일이 좀 있어서, 금방 끝내고 식사해요!"
"괜찮아요, 천천히 해요. 고쳐야 하는 게 어떤 거예요?"
이때만큼 야근시키는 회사가 원망스러웠던 적이 있었나 싶었다.
상차림이 끝나자 너무 맛있을 것 같다며 사진을 찍는 그를 보며 기분이 날아갈 듯했다.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볼 땐 이래서 '네가 먹는 것만 봐도 배불러!'라는 말이 튀어나오는구나 싶었다. 그래서 앞접시가 비어갈 때마다 국자로 고기를 잔뜩 떠서 올려주었다.
집에 있는 나에게 퇴근 후 온 이 남자가 문을 열고 "저 왔어요!" 하는 소리를 자주 듣고 싶어서 자꾸만 내 요리 자랑을 늘어놓았다. 이거 말고도 잘하는 음식 많으니까 많이 대접하겠다고, 그러니 이것저것 조립도 수리도 많이 도와달라 했다.
그래 놓고 나는 와인을 한 병 더 땄다.
수리 기사 노릇 해 달라고 불러놓고, 백마 타고 온 기사님으로 모셨다.
책꽂이 각도를 맞춰달라 해놓고 내 마음에 네 마음을 맞춰달라 했다. 그래서 손을 잡았고 입을 맞췄다.
그날, 우리 집에 찾아온 기사님은 부탁받은 수리는 하지 못하고 내 소원 수리를 해줬다.
다음엔 꼭 밥값 하러 와달라고, 아직도 우리 집 책꽂이가 기울어져 있는 것 좀 보라 말하자 그가 또 큰 소리를 내며 웃었다. 책꽂이가 기운 각도만큼 자꾸 그에게 기우는 마음이 도저히 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결국, 잠시 들리겠다던 그에게 불침번을 서게 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