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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빈 Mar 28. 2021

[소설] 마마 (1)

짧은 소설



  10월 13학원 사무실.     


   변호사님, 제가 몇 번을 말씀드려야 되는 거죠? 우리 채리는 준비가 다 되어 있다니까요. 우리 채리, 내년이면 벌써 육학년이에요. 내가 애가 타서 정말. 


   아니,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 나이 먹을수록 데뷔 힘들어지는 거 다 아는데. 나 같아도 다 큰 애들이 막 사람 죽이고 다니는 건 좀 별로야. 거 어린애들이니까 히어로니 스타니 하는 거지. 

  게다가 이거 정부에서 규제 들어갈지도 모른다며. 누가 모를 줄 알아요? 지금 엄마들 사이에서 소문 다 돌았는데, 일부러 학원 측에서 쉬쉬한다고. 

   변호사님도 뭐 아시는 거 있죠? 얼른 말 해봐요. 그러지 말고.


  그럼 아직은 문제없다는 거네요, 아니, 그래도 우리 채리, 등록한지 벌써 일 년이 다 돼가잖아. 

  이 학원 생기고 제일 먼저 등록한 수강생인데 경호 걔, 우리 채리보다 먼저 데뷔시키기로 했다면서요. 사람이 그러면 안 되지요, 변호사님. 우리 채리가 경호보다 부족한 게 뭐가 있어? 


  내가 이런 말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경호네 집안 요즘 형편이 말이 아니래요. 얼마 전엔 집도 경매로 넘어갔다더라고. 주변 사람들한테 전부 비밀로 하고 저기 지하철역 근처 빌라로 이사했는데, 당연히 소문 다 났지. 


   변호사님 알고 계셨어요? 뭐 그래, 그 집 사정 급하고 절박한 거야 나도 잘 안다 이거지. 알지만, 우리 채리가 시험 점수며 외모며 경호보다 모자란 게 없잖아. 

  그러니까 이건 형평성, 아니, 공정성의 문제가 아니냐, 이 말이에요. 내 말은. 막말로 내가 학원비를 내도 더 냈는데. 


   혹시 채리가 여자애라서 그래요? 지금이 쌍팔년도도 아니고 남녀차별하고 그러시면 안 되죠, 사실 그 나이 대 애들은 남자애들이랑 별 차이 없잖아. 그리고 어차피 힘으로 제압해야 하는 상황은 안 만든다면서요, 위험부담 없앤다고. 

  솔직히 경호처럼 평범한 남자애보다야 우리 채리처럼 예쁜 여자애들이 더 메리트 있지 않겠어요? 

  얘가 나 어릴 때를 꼭 빼닮아서 아주 콧날도 오뚝해, 조그만 게 벌써부터 팔다리도 길쭉길쭉해, 내가 속눈썹 길어지라고 어릴 때 얘 팔다리 붙잡고 속눈썹 자르고 그랬더니 아주 속눈썹도 무슨 연장시술 받은 것 마냥, 어머, 나 좀 봐, 미안해요, 변호사님. 자랑하려던 건 아닌데. 이해해줘요, 워낙 예쁜 딸이잖아. 아무튼 내 말은 우리 채리가 남들보다 모자랄 건 없다 이거지.


  그럼 경호네가 너무 극성이라 그냥 말만 그렇게 한 거다, 이거네. 그죠? 아휴, 이렇게 솔직하게 말해주니까 내가 마음이 놓인다. 아무렴 우리 변호사님이 그럴 사람이 아닌데. 난 괜히 걱정했잖아, 우리 채리가 어디 뭐 부족한가, 혹시 그렇게 생각하시나, 하고. 


   아니, 얘가 지난달부터 갑자기 키가 쑥쑥 크잖아요. 이러다 생리 터지고 여드름이라도 올라오고 그래 봐. 

  정말, 정말 끔찍한 거지. 끔찍해지는 거야. 그 때 여자애들이 얼마나 못 생겨지는지 알아요? 인생 최악의 시기라고. 나는 알아요. 

  지금이야 상상이 안 되겠지만, 십대 때 내 별명이 멍게였거든요. 그 지독한 여드름. 짜고 또 짜도 절대 안 없어져. 아주 악독한 것들이야. 톡 터질 때는 차라리 희열이라도 느껴지지, 제대로 곪지도 않은 염증덩어리를 뻘겋게 짓무르도록 쥐어짜내는 그 끔찍한 느낌, 알아요? 


  모를 거야. 끔찍해요. 끔찍해. 울긋불긋 여드름 가득한 못생긴 여자애라니. 우리 채리가 그렇게 되면, 그러면, 이젠 끝이야. 다 끝이라고. 예쁠 때 해야 해요, 변호사님. 

  변호사님도 그렇게 말했었잖아, 우리 채리는 워낙 외모가 출중해서 크게 성공할 거라고. 처음 학원 왔을 때 그랬잖아요. 채리같이 예쁜 애들이 과거에야 아이돌 지망생이나 하고 그랬지만 이제는 달라질 거라고. 진짜 스타가 될 거라고. 채리를 이 학원 데뷔작품으로 만들어 볼 생각까지 있다고. 


  기억나죠? 그 말에 내가 완전 넘어가서 김 원장네 학원이랑 놓고 고민하다가 결국 여기 등록시킨 건데. 


  아니, 난 사실 좀 걱정하긴 했어. 

 우리끼리 얘기지만 여기 원장님은 그 약간, ‘꾼’ 기질이 있어 뵈잖아. 이전에 아이돌 키울 때도 연습생 여자애들 건드리다가 일 크게 돼서 곤란했었다고 얘기 들었고. 

  그리고 아무래도 김 원장네 학원이 업계에선 제일 유명하잖아요, 한국 최초기도 하고, 김준일이랑 그 누구냐, 얼마 전에 노인 전문 킬러로 데뷔한 혼혈 애, 둘 다 거기 출신이니까. 나도 그 쪽으로 보내야하나 고민 많이 했지. 

  그런데 변호사님 보니까 사람이 참 믿을 만하다 싶고, 법률 전문가가 아예 학원에 붙어서 초기 세팅부터 사건 사후 처리까지 다 맡는다고 하니 내가 안심이 돼서 등록한 거거든. 


  저야 뭐, 배팅하는 거죠. 인생은 한 방이다, 쭉 그렇게 생각해왔거든. 호호호. 

  사실 내가 운이 좀 좋아요. 아까 말했죠? 중학교 때 별명이 멍게였다고. 심한 콤플렉스라서 그때부터 화장품이랑 피부에 관심을 가졌거든. 고등학교 졸업할 때쯤엔 화장품 케이스 뒷면에 성분표만 척 보면 줄줄이 분석할 수 있을 정도였다니까. 

  어차피 공부는 크게 관심없어서 졸업하자마자 피부과에 취직했는데 거기서 지금 남편을 만난거지. 호호. 내가 원래 한 번 정하면 그냥 돌진해버리거든. 나는 나를 믿으니까. 내가 된다면 된다니까요. 

  진짜야, 변호사님. 지금 내 남편 회사도 결국 내가 제안한 아이템이 대박 나서 성공한 거라니까. 덕분에 강남에 집 사고 이렇게 사모님 소리 들으면서 살게 되었으니 나로서도 좋은 일이지만. 


  커피? 좋죠. 믹스커피는 아니지? 어, 스타벅스에서. 그럼 난 아메리카노 톨 사이즈. 고마워요, 미스 김.      



  12월 7채리네.    

 

  당신은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해? 내가 왜 살인자야. 내가 누구 죽였어? 말 함부로 하지 마. 


  당신 흥분한 거 같은데 일단 씻고 나서 얘기해. 그리고 좀 차분하게 생각해 봐. 여태 내 말 들어서 안 된 거 있어? 당신 사업 이렇게 하는 것도, 아니다, 됐어. 아무튼 걱정하지 말라는 얘기야. 씻어.


  다 씻었어? 일단 이거 마셔. 어머님이 보내주신 거야. 당신 요즘 부쩍 살이 오른다고 걱정하시더라고. 

  남자도 관리 안하고 배 나오고 그러면 이젠 보기 안 좋아. 없어 보인다고. 

  안 그래도 저기 새로 오픈한 헬스장 트레이너가 괜찮대서 나 거기로 옮길 건데 당신도 같이해. 정 비서한테 연락해서 스케줄 잡아놓을 테니 꼭 나가. 알았지? 컵 이리 줘.


   알아. 뉴스 보고 그러는 거. 안 그래도 학원에서 연락 받았고 학원 수강생들 전부 당분간 쉬기로 했어. 걱정하지 마. 경호네가 멍청해서 그런 거지 우리 채리는 그런 실수 안 해. 


   당신도 알지? 그 집안 망한 거. 

   그래서 애 장래고 뭐고 생각할 겨를 없이 이렇게 성급하게 저질러버린 거 같은데, 이래서 사람이 없이 살면 안 된다니까. 분명 학원에서 상대 지정에 사건 세팅까지 다 안전하게 해준다고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했는데 말이야, 쯧. 하필 상대가 이 동네 주민이야. 아파트 단지 몰래 들어온 좀도둑쯤으로 착각한 것 같은데 완전히 잘못 짚었지. 아니, 그러게 왜 그 남자는 한밤중에 그런 거지같은 차림으로 나갔대. 요즘 사회악들 다 제거되는 추세인 거 모르나. 


   그럼, 애가 직접 골랐겠어? 열한 살짜리가. 이 동네 애들 지하철 어떻게 타는지도 몰라. 당연히 부모가 했겠지, 당장 급한데 학원에서 데뷔 자꾸 미루니까.


  상대 쪽에서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면 골치 아파지겠지. 다행히 크게 인맥은 없고 그냥 식당 두어 개 하는 집이긴 한데, 그래도 이 동네 사람들 무섭잖아. 괜히 학원 자질 문제까지 걸고넘어지면 학원 수강생들 전부, 우리 채리 앞길까지 다 막히는 거야. 히어로 양성한다더니 마구잡이 살인자로 키워 놨다, 이래버리면 곤란하다고. 안 그래도 지금 정부쪽에서 신사업 규제 들어갈지도 모른다고 시끄러운데, 짜증나게. 


   아무튼 그래서 지금 원장이랑 최 변호사가 바빠. 상대 쪽에서 조금이라도 문제 발견되면 스토리 세팅해서 경호를 쭉 키우는 거고, 만약 안 되면 경호 걔 정신상태 문제로 몰아가야 되거든. 


   어머, 우리 채리는 이미 컨셉까지 다 골라놨지, 여보. 여태까지 한국에서 히어로 애들이 선점한 시장이 동물학대범, 늙은이들, 그리고 노숙자랑 외국인 정도였거든. 더 센 걸로 가려면 아마 소아성애 변태들이 될 것 같아. 전자발찌 있으니까 찾기도 쉽잖아. 그리고 사건 적당히 마무리 되고나면 자서전 출간이랑 영화 계약까지 학원에서 알아서 진행해주기로 했어. 


   한 열여섯쯤 되고 은퇴하면 음반도 내보면 어떨까 싶어서 요즘 피아노랑 기타도 가르치고 있기는 한데, 얘가 음악에는 영 소질이 없는 거 같기도 하고. 걱정이야. 


   웃기네. 갑자기 신경 쓰는 척 하지 마, 관심 없던 게 누군데. 애가 뭐 배우는지, 뭐 좋아하는지 알기나 해? 당신 채리에 대해 아는 게 뭐가 있어? 채리는 우리 닮아서 애가 공부머리가 없어. 지금부터 다른 길 찾아놔야 된다고.


   당신? 당신 지방대 나왔잖아. 


   아니, 머리가 안 좋다는 말이 아니잖아. 그냥 당신이나 나나 공부에는 소질이 없다는 거지. 

   당신 보기에 내가 무식해? 아니잖아. 그거랑 이거랑은 다르다니까. 

   들어봐. 당신 알다시피 내가 채리 요만할 때부터 안 시켜본 과외가 없는데, 도대체가 네 달 이상 진득하게 붙어서 가르치는 선생이 없는 거야. 이상하다 싶어서 하루는 내가 추궁하다시피 물어봤어. 그랬더니 선생이 털어놓는 게 애가 말은 잘 듣는데 학습능력 자체가 좀 떨어진대. 뭘 가르쳐도 도통 기억을 못하고 열의도 없다는 거야. 그 때 얘가 삼학년이었는데 국제중 준비하려는 마당에 내가 그 소리를 들었으니 억장이 무너져, 안 무너져. 


   아니, 그 사람들도 돈 받고 그런 말 하고 싶었겠냐고. 애가 진짜 좀 칠칠하지 못하니까 그런 거겠지. 


   괜찮아. 속상해할 거 없어. 그래서 그 때부터 열심히 생각했거든, 내가. 

   그럼 우리 채리한테 대체 뭘 시켜야 하나. 당신도 알다시피 우리나라에서 애가 공부를 못하면 장사를 시키든가 예체능을 시키든가 해야 하는데 얘는 장사머리도 없을 게 뻔해. 착해 빠져가지고. 

   그럼 결국 예체능인데 그 쪽 감각도 별로 뛰어나진 않고. 다행히 얘가 날 닮아서 얼굴은 예쁘장하잖아. 그래서 연예인을 하면 되겠구나, 했지. 


   그렇다면 어떤 스타가? 아역배우? 걸그룹? 유튜버?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도 내보내야 하나?


   아니야. 하려면 크게 해야지. 고작 그걸로 되겠어? 그래. 내가 꽂힌 거나 마음먹은 것 중에 대박 안 난 거 없잖아. 한 방에 확 떠서 다 해결해버릴 강력한 거. 그런 걸 찾아야지.


   그리고 얼마 뒤에 학원 광고를 본 거야. 


   전단지를 보자마자 난 알았어. 차세대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가장 선두에서 이끌어 갈 10대 소년소녀라니, 이건 우리 채리다. 내가 대체 왜 이 생각을 못 하고 있었을까. 


   채리 이름 지을 때 우리가 나눴던 대화 기억나? 외국인들이 당신 이름 발음하기 너무 어려워해서 비즈니스할 때 힘들다고. 그러니까 우리 딸은 꼭 글로벌한 이름을 지어주자고. 

   그래서 내가 그랬잖아. 체리가 어떻겠냐, 당신이 박 씨니까 영어로 하면 체리 팍 Cherry Park, 벚꽃공원 아니야. 예쁘고 글로벌하지. 발음하기도 쉽고, 또 동양적이고 신비한 분위기도 풍기면서 일단 들으면 누구든 잊을 수가 없는 이름이잖아.


   구천구백 원짜리 국산 수분크림이랑 삼십오만 원짜리 프랑스산 크림 놓고 성분표 분석해보면 별 다를 거 하나도 없다는 사실, 당신 알아? 

   그러면 무엇이 삼십사만 원의 가치를 결정하느냐, 결국 오직 하나, 브랜드거든. 가치라는 건 그런 거야. 연출하기에 따라 달라지는 거. 만들어진 거. 쓰레기들은 그걸 몰라. 그러니까 죽어도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 거잖아. 난 요즘 사회 분위기가 아주 마음에 쏙 들어. 


  우리 채리는 고마운 줄 알아야 해. 내가 이렇게 알아서 다 세팅해주잖아. 태어나면서부터 쭉, 오직 채리를 위해서. 

   아, 우리 채리가 히어로라니. 체리 파크 더 히어로 킬러, 얼마나 멋진 네이밍이야. 영화에서 우리 채리가 등장하면 뒤에서 벚꽃 잎이 막 흩날릴 거야. 이거 미국에서도 잘 먹힐 것 같지 않아? 응? 

   여보? 여보, 당신 자는 거야? 




- 2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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