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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현 Oct 01. 2022

어쩌면 귀가

3. 병상일기- 길고도 긴 여름(1)

2019.07.01.월 

관장한 뒤부터 바지에 비쳐 보일 정도는 아니지만, 항문 안쪽에서  자꾸 바깥으로 내 보내는듯한 느낌이 계속 들더니 며칠째 바지 안쪽에 변이 조금씩 묻어나오기 시작해서 날마다 바지를 갈아입고 있다. 애써 무시하려는데 똥오줌도 제대로 못 가리는 사람이 됐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것 같아 싫다. 


밤마다 욱하고 처음 갔던 A 병원을 뒤집고 싶은 화가 밀려온다. 그 이외에는 다른 감정이 사라지는 것 같다. 이 상태로 계속 병원에 더 있다가는 없던 정신병도 생길 것만 같다. 병간호 통합서비스를 본격적으로 시행한다 해서 보호자는 병실에 상주할 수 없게 되었다. 강릉에서 올라와 신경 써주는 외할머니 맘도 이해되지 않는  바 아니지만, 지금은 나 하나 신경 쓰기만도 버겁다. 진심 그냥 나 혼자 있는 게 편할 것 같다. 오늘 외할머니는 다시 강릉으로 내려가신다고 했고 엄마는 금요일부터 휴진이셨던 담당의의 오늘 회진 내용 들어보고 퇴원이나 다른 재활병원 이관 관련해서 보호자가 필요할 때 내일쯤 낮에 왔다 가실 듯하다. 


이젠 진짜 장기전인 건가 싶은데 막막하다. 100% 회복할 수 있다는 기대를 버린다 쳐도 언제쯤 일상생활이 가능할까. 2달, 6개월, 1~2년.....아님 생각하고 싶지도 않지만 평생? 너무 기본적이어서 당연한 것이 발목을  잡으니까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슬프거나 불안하지는 않은데 마음이 텅 빈 것 같다. 사회에서 나만 혼자 덩그러니 내쳐진 기분이다. 박탈감. 



2019.07.02.화

집에 가고 싶다. 퇴원 교육도 받았는데 집에 못 간다니 이 병원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니 일단 다른 서울 대형병원으로 옮겨서 얘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장기전이 된다면 처음 A 병원으로 가기로...급하게 엄마랑 동생이랑 오늘 중으로 올라온다고 했다. 


이 모든 건 나만의 탓이 아니야. 나도 아프고 싶어서 아픈 것도, 이렇게 된 것도 아니듯 너도 나를 상처 주려 했을 맘이 없었을지 있었는지는 알 수도 없고 알  바도 아니지만 나를 이렇게 만들었어. 탓할 생각 따위 집어치워. 


난 내가 그동안 괜찮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걸 오늘 알았다. 난 놀랐고 불안했고 슬펐는데 애써 괜찮다고 덮어두고 모른 척하고 있었던 것이다. 차라리 터트리고 나니 맘이 편안하다. 조금 나른해지긴 하지만 마음이 한결 가뿐해졌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에겐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고 긴장되고 감당하기 버거운 일이 계속 쏟아졌는데 견디려고만 했다. 이젠 그러지 말아야지. 내 마음에 더 귀 기울여야지. 생각해 보면 최근 몇 년 동안 아니 그동안 마음이 이렇게까지 편한 적이 없었던 거 같다. 나름 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움켜쥐고 바들바들 부여잡고만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아파도 병원 가는 걸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다는 게 답답하다.  진료받는 게 뭐 이렇게 어려운지. 바로 처음 갔던 A 병원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인생 사는 건 다 드럽고 치사해 다 밟아버릴 거야. 



2019.07.03.수 

인천에서 처음 갔던 A 병원 비뇨기과로 사설 구급차를 타고 예약 시간에 맞춰 내려왔지만 1시간 대기에 엄마만 의사 선생님 얼굴 겨우 보고 통원치료하라는 말만 떨어졌다. 아무것도 모르는데 소변줄 관리건 관장이건  뭐건 그게 뭐 어렵냐고 무턱대고 집에서 하란 말만 했다. 다른 병원에도 가보았지만, 과장이던가 하는 사람의 허가가 떨어져야 입원할 수 있다고 했다. 소견서건 뭐건 대소변 가지고는 입원이 불가하다고만 했다. 난 당장 일상생활도 힘든데 대체 나보고 어쩌라는 건지 짜증이 난다. 아무도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주지는 않고 떠넘기기에만 바쁘다. 결국 병원에서 집까지 엄마가 아시는 분 차를 얻어타고서 돌아왔다.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팀장님한테서 연락이 온다. 몸도 마음도 너무 지치고 짜증 나서 받을 여유가 없다. 모르겠다. 인생 사는 게 너무 치졸하다. 



2019.07.04.목 

아침에 차 타고 나서는데 팀장님이 또 전화하셨었나 보다. 친하게 지내는 같은 팀 인턴 몽지도 연락 오고 어제 극도로 스트레스받는 상황은 지나서 팀장님께 연락했다. 팀장님은 걱정돼서 전화하셨다고 했다. 내 상황을 들으시더니 두 달이라는 말에 작은 한숨을 내쉬시더니 일단 두 달 병가 뒤에 얘기하자고 하셨다. 지금 한숨 쉴 사람은 나인 거 같은데. 별거 아닌데 진짜 내 마음의 여유가 없구나 싶다. 


처음 갔던 A 병원에 두고 온 소견서를 찾아 어제부터 무리해서인지 오른쪽 종아리가 갑자기 땅기기 시작한 것도 물어볼 겸 또 다른 병원에 갔지만 수술한 병원에 직접 물어보라는 말만 듣고 나왔다. 어떻게 바로 옆에 앉아있는 사람 얼굴 한 번을 안 보고 칼같이 내가 그건 수술 안 했으니 모른다. 그쪽 병원 가서 얘기하라는 말만 하는지, 그런 말만 할 거면 내가  의사를 해도 되겠다 싶었다. 말 몇 마디 만에 내쫓기다시피 나오니까 내가  진짜 천덕꾸러기가 된 것만 같다. 


내일 오전에 처음 갔던 A 병원 검사가 있다. 관장을 하고 오라 했다. 그런 것쯤은 집에서 다 할 수 있다고 다들  쉽게만 얘기한다. 1시간 30분 정도를 앉아서 해야 한다는 검사인데 허리가 회복이 덜 되어서 과연 가능할지 모르겠다. 의사나 간호사한테 말했지만, 관심조차 없었다. 그래 놓고선 9시보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다음 순번 넘길 테니까 늦을 생각만 말라고만 했다. 짜증이 나는데 이 상황에 다 짜증을 내면 내 체력이 남아나질 않을 것 같다. 이젠 짜증 내기도 귀찮고 힘들다. 자기들도 나중에 똑같이 당해보면 그런 소리 나오나 두고 보자.


통원 치료해야 하는데 집에 쓰던 침대는 앉고 일어서기 너무 힘들어서 의료용 침대를 빌리기로 했다. 조금은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대소변은 차차 또 방법을 찾아야겠다. 집에 와서 좋은 거는 가족을 볼 수 있는 거랑 밥맛이 좋다는 거 딱 두 가지인 거 같다. 나머지는 몸 상태가 좋아지지 않는 이상 다 별로다. 벽에 똥칠할 괄약근의 힘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왜 계속 먹는데 나오지를 않을까. 


남친은 모르겠고 평생 봉사 정신 투철하게 나를 돌봐줄 간병인을 구해야 할 필요성은 느낀다. 병간호 외에 다른 거로 물심양면 지원해줘야지 


내가 맡아도 느껴지는 악취. 근데 씻지 못하니 어쩔 수 없잖아. 그 와중에 날씨는 좋고 난리야 아주 


이제부터 다시 시작인가. 기저귀 차던 아기 때처럼 사람 손길 필요한 때로 몸만 돌아간 느낌이다. 그래도 성인의 머리는 남겨주신 거에 감사해야 하는 걸까. 감사해야지 뭐. 감사합니다. 이런 상황에 두 발 벗고 나서주는 가족과 웃게 해주려는 친구들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이럼에도 그들이 제게 이렇게 잘해줄 수 있게끔 그동안 기회를 주신  하느님이든 뭐든 신께 감사합니다. 욕심부리지 않고 남은 생을 살아갈게요. 가끔 빡칠 때가 있긴 하겠지만 그 정도는 이해해 주시겠죠? 저도 사람인걸요. 가끔 빡치고 가끔 울더라도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노력할게요. 지켜봐 주세요. 



2019.07.05.금 

어제 검사 때문에 관장 약을 두 번이나 넣고도 볼일을 보지 못해서 결국 밤에 간호사인 고모가 도와주러 집까지 오셨다. 하지만 배만 너무 아프고 화장실에서 힘주다 갑자기 어지럽고 온몸의 힘이 다 빠져서 쓰러질 뻔한  바람에 급한 불만 겨우 끄고 지쳐서 나가떨어졌다. 고모도 많이 놀라신  듯했다. 나보고 이젠 아프면 참지 말고 아프다고 소리 지르고 살라고 했다. 그게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그 뒤로 나도 모르게 계속 대변이  나와서 기저귀를 차게 되었다. 


병원 때문에 엄마 아빠의 온갖 빽이란 빽은 다 쓰는 듯 아직은 인맥이 지배하는 우리나라 사회의 모순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한 시간 넘게 비뇨기과 검사를 받아보았지만 (요역동학검사) 역시나 디스크 때문에 신경이 손상을 입어서 생긴 이차적 증상이라 이 과에서는 치료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다시 같은 A 병원 척추센터 담당의한테 가서 사정을 얘기하고 현 상황 케어 문제 해결을 부탁하는 수밖에 없다고 해서 다음 주 월요일 오후에 다시 척추센터 담당의 예약을  잡았다. 이럴 때마다 몸에 여유가 싹 사라지고 내 인간성이 팍팍해짐을 느낀다. 이게 내 한계인가. 신경이 곤두서고 두통에 시달린다.  


 1. 7월 8일 (예약 당일) 실밥 풀어야 하는데 풀어줄 수 있는지  2. 소변줄 교체, 집에서 관장 안 될 때 외래 진료할 수 있는 곳(시내) 연결  3. 현재 약 처방 받은 것 이후로도 계속 먹어야 하는지, 필요하다면 추가 처방 가능한지  4. 회복될 때까지 척추 진료를 계속 받아야 하는지 5. 의사 선생님이 보는 내 회복 가능성, 시간 6. 조금이라도 도움 될만한 재활 운동법 7. 집으로 온 뒤로 오른쪽 종아리 뭉침 현상 내 회복을 위해서 당면한 과제들, 잘 풀어가고 싶다. 


내 몸에서 구린내가 나는 게 느껴진다. 날은 점점 더워지는데 일단 수술 때문에 제대로 샤워도 못 했고 대소변을 의지대로 못 보니까 더 그렇다. 당분간 사람들 만나거나 외출은 힘들 것 같다.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 나를 위해서도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사람은 역시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구나! 여실히 느꼈다. 지금 이렇게  민폐를 오만군데 끼쳤으니 (특히 가족들, 텅장팸, 과 동기들한테는 내 모든 걸 내보였는데도 그걸 다 받아주었으니) 앞으로 이 사람들한테 두고두고 갚을 일만 생각해도 인생이 짧겠구나 싶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 듬뿍 사랑을 주기에도 시간은 모자라니 성공, 명예, 권력보다는  최대한 많이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내 건강을 유지하면서  남은 인생을 살고 싶다. 


오늘 하루도 종일 속 시끄럽다가 이제 좀 다시 차분해진 느낌이다.  요새 하루하루가 아주 스펙타클한 바람에 진이 빠져서인지 거의 반강제로 꿀잠을 자게 된다. 이런 상황에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되는 내 모습이  웃프다. 


침대에서 앉고 일어설 때 너무 힘들어서 의료용 침대를 3개월 대여했다. 40만 원, 가격도 나쁘지 않다. 얼른 몸 추슬러서 반납해야지. 일단 지금은 살 것 같다. 일주일 동안 병원 침대 썼다고 그새 몸이 아늑함을 느낀다.  이러다 반납하고도 의료용 침대 매트리스를 살지도 모르겠다.


이번 주말이 지나면 이제 수술한 지 이 주차가 된다. 실밥을 풀고 이틀 뒤면 샤워도 가능하다고 했다. 대소변 말고는 하루가 다르게 회복되고 있다. 보조 카트 없이 서서 걸어 다니느라 집 오고 난 뒤로 오른쪽 종아리 바깥이 뭉치는 느낌이 여전하지만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다. 


지난 이 주간의 시간이 진심 이십 년보다 더 긴 억겁의 시간 같았다. 엄마도 농담처럼 이 주 동안 이십 년은 늙은 것 같다고 했는데 동감한다. 우리 가족들을 한방에 폭삭 늙게 해버린 데 유감이지만 별수 없으니 앞으로 잘해야지. 승질 덜 부리고 돈도 벌어드리고 여생을 모두 함께 행복할 방법을 찾고 싶다. 


올해 초 외할머니가 내가 2019년부터 삼재가 시작되니 절에서 가져온 부적을 꼭 지니고 다니라며 주셨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큰 소용이 없었던 거 같다. 일어날 일은 어떻게든 벌어지는 듯, 아니면 그나마 부적이라도 써서 이 정도 선에서 끝난 걸까. 모르겠다. 다만 혹여 로또라도 당첨돼서 벼락부자가 되면 다른 건 몰라도 병원을 살 거다. 아프면 의사들 신경 쓸 것 없이 모두 나만 케어할 수 있게! 이기적으로 사는 꿈을 꿔 본다. 


만에 하나 대소변 장애가 영영 회복되지 않는다 해도 인생은 계속될  테니까 살길을 찾아야겠지. 나는 무얼 할 수 있을까, 책 자판기 사업을 진짜 벌여야 하려나? 교육 쪽은 내 적성이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큰 회사나 혼자서만 일하는 것도 즐겁지는 않은 듯하다. 와플 팀처럼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벌이는 프로젝트는 상당히 짜릿했다. 결국은 기술 하나를 가지고 평생을 살아가는 길드의 장인 같은 삶이 적당한 것 같다. 어쩌면 편집이나 에디터 기획 쪽으로도 삶을 꾸려 볼 수 있지 않을까? 많은 생각을 해본다.


이렇게 오랫동안 일기를 꾸준히 써본 지 참 오랜만인 것 같다. 약간 내 생애 다시는 없어야 할 이 상황을 기록해둬야 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사명(?)이, 수 없이 펑펑 터지는 사건들 속에서 묻히지 않기 위해, 내가 더  미치지 않기 위해 간절히 매달렸다고 할까, 어쩌면 도망친 걸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고 건강이 더 나아지게 되면 이 글도  자연스럽게 멀어지겠지. 몇 년 뒤에 웃으면서 "그땐 그랬지." 이 글을 편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아프긴 했지만, 생각만큼 늘상 빡치지는 않았기에 이런 글을 쓸 수 있었고 계속 이어 나아갈 수 있었다.


자고 일어났더니 기적처럼 대소변 장애가 없어졌으면 좋겠다. 마냥 웃자는 소리가 아니라 어느 날 이게 가능할 것만 같다. 자꾸 이 글을 마무리 짓는 느낌이 든다.  이 글이 너무 오래 이어지지 않기를. 



2019.07.06.토 

일기를 쓰고 싶은 생각이 안 들 정도로 평온한 하루 비로소 집에, 내 방에도 한여름이라는 제시간이 찾아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중이다. 책 욕심도 생기고 여름 햇살에 맞춰 창가에  발로 달 예쁜 레이스 천을 살 마음의 여유가 생길 정도. 다만 몸에서 나는 똥오줌 냄새는 의식하지 않으려 애쓸수록 더 신경이 쓰인다. 벌써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곳에 가고 싶지만, 이 상태, 냄새로는 힘들겠지.... 


무무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묵묵히 내 맘 헤아려주는 언니와 몽지가 정말 고맙다. 여름날 내 몸에 생기를 주는 상큼한 자두 같은 사람들!  회사에서 얻은 제일 귀중한 것이 있다면 단연 이 두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2019.07.07.일 

병원에 가서 뭐라 말할지 잠시 시뮬레이션을 돌리기만 해도 화병이 안 난 게 용할 정도로 울화통이 치민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의사가 보일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다 보니까 생각만으로도 두통이 오고 의사를 패버리고 내가 철컹철컹 잡혀가는 것밖에 답이 없나 싶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을 했는데 이런 결과가 나온 것에 대해 아직은 누구의 탓을 하고 싶은 게 아닐까. 그래서 이런 번뇌에 휩싸이는 걸까. 생각이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가서 애써 아예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 밤도 잠자기는 글렀으니까. 


생각을 끝내고 잠시 잠들었다 싶었는데 결국 새벽 두 시에 깨서 다시 또 생각 중. 아직 병가가 끝나기까지 6주 정도가 남은 상태, 회사, 교육이라는 것에 큰 미련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일을 한다는 사실 자체에는 미련이 남아있었나 보다. 6주가 끝난 뒤에도 대소변 문제가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내 손으로 먼저 사표를 쓰고 산재를 신청해야 할 텐데 그 상황만큼은 피하고 싶다. 특히 산재만은....서로 상처받을 가능성이, 내가 아직 문화 쪽에 관심이 남은 상태에서 이 좁은 바닥에 더는 발붙이지 못할 만큼 일이 커질까 봐 겁이 난다. 회복에 조급한 마음이 도움 될 게 하나도 없다는 건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이런 상황에서 마음은 그러지 못한다는 모순이 생긴다. 제발 부디 대소변이 쉬는 기간 안에 돌아오길. 만일 정말 그게 안 된다면 최소한의 여지를 남기고 서로 웃으면서 헤어질 수 있기를 바라고 바랄 뿐이다. 


나는 남몰래 특히 가족들 모르게 사부작사부작 무언가를 하는 것을 참 좋아한다. (지금 이 일기도 그렇고) 보통 사람들은 목표가 생기면 일부러 주위에 사실을 공표하고 알리는 게 큰 동기부여가 된다는데 나는 오히려  그렇게 됐을 때 그 강제성, 압박이 나를 너무 크게 짓눌러서 스트레스를 받고 불필요한데 너무 공을 들이는 바람에 결과물도 크게 만족스럽지 않은 경우가 왕왕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혼자서만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지난 와플 팀을 통해 나와 마음이 맞는 사람이라면 공식적인 압박인 공모전과 팀플에서도 역량을 발휘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스스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적당히 사적 업무의 독자성을 가지면서도 나와 성향이 잘 맞는 소규모의 구성원에 속하는 일을 찾고 싶다. 이런 걸 보면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꼭 문단에 속해있는 작가나 동인과 같은 일을 내가 찾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여지는 많으니까! 


항생제 주사를 안 맞아서인가 입원하는 동안 잠잠하던 인중 주변에 뾰루지가 다시 올라오기 시작한다. 지난번에 장염으로 입원했을 때에도 느낀 사실이지만 항생제 주사를 맞으면 피부 트러블이 항상 급 사라지던데 이번에도 역시나, 항생제와 피부가 잘 맞는 건가. 의문이다. 


똥 기저귀 차고 소변줄 꽂은 이 와중에 두 달 동안이나 안 하던 생리가 터졌다. 어쩐지 어제 입 주변에 뾰루지가 올라오더니! 몸이 지 혼자서 아주 북 치고 장구 치고 다한다. 내 몸인데 내 컨트롤 다 무시하고 지 혼자서  아주 마이웨이로 사는 거 같다. 아무리 내가 몸 생각 안 했다고 쳐도, 다른  때 보다 긴장이 좀 덜한 순간이 많아졌다 쳐도 이건 너무하지 않냐!! 하도 머리카락이 지 멋대로 자라서 내 곱슬머리야말로 내 몸과 별개의 생명체인 것 같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우스갯소리처럼 하곤 했는데 이젠 요도, 괄약근, 방광과 장마저도 꼭 내 머리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보면 얘네들도 오죽하면 저럴까 안쓰럽기도 하고 그래, 이건 애증이다.


요즘만큼 사소한 일이지만 일상생활을 가로막는 중대한 일들에  멘탈이 자주 파스스 부서지는 날들이 앞으로 더 내 인생에 있을까. 그래도 이전보다 그나마 긍정 사고를 유지할 수 있는 건 멘탈이 부서지는 만큼 회복하는 탄성도 높아졌다는 것. 다시 마음의 중심을 잡는 시간이 짧아진다는 건 회복이라는 목표에도 장기적인 내 남은 삶에도 좋은 영향을 끼칠 것 같다. 예전에 김연아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 자기의 성공 비결을 실수해도  생각이 그 사실 자체만 매몰되지 않고 다시 원래 할 일만을 생각하는 단순함(?)이 남들보다 빠르고 나은 것 같다고 한 게 생각난다. 별거 아닌 일에 김연아의 성공 비결까지 운운하는 게 웃기기도 하지만 나도 이전보다  조금 더 성장한 거 같아 기특하다. 이럴 때 칭찬해 줄 사람도 나뿐이겠지. 잘했어. 


집 세면대가 허리를 굽혀야만 쓸 수 있는 높이라 양치랑 간단한 세안은 내 키에 맞는 부엌 싱크대에서 하고 있다. 생각해 보니 내 키에 맞는 물건을 사용한 적이 별로 없었다. 허리 디스크가 알게 모르게 항상 무리하고 있었구나 이제서야 깨달았다. 나중에 내가 살 집에는 내 키에 맞는 물건들을 채워 넣어야겠다 다짐했다. 나는 당연히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이니까. 


김치찌개에서 양념치킨의 향기가 난다. 양념치킨이 먹고 싶나 보다. 


몽지 말대로 누가 신경을 그렇게 쓴다고 나가는 걸 주저하고 있었을까,  냄새나면 알아서 피해서 가던지. 병원에서 말한 퇴원 후 일주일이 지나는  대로 바깥 산책하러 나가야겠다.(그러고서 결국 나가지 못했다.) 


일어났을 때 일을 다 해치워야 해서 스마트폰 리마인더에 할 일을 적고 있다. 1. 창문 길이 재기 =약 150×150cm  →여기에 알맞는 대폭 레이스 2마 주문 완료! 2. 생리도 터졌는데 남성 호르몬이 있는지 턱 한구석에 또 굵은 턱수염이 수북이 났다. 족집게로 하나씩 뽑아서 다시 맨들해졌다. 기분 좋음. 3. 똥오줌 냄새가 신경 쓰여서 내가 좋아하는 자몽 향수를 침대 정리할  때 조금 뿌렸을 뿐인데 기분이 참 좋다. 침대 옆 필수템으로 합류! 이제 누워야지. 카뱅 적금은 꼬박꼬박 잘도 나간다. 아직 병가라 월급이 나왔고 병원비는 부모님이 감사하게도 부담해 주셔서 적금을 당장 깨지는 않아도 될 것  같긴 한데 만일 그만두게 된다면 4개월 치 여유자금으로는 만기는 힘들지  않을까 싶다. 첫 적금은 역시 중도해약인 건가.... 


나는 내가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지만, 문학적 소양이 그리 뛰어난 것 같지도 않다. 과 동기들의 글만 봐도 세상에는 글만으로 날고 기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다만 확신하는 것 한 가지는 쓰지 않고서는 절대 삭혀지지 않을 나의 글도 나름의 의의를 지닐 수 있다는 것, 세상에 이런 글도 하나쯤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내 삶도 그렇다. 지금까지 그리 뛰어난 삶이라 하긴 어렵지만 최근 일련의 사건들만 보면 영화를 찍고도 남을만한 역경은 겪었으니 내가 희망의 아이콘이 되지 못하리라는 법도 없다. Why not? 


하루 종일 배가 살짝 아프다가 말기를 반복한다. 볼일도 더는 안 나오는데 생리통인가 싶어도 진통제 성분이 포함된 약을 먹어도 나아지질 않는 거 보니 그것도 아닌듯싶다. 제발 좀 그만 아팠으면 좋겠다. 진료를 앞두고 집에 전운이 감돈다. 아픈 걸 진료받는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는 한데 이젠 더는 진료받기도 힘드니까... 내 돈 내 시간 들여 이렇게 스트레스받아야 하는 상황이 지친다. 


2019.07.08.월 

오늘 처음 갔던 A 병원 척추센터 담당의 진료를 받으러 갔는데  마미증후군이라고 이 주면 골든아워도 지났는데 왜 이제서야 여기에  왔냐는 말과 함께 B 병원 쪽에서 한 수술이 잘 안 된 것 같다고 했다. 20%  정도 자기 예상치보다 미비하게 수술이 진행된 것 같다고. 솔직히 자기는 왜 이렇게밖에 수술을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왜 하필 그 병원이었냐고. 나는 있는 사실 그대로를 말했다. B 병원에 가기 전에 이 병원 응급실에  먼저 실려 왔는데 내가 지금 담당의에게 진료받고 있고 담당의가 주말이라도 통증이 심해지면 언제든 자신을 부르라고 했으며 겁나 아프고 항문 쪽 감각이 떨어진 것까지 다 말했지만, 응급실에서 당신이 없다고  진통제만 놔주고 월요일 진료를 잡아줄 테니 집에 가라고만 했다고.  입원이라도 원한다고 우겼지만, 알아봐 준다고만 말만 하고 계속 시간만 가서 급하게 아는 사람 통해서 그 병원에 내가 알아서 간 거라고. 그랬더니  왜인지는 모르지만 그날 내 응급실 기록이 아예 없다고 했다. 그 상황이라면 응급실에서 수술 가능한 병원으로 바로 이송해줘야 하는 게 올바른 태도라고 의사 본인도 말해 놓고선 그 책임에 대한 말은 회피했다. 예상 못 한 반응은 아니었지만 A 병원 담당의는 이 상태라면  대소변 마비 회복은 사실상 희박해서 재활해도 지금보단 조금 나아진  상태에서 마비가 온 상태 그대로 평생 이러고 살아야 하는데 그나마 조금이라도 회복 확률을 높이려면 재수술을 해야 한다고. 그건 원래 수술을 한 B 병원 의사가 하는 게 최선이긴 하지만 안 되면 자신이라도 해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웃긴 사실은 수술해서 지금보다 대소변 마비가 좋아질 확률이 10% 정도인데 최악의 경우는 신경 손상을 더 입어서 대소변 마비에 발목 밑까지 마비가 와서 걷는 게 힘들어질 수도 있다고 하는 거다. 한마디로 발목을 걸고 대소변 마비 회복 확률을 높이자는 건데 이 모든 결과를 듣는 데만 3시간의 기다림이 필요했다. 아직 수술 실밥도 못 푼 상태에서 앉았다 일어났다 하는 것도 힘든 상황이라 계속 기다리기엔 너무 무리여서 막판에는 침대를 대여해 누워있었는데도 체력적으로 너무 버겁다. 기다리는 동안 A병원 담당의는 급히 응급실 의사를 자신의 진료실로 불러 상황 파악을 하는 것 같았다. 애초에 왜 응급실에서 제대로 대처해주지 못한 건지, 수술은 왜 이렇게 말이 나올 정도로 미비했던 건지. 이 모든 게 내가 했던 최선의 선택의 결과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엉망인데 아무도 책임지는 인간이 없고 온전히 내가 이 모든 상황의 피해자가 되어야만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더는 화도 안 나고 지친다. A 병원에서는 최대한 빨리 수술한 병원에서 재수술이 가능한지 의사를 타진해보라고 해서 당장 내일 오전 11시에  부모님만 B 병원 의사를 만나기로 했다. 솔직히 부모님께 죄송하지만 두 분만 보내는 게 미덥지 않다. 엄마는 지금 너무 감정적으로 격해진 상태이고 아빠는 내가 지금 상태에서 회복되리라고 애써 믿고 싶어 하는 눈치이다. 그러니 오히려 수술한 의사를 옹호하고 이 상황에서 한방요법을 계속 운운하는 거겠지. 그런데  나도 솔직히 재수술할 엄두가 나질 않는다.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지금도 최악인데 더 최악의 순간이 올 확률이 닥친다면 내가 지금만큼이라도 견딜 수, 아니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렇다고 재수술을 안 했다가 대소변 장애가 회복되지 않았을 때 ‘수술을 다시 할 걸 그랬어.’ 뒤늦게 후회하게 될까 봐도 겁이 난다. 모든 상황이 신이 있다면 그 존재가 내 인생을 말아먹고 싶은 양 엉망진창으로 흘러간다. 여기서 어떤 선택을 해야 올바른 선택일까. 나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선택해야만 하는 순간이 촉박하게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이 참 엿 같다. 그렇지만 이 상황에 절대 호락호락하게 굴복하진 않을 거다. 신이, 그 어떤 존재라도 나를 망치는 걸  무력하게 보고 있지는 않을 거다. 바람이 제 아무리 나그네의 옷을 벗기려고 바람을 불어 대도 나는 옷깃을 붙잡고 옷을 더 껴입고 나아가지 순순히 얼어 죽지는 않을 테다. 제 아무리 설쳐 대봐라. 내가 가만히 당하고만 있겠나. 


 엄마는 이 상황을 내가 내 주위 사람들에게 말하는 걸 걱정한다. 특히 회사 동료들에게 말하는 건 더더욱. 그들이 결정해 줄 수 있는 건 없지만  나중에 말이 어떻게 새어나갈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거였다. 나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지만 텅장팸과 과 동기들, 무무언니, 몽지에게 비밀로 당부하고 이 사실을 알렸다. 이 사람들에 대한 믿음마저 잃고 싶지는 않다. 그들이 내 선택에 도움을 주진 못할지라도 내 마음을 다스리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엄마는 간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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