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or "직업"
얼마 전 헤드헌터를 통해서 지원한 경력 사원 인터뷰가 있었습니다.
결과만 말하면, 지원 동기는 현재 설계 업무로 이직을 하려면 연봉을 맞출 수 없는데, 컨설팅으로 이직하면 연봉을 높게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업에 대한 이해도 없이, 지원하는 회사에 대해서 알아보려는 노력도 없이 현재 대기업을 다니고 있으니까 알아서 판단하라는 식으로 읽혔습니다.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안타깝다는 피드백만 남기고 인터뷰 자리를 마무리했습니다.
불현듯 “내가 과연 그 사람을 뭐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제 과거의 모습은 30대 중반의 지원자의 모습보다 못했으면 못했지, 더 나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사람을 뭐라고 할 자격이 있을까”
“나도 그 위치에 있지 않았을까?”
학교 졸업 후, 대기업에서 안정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저는 사실 커리어 패스, 경력 관리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대기업 입사 전 몇 개의 회사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프리랜서 또는 정규직으로 일을 해왔지만, 결국은 그 과실을 대부분을 버리고 다시 학교로 돌아갔고, 학교 졸업 후에는 누가 봐도 무난한 선택을 해왔습니다.
그렇지만, 큰 틀에서 바라보면 제 커리어 패스는 갈지자 행보로 보였을 겁니다.
정해진 틀에서 반복적인 삶을 살던 제가 본격적으로 커리어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 건 30대 중반쯤이었을 겁니다.
그 때쯤 제 시장 가치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죠.
이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직장”을 따라서 움직이는 이직과 “직업”을 따라서 움직이는 이직.
처음 이직을 고민할 때는 “직장”을 따라서 움직이는 이직이었습니다. 업무보다는 직장을 알아보고 면접을 보기로 결정했을 때쯤이 돼서야 업무를 살펴보기 시작했죠.
결과적으로는 잘 안됐습니다.
지원자인 저는 직장을 관점에 두고 이직을 알아봤지만, 해당 회사는 제 업무, 즉 직업을 관점에 두고 지원자를 판단했기 때문이었죠.
만약 연차가 낮았을 때 지원을 했었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었겠지만, 제가 경력직으로 지원한 순간부터 해당 회사는 제가 해온 일을 중심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차례 지원과 면접, 실패 후에 관점을 바꿨습니다.
“’직장’이 아니라 ‘직업’을 중심에 두고 이직을 준비해야 한다.”
그렇게 관점을 바꾸니 제가 해온 일, 경력이 시장 가치가 낮고 어떻게 보면 물 경력에 가깝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하고 싶은 일과 그 일을 할 수 있는 회사에 지원하기엔 제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해당 위치에서 열심히 일했는가, 일하지 않았는가”와 관계가 없습니다. “회사 내부에서 전문가로 인정받고, 어떤 위치에 있는가”와도 관계가 없습니다.
시장에서 판단한 나의 위치, 나의 경력이 중요했습니다.
그로 인한 선택은 누가 봐도 늦은 시점이었고, 누가 봐도 위험한 선택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그 시점에는 선택을 포기했습니다. 현재에 안주하게 된 달콤한 유혹이 있었고, “뭐 이렇게 살아도 나쁘지 않잖아”라는 현실에 대한 자위도 있었습니다.
늦었겠지만, 이 시점이라도 용기를 냈다면 덜 힘들고, 지금보다 더 나은 모습이 되었을 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