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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우 Oct 14. 2023

[중앙선 역사문화기행] 여는 글

죽령, 중앙선, 중앙고속도로 그리고 KTX-이음

여는 글

     

중앙선.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청량리역에서 시작해서, 경상북도 경주시까지 부설된 철도다. 총연장은 383.0km. 1923년 일제강점기 때 제2종관선으로 기획되어. 1935년 중앙선으로 노선명을 확정했는데, 1936년에 공사를 시작해 1942년 4월에 완전 개통되었다. 당시에는 서울(京)과 경주(慶)를 잇는다고 해서 경경선으로 이름 지었는데, 해방 이후 오늘날 중앙선 이름으로 환원했다.


철도의 노선을 보면 신라 제8대 아달라이사금 5년(158)에 길을 연 죽령을 터널로 관통하고 있다. 죽령은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과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 사이에 있는 해발 689m의 고개인데, 중앙선이 개통된 철도 이전에도 죽령은 거의 1,700년 간 옛 왕국의 간선로로 애용되었다. 죽령과 중앙선 시대를 모두 합치면 1,900년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달라이사금 이후 죽령은 6세기 중반 신라 진흥왕의 북방개척이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중앙고속도로 춘천방향 단양휴게소 뒷산을 올라가면 그가 당시 고구려 영토였던 적성을 정복하고 주민들을 위무했다는 내용의 적성비가 세워져 있다. 이후 신라는 이를 기반으로 적성 아래에서 시작하는 남한강 줄기를 따라 한강 전체를 장악하여 삼국통일로 가는 기틀을 닦게 된다. 경주에서 죽령을 거쳐 오늘날의 남한강과 서울을 관통하는 한강을 따라가면 오늘날 중앙선의 형태와 상당히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철도는 상상할 수 없던 약 1,470년 전에도 경주-죽령-한강하류길은 매우 중요했던 간선로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 죽령은 영남우로(嶺南右路)로 기능했다. 조선시대 과거길하면 보통 문경새재를 주로 떠올리는데, 죽령은 죽죽 떨어진다는 이유로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들은 잘 이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조선시대 삼포 중 하나인 염포(오늘날의 울산광역시)로 가는 지름길이어서, 상인들과 과거시험을 치지 않는 선비들이 영남으로 가는 주요 간선로로 활용했다. 그래서 예안현(오늘날 안동시 도산면)이 고향이었던 퇴계 이황과 얽혀 있는 이야기도 많이 남아있다.


하지만 갑오개혁 때 역참제도가 폐지되면서 죽령은 급격한 쇠락을 겪는다. 또한 구한말 경부선의 개통도 이를 부추겼다. 경부선이 먼저 부설된 이유는 추풍령이 죽령보다 고갯길이 덜 험해서 철도를 부설하기 용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가 거의 15분 내지 30분마다 한 대씩 가는 경부선 KTX와 달리, 중앙선 여객철도는 이에 비해 운행 수가 적다.


비록 명성이 옛 죽령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중앙선은 해방 이후 우리나라의 중요한 산업철도 노선으로 기능했다. 단양과 제천에서 생산하는 시멘트를 전국으로 운반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죽령과 중앙선의 부활의 조짐이 보이는데, 2001년 중앙고속도로의 완전 개통이 신호탄이었다. 마지막으로 개통된 구간이 영주 풍기와 단양을 잇는 죽령터널 구간인데, 2012년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4,600m의 터널이었다. 죽령길이 직선화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1,843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그리고 2022년 1월에는 서울 청량리에서 안동까지 가는 KTX-이음이 개통되었다. 250km/h급의 열차라고 하니 중앙선에도 준고속철도 노선이 들어선 셈이다. 청량리-안동 구간 소요시간은 2시간이 조금 넘는다. 게다가 내년 12월에는 의성, 영천, 경주뿐만 아니라 울산 태화강역과 부산 부전역까지 구간이 연장된다. 옛 신라 수도와 오늘날 수도를 이어주는 중앙선과 죽령은 이제는 옛 염포를 지나 부산으로 가는 또 다른 KTX철도로 진화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오늘날 고속 죽령길은 다시금 명성을 찾을 수 있을까? 또 다른 경부선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 나는 중앙선에 걸쳐 있는 모든 지방자치단체의 명소를 둘러보기로 했다. 경주에서 시작해서 서울로 올라가는 길. 옛 수도에서 오늘날의 수도로 가는 여정을 밟아보며 오마이뉴스에 연재를 하기 시작했다. 제목은 <중앙선 역사문화기행>.


원래는 2021년 9월에 브런치에 ‘경주 오릉’에 대한 글을 올리면서 자체 연재를 하려고 했는데, 개인사정으로 미뤄오다 이듬해 오마이뉴스 시리즈에 연재를 실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2022년 1월 28일 경주 동궁과 월지로 시작하여 2023년 3월 서울 5대 궁과 4월 영천 보현산천문대를 연재하기까지 1년 3개월이라는 시간을 소요하여 각 지역명소의 역사와 문화를 탐사했다.


사실 나는 역사를 전공한 사람이 아니라서, 아직까지 전공자 분들에 비하면 초보자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워낙 역사를 좋아했기에 지역 명소에 대해 더욱더 깊게 파고들고 싶었다. 여러 전문가들의 글과 한국고전번역원 DB자료의 도움으로 명소를 깊이 있게 살펴볼 수 있었는데, 각 지자체마다 담고 있는 독특한 이야기를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방문한 지역은 경상북도 경주시, 영천시, 의성군, 안동시와 영주시, 대구광역시 군위군(취재당시 경상북도 군위군), 충청북도 단양군과 제천시, 강원도 원주시, 경기도 양평군, 남양주시와 구리시, 서울특별시를 망라한 13개 시군이었다. 각 지역별로 최소 3개, 최대 5개 명소를 둘러보았으며, 남양주시와 구리시는 하나의 영역으로 통합해서 조사했다. 주요 지역의 중요 역사명소를 중심으로 조사했고, 석기시대부터 근현대까지 시대를 가리지 않았다.


그동안 우리는 부산으로 가는 기차를 탈 때 경부선을 이용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 2024년 12월이 되면 또 다른 기차로 부산으로 갈 수 있는데, 소금강 출렁다리, 부석사, 하회마을, 대릉원 등이 중앙선 철도역 근처에 있으니, 명소를 천천히 둘러보며 여행을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그리고 이제는 고속철도까지 들어오니 앞으로 또 다른 중요한 교통축이 되기를 기대해 보며, 경주에서 서울로 올라가며 중앙선 여정을 시작해 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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