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물흐물 녹아지길
생각과 달리 불쑥 튀어나온 말들이 가시가 되어서 도로 그녀의 가슴을 찌른다. 그날 이후 두 달 넘게 연락을 안 했던 딸.
'야속한 기지배' 욕이 나오지만
며칠 후면 딸의 생일이라
미역국을 끓이기 시작한다.
냄비에 찬물을 받고 미역을 넣는다.
바다내음이 은은하게 퍼지며 손끝에 닿는 미역은 미끌미끌하고 차갑다. 몇 분이 지나자 물을 머금으며 불어난다. 손가락 사이로 흐르는 촉감이 새로 돋은 살처럼 부드러워진다.
불린 미역을 건져 칼로 먹기 좋은 크기로 썬다. 칼날이 도마를 타격하는 둔탁한 소리가 주방에 울린다. 냄비에 참기름을 두르고 미역을 넣어 볶는다. 기름이 달궈지며 미역을 감싸자 고소한 향이 코끝을 스친다.
미역이 기름을 머금고 반투명해질 때쯤, 단골집에서 제일 좋은 등급으로 구매한 한우 양지를 넣는다. 고기가 냄비 바닥에 닿으며 ‘치익’ 소리를 내고, 수분이 빠져나오면서 깊고 진한 고기 향이 번진다.
고기가 익어갈 즈음, 물을 붓는다. 뜨거운 냄비에 찬물이 닿아 순간적으로 ‘쏴아’ 하는 소리가 난다. 국물이 끓기 시작하면 국간장을 살짝 두르고, 다진 마늘을 넣는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국물을 한 숟갈 떠 입에 대본다. 짭조름하면서도 깊은 바다맛이 혀를 감싼다.
국자로 국물을 한 번 저어보니 미역이 가볍게 흩어진다. 한 시간 이상 푹 끊인 국을 그릇에 담자 띵동 초인종이 울린다.
고소한 고깃 국물 한입이 뱃속에 퍼지면, 돌덩이 같은 딸의 마음도 흐물흐물 녹아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