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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빈 Mar 28. 2021

[소설] 백 년의 고독

짧은 소설



네가 울었었나, 내가 울었었나.


의식이 점차 흐려지고 있어서 그런 걸까. 

너의 집 앞 가로등이 자꾸만 깜빡여서, 그 날의 이미지는 온통 정지 버튼과 재생 버튼을 반복해서 눌러대는 양 깜, 빡, 깜, 빡, 거려. 

그래서겠지. 기억이 나질 않아. 

네가 울었었나, 내가 울었었나.


그 날로부터 지독하게도 멀리 왔다고 생각했는데, 지구를 벗어난 지 수많은 세월이 지났는데, 또 이렇게 마지막 순간에 너를 떠올리고 말아. 


언제나 꾸는 악몽처럼 나는 또다시 자그마한 반도 국가의 열일곱 학생이 되어있고, 너는 그런 나를 스치듯 지나쳐.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깜빡이는 가로등 아래를 걷는 너의 교복 치맛단, 그 끝자락에 걸린 조금의 미련이라도 찾아보려 애쓰던 나, 흐려지던 눈 속에 끝내 담긴 너의 뒷모습.


너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 날 새벽에 일어났던 일련의 일들에서 너만은 무사하길 바랐던 건 어쩌면 쓸데없는 희망이겠지. 

하지만 나는 오래도록 희망했고, 또 절망했어. 

우주의 먼지 조각이 되어 떠돈 오랜 시간 동안 들른 수많은 우주정거장과 이름 모를 도시에서.


까만 머리칼만 보면 혹시 너일까, 희망을 가졌고, 지구의 생존자를 만날 때마다 혹시 너를 아는지 물었고, 그리고 매번 희망의 크기만큼 절망해야 했지. 그래서 나는 희망, 소망, 기대 같은 건 없는 사람이 되어갔어.


아니, 지금의 나를 과연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걸까? 

기억을 일부라도 보전하고 있다면 나는 아직도 ‘나’인 걸까? 

뇌가 아닌 모든 으스러지고 스러진 부분을 인간의 육체가 아닌 것으로 대체했다면, 지금의 나는 과연 예전의 ‘나’인 걸까?


너는 이런 나를 알아볼 수 있을까.


우주선의 문이 열리고 있어. 불시착한 지 꽤 되었는데, 이제야 누군가가 우리를 발견한 모양이야. 

하지만 뇌 기능 일부라도 정지하지 않고 남아있는 건 오직 나뿐인 이 폐허에서, 바깥이 어떠하든, 나는 이제 더 이상은 살아갈 자신이 없어. 


너무, 너무 오래된 이 고독에서 단지 벗어나고 싶을 뿐이야. 어떻게든 나를 정지시켜주길, 나를 꺼트려주길, 그저 바랄 뿐. 바라지 않아도 이제는 곧, 곧이겠지만.


마지막으로 널 생각해. 


어떻게든 에너지를 끌어 모아 조금 더 정확하게 기억해내기 위해 나는 애쓰고 있어. 


마치 지구의 마지막을 예감한 듯 불길하게 깜빡거리던 가로등 사이, 돌아서던 너의 뒷모습을, 깜, 빡, 깜, 빡, 흐려졌다 밝아지는 실루엣을, 지금으로부터 백 년 전, 아직 푸른 별이 있었고 수많은 인간들이 생존해있던 시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랑했던 너를. 


이건 나의 마지막. 내 뇌의 기억을 누군가는 열어보겠지. 그렇다면 기억해주길, 지구의 마지막 모습을. 

그 가을 밤거리를. 내가 사랑했던 소녀를. 

그 사랑과 상실로만 기록될 나를. 백 년간의 고통과 고독을. 

우주의 광대한 역사에서 나는 그 이름조차 남기지 못할 존재였지만, 다만 그 사랑으로 살아남았노라고.


깜, 빡, 


마침내 마지막 빛이 점멸하고.


네가 울었었나, 내가 울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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