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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현 Sep 29. 2022

어쩌면 귀가

3. 병상일기- 0.1% 만큼의 바닥/ 모든 일의 시작

  자존감의 바닥을 치면 좋은 점은 더는 발을 허공에 띄우고  있어야 하는 불안함이 없다는 것, 그거겠지. 발을 딛고 선다는 것 자체만으로 한결 마음이 편해지니까. 


  디스크 탈출로 인해 심하게 눌린 신경이 대소변 마비를 불러일으킬 확률은 디스크 환자 100명 중에 1~2명 정도밖에 없다고 한다. 경과도 사람 바이 사람, 회복 정도도 천차만별이라 장기간 지켜봐야 할 수도 있다고.... 그런데 그게 바로 나란다. 

  

  0.1%라는 숫자를 이런 데서 말고 수능 성적표에서나 봤으면 좋았을걸. (아 근데 백분율이면 높은 게 좋은 건가? 성적표를 오랫동안 안 받은  티가 이런 데서 여실히 드러난다) 하여튼 나중의 나를 위해서든 비슷한  사람들을 위해서든 아니면 정신건강이 마냥 바르지 않은 자의 심리 흐름 분석을 위해서든 0.1%의 기록을 남겨보기로 한다. (아마 내가 제일 많이 보겠지만) 


  2015년이던가 대학교 3학년 1년 휴학 동안 쉬면서 잠시 2주 정도 다리에 전기가 흐르는 느낌이 있었지만, 집 근처 정형외과에서 약만 일주일 치 먹고 멀쩡해진 적이 있었다. 그때 의사 선생님이 별거 아니라고 진단서에도 허리 쪽 말고 다르게 적어줄 테니 이럴 때 실비보험을 들어두라고 지나가듯 한 말을 통장 잔고 바닥이었던 내가 주의 깊게 들을 리가, ‘취직하고 나서 슬슬 실비보험 들면 되지!’ 하고 넘어갔던 나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멱살을 잡고 흔들며 외쳤을 테다.



 "마이너스 통장이 되더라도 실비보험이나 들어 이 녀석아!!"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고(그랬더라도 안 들었겠지. 나란 녀석....) 대학교 4학년 마지막 학기 허벅지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같은 정형외과에서 2주 가까이 약을 먹었는데도 차도가 없어서 근처 다른 정형외과에 갔다가  그곳에서 디스크가 이미 터진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 신경차단 주사를 한번 맞고 견인 치료와 물리치료를 한 달 가까이하고서도 통증이 깨끗하게 낫는 느낌이 없어서 강릉에서 그나마 제일 큰 A 병원에 가서 MRI를 찍고 5-1번 디스크 탈출 병명을 받은 게 약 2017년이었다. 담당의 선생님은 내가 아직 젊고 이 상태에서도 이렇게 걸어 들어오는 거 보니 신경차단 주사를 한 번만 더 맞아보고 일상생활에서 조심하며 아플 때만 약을 먹어보자고 하셨다.

 

  세상 쿨한 표정으로 "디스크는 원래 그 정도는 다 아파!"라고 하시는 게 수술을 재촉하는 장삿속 병원보다는 나아 보여서 믿었다. 그렇게 심하게 아플 때만 약을 먹으며 한 달, 3개월, 6개월, 1년까지 진료 기간이 길어졌다. 그래, 이때까지만 해도 허벅지 통증보단 수술이 더 아플 거로 생각했다. 


  그러다 2019년 6월 중순쯤 회사에서 급하게 테이블을 옮기는 걸 도운 뒤로 허리가 뻐근하더니 다음날부터 이전과는 다른 통증이 왔다. 누웠다 일어날 때 꼬리뼈가 칼로 찌르는 듯이 아프고 허리를 굽히기 힘들었다. 뭔가 조짐이 안 좋다는 느낌에 그다음 날 급하게 사무실에 휴가를 내고 병원에 갔지만 담당의 선생님이 안 계신 날이라 진료할 수 없다고 해서 평일 낮에 걸어서 응급실에 들어갔다. 허리가 갑자기 다시 아픈데 담당의 선생님이 없어 여기로 왔다 했더니 근이완제 링거 한 병만 맞고 예전에 처방받은 진통제를 똑같이 처방해주며 집으로 가라고 했다. 진료는 빨라도 다 다음 주에나 가능하다고. 


  상태는 평소 회복하는 시간에 배가 넘게 들었는데도 미미하게 나아져서 전화로 최대한 진료를 당겨 그 사건 다음 주에 반차를 내고서 병원에 갔다. 담당의 선생님은 얘기를 듣더니 어찌했든 응급실 올 때보단 낫다는 거니 애매한 상황이라며 이전처럼 운동 열심히 하고 약 먹어도 다음번에 또 아프면 그때 가서 MRI를 다시 찍어보자고 하셨다. 옆에서 듣던 엄마가 사무실에 계속 출근해야 하는 상황인데 계속 회복이 늦으니 예전처럼 주사 치료라도 받아보면 효과가 있지 않겠냐고 물었고 예약을 잡아주셨다. 그것도 두 달도 더 뒤인 8월 중순에, 그게 제일 빠른 일정이라고 했다. (역시 병원에서는 무조건 나 죽네 매달려야 되는 건가, 내 잘못인가 싶었다.)


  7월에는 휴가를 내고서라도 아빠가 알고 계신다는 인천에 있는 병원을 예약해서 가보겠다고 결심한 그 주 토요일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평소처럼 금요일 밤 화장실 볼일을 보고 일어나다 역대급 통증에 순간 주저앉아서 어떻게 어떻게 침대까지는 가서 누웠다. 한참을 가만히  누워있었는데도 통증이 가라앉지 않았다. 새벽에 침대에서 옴짝달싹도 못 하고 지옥을 맛보다 엄마를 불렀다. 나 지금 못 일어나겠다고, 일단 진통제 처방받은 것 좀 달라고. 약 먹고 한두 시간 좀 잤을까 아침은 돼가는데 못 일어나겠고 그 와중에 화장실 볼일이 급해서 복대를 하고 설설 메며  화장실에 앉았지만, 볼일이 나오지 않고 볼일 보는 일대 감각이 먹먹해졌음을 느꼈다. 변기 위에서 식은땀이 나고 속이 메슥거려서 엄마의 부축을 받아  화장실에서 나오다 내 방문 앞쯤에서 그대로 힘이 풀려 주저앉듯 쓰러졌다.


  정신이 다시 들 때쯤 119구급차에 실려 응급실에 갔다. 응급실에서는 걸어서 옆 침대로 갈 힘이 있고 담당의가 없어 감각이 이상하다는 말에도 단순 디스크 통증으로 치부받은 나는 마약성 진통제 링거만 하나 맞은 채  집에 다시 돌아갔다가 월요일 오후에나 진료를 봐야 한다고 했다. 나는 약 기운에 녹다운됐고 애 상태가 이런데 집에 가라는 게 말이 되냐고 엄마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그렇게 진통제 기운으로 엄마 아빠 인맥을 모두 쏟아 사설 구급차로  당일 바로 입원할 수 있다는 인천의 B 병원에 오게 되었다. 도착했을 땐 이미 주말 오후라 입원해도 진료는 불가하고 아쉬운 대로 진통제만 처방받고서 시간마다 증상 체크를 하는데 대소변만 못 본다는 것만 빼면 진통제 때문인지 통증이 줄어서 살만해졌다. 간호사로부터 주말이어도 응급상황이면 다른 병원으로라도 보내준다는 얘기도 엄마를 통해  전해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소변줄로 소변을 해결하는 상황은 여전히 불안했다. 입원 당일 소변을 본 거라곤 저녁에 조금씩 두 번 겨우 본 게  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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