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한 봉지에 끝난 10년의 연애

사소한 것에서 마주한 사랑의 끝

by Enero


편입해서 들어간 학교에는 당연하게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혼자 서울에 상경했고, 자취를 시작했는데 아는 사람이 없으니 치킨 배달을 시켜 먹고 싶어도 나눠 먹을 사람이 없다. 학교 커뮤니티에도 괜히 들어가 봤지만, 이렇게 사람을 만나는 게 무슨 소용인가 싶어 노트북을 덮었다.


강의실에서는 항상 창가 쪽 세 번째 줄에 혼자 앉아 있었다.

강의실 책상은 제법 낡고 오래되어서 덩치가 큰 사람이라면 겨우 끼워 넣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일체형 책걸상이었다. 원목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나무 책상과 의자 사이에 쏙 들어가 전공 서적 한 권만 겨우 펼쳐놓고 앉아 있었다.


그날은 햇볕도 제법 따뜻했고 창밖으로 본 캠퍼스 풍경에는 축제 준비를 하는 학생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도 동아리라도 하나 들어 볼까, 다른 생각을 하느라 교수님 말에 집중도 되지 않았다. 내 귀도 활동을 멎었고 눈만 그저 캠퍼스 운동장에 걸린 깃발을 따라갔다가, 광장에 앉아 있는 귀여운 커플을 따라왔다가 하며 움직이고 있었다.


“저기..”


뒤에서 갑자기 내 어깨를 톡톡 치는 바람에 너무 놀라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 유인물 좀 뒤로 넘겨주실래요?”


내 책상 앞에는 갱지에 프린트된 유인물이 잔뜩 올려져 있었다. 2인 1조로 진행해야 하는 과제. 교수님은 나 같은 아웃사이더를 위해 짝을 지어줬으면 참 좋았을 텐데. ‘둥글게 둥글게’ 놀이를 하다 ‘두 명!’하면 아무나 후다닥 붙잡아야 하는 것처럼 눈치 싸움을 해야 한다니.

여하튼 뒷자리를 향해 꾸벅 목인사를 하고 뒤로 종이를 넘기면서 눈이 마주쳤다. 유현도 혼자 앉아 있었다.

보아하니 이번 ‘둥글게 둥글게’ 게임에서는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막 복학해서 어설픈 과 생활을 하고 있던 유현과 나는 치킨 한 마리를 시켜 나눠 먹는 사이가 되었고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특별히 다툰 적도 없고 엄청나게 즐거운 에피소드가 있지도 않았다. 둘 다 취업 준비를 하는 시기가 되어서는 잠깐 소원해지기도 했고, 내가 먼저 취업에 성공하면서 유현이 한동안 서운함을 토로하거나 힘든 취준생의 고충을 뱉으면서 잠시나마 질린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그래도 그가 금방 한 중견기업에 취업했고, 우리는 다시 안정을 찾았다.




“너는 아직도 유현이 보면 설레?”


3년 차에도, 5년 차에도 친구로부터 같은 질문을 받았다. 늘 설렌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간혹 그런 순간들이 있다 대답했다.

3년 차에는 유현이 취업하고 첫 월급으로 근사하게 차려입고 청담동의 한 레스토랑을 예약해서는 나에게 기다려줘서 고맙다고 했을 때. 5년 차에는 경차를 처음 사고 집 앞으로 데려와 ‘드디어 우리도 뚜벅이 탈출이야!’라고 외치는 모습을 본 순간이 떠오른다.


그런데 7년 차부터는 이게 지금 사랑을 하는 건지, 아니면 우린 서로에게 이미 너무 익숙해서 다른 사랑을 할 생각조차 없어진 건지 문득 의문이 들었다.

내 주변에도 멋진 남자들이 접근하기도 했고, 회사에서도 사람들이 좋은 사람을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남자 친구가 있어요”라는 대답 대신 “아직 생각이 없어서요”라는 말을 더러 하기도 했다.


015B의 <아주 오래된 연인들> 노래를 들으며 누가 내 이야기를 옮겨 적었나 생각했다. ‘주말이 되면 의무감으로 전화를 하고, 관심도 없는 서로의 일상을 묻곤 하지!’

사실 조금은 무료하기도 해서 친구들을 따라 몰래 클럽을 가보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마음이 너무 무겁기도 했고, ‘그래도 유현이 만한 남자 없지’로 귀결되어 오히려 멍만 때리다 돌아오기 일쑤였다.


서른이 되자 친한 친구들이 하나둘 결혼을 했고 결혼은 현실이니 어떠니 하는 이야기들을 들었다. 요즘 집값이 어떻고, 그래서 얼마 정도는 있어야 결혼 생활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것이며, 아이를 갖는다고 가정하고 한 사람이 육아휴직으로 수입이 절반이 되면 그때도 행복할 수 있을지에 대해 시시콜콜 떠들었다.

잦아진 청첩장 모임의 끝에는 항상 “은미야, 너는 유현이랑 결혼 안 해?”로 이어졌다.


사실 그렇게 오래 만났으면서도 유현과 결혼할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속물 같아 보일 수 있겠지만 나는 좀 더 나은 환경의 남자와 결혼을 꿈꿨다. 특별히 그런 남자를 만나려고 노력을 한 적도 없고 10년을 유현과 함께 했으면서 이 사람과 결혼을 해야지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벌써 서른이 되었고, 그런 멋진 남자는 날 위해 기다려주고 있지 않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그냥 “응, 해야지”하고 어물쩍 넘겼다.


서른셋. 우리의 연애가 10년 차가 되었을 때 유현과 팔당에 드라이브를 하러 가서 여느 때처럼 커피를 마시고 한강을 바라보고 있는데 유현이 말했다.


“은미야, 우리 결혼할까?”


내 나이가 결혼해야만 할 것 같은 나이가 되었고, 내가 꿈꾸던 왕자님은 아니지만, 옆에 있는 이 사람이 나쁘지 않고… 또 마땅히 그 말에 “아니”라고 대답할 이유가 없어서 “그래.”라고 답했다.

오래 연애를 했기 때문에 서로 양가 부모님을 뵌 적도 있었고 특별히 모난 점 없는 나와 유현의 결혼도 그렇게 순탄하게 진행되는 것 같았다.




청첩장에 넣을 문구를 고르고 인쇄를 맡기고 돌아오는 길, 그냥 라면이 먹고 싶었다. 평소에 라면을 좋아하지도 않는데, 그냥 꼭 그날은 라면을 먹어야 할 것 같았다.


“유현아, 나 라면 먹고 싶어. 집에 라면 있어?”

“아니, 다 떨어져서 없는데. 저기 슈퍼 있으니 가서 사면 되겠다.”


5분쯤 지났을까, 슈퍼마켓에서 나오는 유현의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았다. 왜 아무것도 사 오지 않았냐는 말에 유현이 말했다.


“라면을 한 봉지만 안 팔고 다섯 개씩 묶음으로만 팔잖아. 너만 먹을 건데 굳이 사치야! 그래서 안 샀어. 편의점에서 사야겠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앞으로의 내 모습이 그려졌다.

먹고 싶은 게 있어도 번들로만 판다면? 내가 그걸 사면 나는 그의 눈치를 봐야겠지? 내가 너무 갖고 싶은 게 있을 때 나는 가격표를 보고 내가 살 수 있어도 유현이 사치로 생각할 수 있으니까 내려놓아야겠지 하고.


돌이켜 생각해보니 3주년 기념으로 갔던 청담동의 근사한 레스토랑 이전에도 이후에도 우리는 파스타 한 그릇 값이 15,000원이 넘어가면 비싸다고 자리를 떴고, 내가 가고 싶은 카페의 아메리카노가 6,000원이나 하면 계산을 하면서도 ‘무슨 커피 값이 이래?’ 했었지. 치킨 한 마리를 나눠 먹던 게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는 낭만이고 나눔이었는데 이제는 그 치킨에 사이드 메뉴 하나 추가하는 것도 눈치를 보고 있었네.


머리를 쿵 맞은 것 같았다. 고작 라면 한 봉지 때문에. 이런 이유로 청첩장이 배송 준비 중인 상황에서 내가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하거나 결혼을 미루자고 해도 되는 걸까?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이런 마음이 든 이상 내 남은 인생을 아무 불만 없이 살 수도 없을 것이다. 나는 혼자 살기 충분한 돈을 벌고 있었고 내 취향과 취미에 돈을 쓰고 살 수도 있는데.


나는 유현에게 가장 친한 친구와 제주도에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말했고, 혼자 제주도행 티켓을 끊었다.




그때 내가 라면이 먹고 싶지 않았다면, 아니면 내가 제주로 떠나지 않았다면 아무렇지 않게 지난 10년처럼 시간이 흘러 유현과 한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때 꼭 라면을 먹어야 했고, 꼭 제주로 떠나고 싶었다.

나는 제주도에서 만난 영화 같은 일들에 빠져들어 아빠가 한숨을 내쉬고 엄마가 눈물을 흘리고, 무엇보다 유현이 가슴 아파하는 걸 알면서도 “나, 유현이랑 결혼 안 할래.”를 선언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아직 청첩장의 잉크가 마르기 전이고, 우리를 제외한 그 누구도 청첩장의 문구가 무엇이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keyword
이전 15화전시회 티켓은 공짜로 생기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