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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거리 소설가 Feb 01. 2024

(단편소설) 방황하는 수사(12)

(12) 결심

나는 욕조에 물을 받아, 취기어린 몸을 뉘였다. 따듯한 물이 온 몸을 감싸자 빠르게 내 정신은 술에 잠식당했다. 술에 의해 내 의식이 점점 몽롱해졌다. 그리고 그간 미진과 민수의 얼굴이 나를 스쳤다. 이내 미진에게 모든 진실을 들었을 때, 그 때의 무기력한 감정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 감정 속에서 미진이 나를 향해 비웃었다. 그리고 민수도 나를 향해 비웃었다. 비웃음이 점차 커지자 나는 끝도 없는 심연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비웃음에 더 단단해졌다. 심연으로 내려가는 나를 끄집어 내듯이 벌떡 욕조에서 일어났다. 물을 닦지도 않은 채, 전라의 몸으로 휴대폰을 찾아 영수에게 전화했다.      


 “영수야, 아까 이야기했던 일, 우리 같이 하자”     


 영수는 내 이야기에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자 피식 거리며 답했다.      


 “이제야 태수답네. 내일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 오늘은 너무 늦었다. 술도 취했고...”    

 

 영수는 자다가 일어난 모양인지 아직 비몽사몽한 상태로 보였다. 나는 영수에게 내일 만날 약속장소를 정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책상 앞으로 가, 앞으로 내가 해야할 일을 노트에 써내려갔다.      


 「휴가 내기」

 「밀항배 섭외」

 「얼굴마담 섭외」

 「미진 감시」

 「......」     

 앞으로 필요할 모든 내용을 꼼꼼히 적다가 문득 내가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나는 크게 웃으며, 다시 욕실로 돌아가 수건을 가지고 나왔다. 나는 천천히 수건으로 물기를 닦으며, 적어놓은 내용을 소리내어 읽었다. 그리고 꼭 진범을 잡으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     

나는 일어나자 마자, 영수와 약속한 장소로 한걸음에 갔다. 어제 내가 계획한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는 마음에 약속시간도 생각하지 못한 채 두 시간이나 일찍 장소에 도착했다. 나는 다시 어제 적은 노트를 보면서, 내 계획에 허점은 없는 지 되짚었다. 한참을 노트에 집중하자, 익숙한 신발이 내 시야에 보였다.     


 “영수야 빨리왔네?”

 “네가 더 빨리 왔잖아. 오늘 약속시간 12시 아니였어? 아직 11시 30분 밖에 안 됐는데 언제부터 나와있 던 거야?”

 “두 시간 전?”     


 영수는 내 대답을 듣고는 다시 웃으며 이야기했다.      

 “다시 열혈형사로 돌아왔구만, 오늘은 미진씨 집은 안 들렸어?”

 “어, 일단 바로 이 쪽으로 왔어, 너랑 이야기 좀 하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들려야지”


영수의 질문에 간단히 대답한 후에 나는 내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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