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스크>> 에서 주인공이 마법의 마스크를 쓴 후 내뱉는 대사다. 소심하고 찌질했던 그는 완전히 딴사람이 되어서 대범해진다. 금발 머리의 아름다운 여자 주인공도 한 번에 유혹한다. 나도 그 가면을 쓰고 센캐가 되고 싶다. 좋아하는 연예인 중 한 명인 효리 언니처럼 당당해지고 싶다.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하고 싶은 말 해도 밉지 않은 캐릭터가 되고 싶다.
우리는 모두 여러 개의 마스크를 쓰고 있다. 그것을 쓴 채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얼굴에 딱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상황이 발생한다.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리게 될 수도 있다. 나도 그렇다. 본래의 모습이 무엇인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중학생 시절 동생과 싸우면서 화가 난 그녀가 나에게 한 말이 아직도 머리를 맴돈다. “언니는 다중인격이야. 다중이~ 사람들이 언니의 본모습을 알아야 하는데!”
다중인격까진 아닌 것 같은데 지금은 세 개 정도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다. 첫 번째는 웃음 가면이다. 대외적인 활동을 하기 위해 집 밖을 나갈 때 쓴다. 이것을 쓰면 일단 모든 대화를 웃으면서 시작하고 미소로 마무리 짓는다. 웃는 게 장땡이야 라는 마인드로 계속 그러고 있다. (헤프다 헤퍼) 처음 보는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왜 저렇게 웃지? 뭐 잘못 먹었나?’ 하지만 유아 시절부터 너무 오랫동안 쓰고 있었기에 이 가면은 쉽게 벗을 수가 없다. 떨어지지 않는다. 집에 돌아와서 가족과 있을 때야 얼굴에서 분리된다.
두 번째는 그림책 『착한 아이 사탕이』처럼 착한 어른 가면이다. 위에 웃음 가면과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다르다. 시댁을 갈 때마다 쓴다. 그곳에선 쉽게 웃지 않는다. 눈치를 살피며 바짝 얼어 있다. 어머니가 뭐라고 한 소리하면 찍소리도 못하고 듣고만 있다가 억울해서 훌쩍훌쩍 눈물만 흘린다. 아이가 사촌들과 핸드폰 게임을 온종일 해도 속 터지게 보고만 있다. 잔소리를 할 수 없다. 집에서는 야, 야 거리는 남편에게 “00 아빠~ 밥 먹어요.”라며 안 쓰던 존댓말을 쓴다. 이쯤 되면 착한 게 아니고 바보가 아닌가 싶다. 고학년이 돼서 머리가 여문 아들도 안다. 엄마가 할아버지 댁에 가면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을. 자기에게 화를 낼 수 없다는 것을.
그런데 얼마 전 이 가면에 잠깐 금이 간 순간이 있었다. 제사 준비를 오전 내내 하고 점심을 먹을 시간이었다. 몇 시간째 전을 굽고 있었기에 속이 느글거렸다. 점심 메뉴가 비빔밥이라서 밥을 몇 숟가락만 넣고 위에 나물을 잔뜩 올렸다. 그걸 본 어머니가 기어코 한소리를 했다. “너는 다이어트를 왜 시댁에서 하냐? 밥이 하나도 없네.” “아뇨, 어머니 여기 밥 넣었어요.” 내 말을 못 들었는지, 들었는데 무시하는 건지 계속 궁시렁거린다. “다이어트는 집에서나 하지. 시댁 밥을 먹기 싫은 거가?” “아뇨! 여기 밥 넣었다고요.” 떨리는 목소리로 어머니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고 항변을 했다.
지금까지 십 년 넘게 며느리로 살면서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순간 그 자리에 앉아있던 아주버니 두 분, 시아버지 모두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짜증 나게 남편은 출근하고 없었다. 하긴 있었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니, 엄마는 제수씨가 밥 넣었다는데 왜 그래~.” 삼 형제 중 가장 순둥이인 작은 아주버님이 편을 들어주신다. 그 순간 또 수도꼭지가 터져버려 훌쩍거리며 꾸역꾸역 앉아 밥을 먹었다.
그림책 속 사탕이처럼 완전히 가면을 벗고 지금까지 쌓아 놨던 것을 다 토해내고 싶다. 하지만 용기가 나지 않는다. 효리 언니 같은 성격은 다시 태어나야 가질 수 있나? 부럽다 부러워. ‘착한 아이증후군’을 구글에서 검색하니 이렇게 나온다.
<남의 말을 잘 들으면 착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강박관념이 되어버리는 증상. 꼭 말을 잘 듣는다는 생각보다도 '착한 사람으로서의 이미지'를 유지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에 매여 있다. 속으로는 이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겉으로는 고분고분해서 내면과 외면의 모순이 일어나는 경우가 문제가 되는 것> 생각보다 심각한 병인 듯하다. 밟히면 꿈틀거리는 지렁이가 되어서 가면에 한번 금이 가게 했으니 이제부턴 참지 않으리. 배 째라다. 화병 안 생기게 할 말은 하고 살아야겠다.
마지막 가면은 SNS상에서 쓰고 있다. 뚱뚱하고 늙어버린 내 모습이 보기 싫어서 꼭 어플로 사진을 찍는다. 그것으로도 부족해서 포토샵 기능을 이용해 눈을 크게 하고 얼굴을 깎고 다리를 늘이며 메이크업 기능으로 마무리한다. 터치 몇 번으로 딴사람이 되어버린다. 사진 속 나는 내가 아닌데 그렇게까지 수정을 해서 플랫폼에 올린다. '좋아요'를 마구마구 받고 팔로워가 많아지고 싶다. 이런 내 모습을 보며 우리 아이도 어플이 아니면 사진을 잘 찍지 않으려고 한다. 꾸며낸 삶을 진짜라 믿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 가면은 위의 두 가면보다 더 벗을 수 없다. 벗기가 싫다.
이렇게 몇 개의 가면을 번갈아 쓴 채 중심을 잡지 못하고 부유하고 있다. 영화 《마스크》의 주인공은 마지막 장면에서 마스크를 강물로 던져 버린다. 자신을 되찾기 위해서. 하지만 나는 이것들을 과감히 버리기에 용기가 나지 않는다. 오늘도 여러 개의 가면을 양파껍질처럼 겹겹이 쓴 채 집 밖을 나선다.
-관련 그림책과 영화 소개-
아이들에게 자신의 참모습에 대해 돌아보고 생각할 기회를 주는 그림책입니다. 섬뜩할 정도로 착한 사 탕 이가 참 자아를 찾아가는 모습이 익살스러우면서도 통쾌하게 그려지고 있어요.
-출처 예스24 책소개-
에지 시(Edge City). 은행에서 단조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던 평범한 은행원 스탠리. 어느 날 그는 우연한 기회로 고대 시대의 유물인 마스크를 발견한다. 그런데 이 마스크는 아주 신비로운 힘을 가지고 있다. 스탠리가 마스크를 쓰면 초인적인 힘을 가진 불사신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