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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방별곡 Sep 06. 2023

다이어트의 대물림.

교복핏이 그렇게 중요하니?

열 살의 여자아이는 거울을 보며 드라마 대사를 읊조리는 시간을 좋아했다. 백설공주에 나오는 계모 왕비처럼 거울 속에 비친 사과 같은 얼굴은 참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사춘기로 2차 성징이 시작되니 맨들맨들한 이마에 좁쌀 여드름이 뒤덮이기 시작했다. 귀 밑까지 댕강 잘린 짧은 단발머리, 사과 같았던 얼굴은 각진 턱에 네모공주로 바뀌었다. 그렇게 중학생이 된 소녀는 더 이상 거울을 쳐다보며 흐뭇해하는 대신 한숨만을 내쉬었다. 자신을 이렇게 낳아준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깊어지더니 중고등 시절에는 거울을 잘 쳐다보지 않게 되었다.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의 요즘 행태를 보며 그 시절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초승달 눈썹의 동그란 이마가 예뻐서 짧은 앞머리가 잘 어울렸던 녀석의 이마에 좁쌀 여드름이 나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세수도 잘 안 하고 눈곱만 겨우 떼며 학교를 가던 아이는 여드름이 무서웠는지 아침마다 30분씩 샤워를 한다. 밤에 샤워를 하고 자라고 잔소리를 해봤자 묵묵부답.. 대답도 잘하지 않는다. 샤워를 다 끝내면 이번에는 드라이기로 십 분이 넘게 볼륨을 넣는다고 헤어 브러시로 머리를 부풀린다. 

아침식사로 차려 놓은 토스트는 다 식어빠져 딱딱하게 굳어가고 욕을 한 바가지 하고 싶지만 하루의 시작부터 부딪히고 싶지 않다. 입술을 꽉 깨물며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고 있는데 녀석이 갑자기 소리를 지른다.

"엄마! 빨래 안 했어? 입을 옷이 하나도 없잖아."

"뭐라하노? 반바지랑 반팔티 개서 넣어놨는데!"

방에 들어가니  바닥에 벗어 놓은 옷들이 널브러져 있고 정리해놓은 옷장은 엉망진창이다. 결국 나는 또 이성을 잃었다. 

"야!! 방 꼬라지가 이게 뭐고? 엄마가 일하고 와서 힘들어 죽겠는데도 빨래 다 개서 정리해 놨더니 그걸 이렇게 개판으로 만들어놓나? 여기 검은색 반바지랑 티 있네? 안 보이나?"

"그 옷은 딱 붙어서 살쪄 보인다고. 최근에 산 티 네이비에 곰돌이 캐릭터 들어간 거 그게 좋은데 아직도 안 빨았나?"


뚜껑이 열렸지만 더하면 심한 욕이 나올까 봐 입을 닫았다. 엄마가 아무 대꾸도 없으면 선을 넘어 버렸다는 것을 깨달은 아이는 뭐라고 툴툴거리며 결국은 검은색 반바지와 티를 입는다. 7시에 일어났는데 벌써 40분이 넘었다. 이젠 제발 아침을 먹고 등교를 했으면 좋겠는데 또 건드린다. 

"나 빵 안 먹어. 어제 운동하고 잤는데 살찌니까 방울토마토랑 닭가슴살 줘."

"그냥 먹어라. 아침에는 탄수화물을 먹어야 머리가 잘 돌아가지. 배고프면 수업시간에 집중 안된다."

"빵 안 먹어도 배 안 고프니까 방토랑 닭가슴살 줘."


미칠 것 같다. 분명히 나도 다이어트에 목숨 거는 시절이 있었지만 초등학교 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아이는 벌써 중학교 때 입을 교복핏이 걱정이다. 그래서 여름 방학 때부터 다이어트를 하기 시작했다.  외모에 대한 걱정이 끝도 없다. 머리도 너무 크고 키도 친구들에 비해서 한참 작고 다리는 더 가늘었으면 좋겠고.. 빼빼로 마냥 삐쩍 마르고 싶단다. 처음에는 움직이는 것을 정말 싫어하고 또래보다 과체중이라서 매일매일 운동을 하는 아이를 응원했다. 유튜버에 내가 구독해 놓은 땅끄부부 영상을 보면서 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이 귀여웠다. 소파와 한 몸이 되어 초코파이를 먹으며 자신의 열정을 응원하는 엄마에게 엄마도 할 수 있다며 포기하지 말라고 같이 운동하자던 녀석이 기특했다. 


그런데 자기 딴에는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몸무게가 줄지 않으니 답답했나 보다. 다이어트 관련책을 서너 권 읽더니 운동보다는 식단이 더 중요하다며 이제는 먹는 것마다 칼로리를 계산한다. 엄마가 다 해봤는데 칼로리 계산은 의미가 없다며 잘 먹어야 키가 큰다고 타일러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사놓으면 이틀 만에 사라졌는데 독하게 먹지 않고 있다. 저녁 일곱 시가 넘어서 집에 돌아오니 밥은 꼭 먹었으면 좋겠는데 방울토마토만 챙겨달라는 아이가 안쓰럽다가도 화가 난다. 쓸데없는 걱정이 다시 시작된다. '아이돌에 빠지더니 쟤가 설마 연예인이 되려고 저러나? 아니면 좋아하는 여자 아이에게 고백했는데 뚱뚱하다고 대차게 거절당했나?' 교복핏이 중요하다며 다이어트를 하는 아이의 말을 믿을 수가 없다. 


하긴 사춘기 시절 나도 2차 성징으로 살이 많이 쪄서 외모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순진하게도 어른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면 그때 가서 다이어트와 성형으로 인생이 바뀐다는 말을 또 믿었었다. 공부를 핑계로 마음 놓고 먹었다. 하지만 비싼 한약을 먹고 빼도 다시 요요가 왔고 운동으로 십 킬로 넘게 빼도 요요가 왔다. 결국 지금까지도 다이어트라는 네 글자를 평생의 숙제처럼 달고 다닌다. 나의 이런 모습이 아이에게 대물림된 건 아닌지 자책과 한숨으로 시작되는 하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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