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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빈 Mar 28. 2021

[소설] 첫 번째 뮤즈

짧은 소설



   에라토 김송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그녀의 이름을 직간접적으로 언급하였고 또 아티스트 두세 명의 연인으로서 대중에게 알려지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그녀는 일반적 의미의 아티스트가, 그러니까 ‘창작자’가 아니었으므로. 


   그녀가 살아있었다면 우리는 에라토의 그림을, 혹은 음악을, 혹은 시를, 단 하나라도 가질 수 있었을까. 

   모르겠다. 다만 내가 확신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비록 당신이 그녀의 이름을 알지 못할지라도 분명 그녀의 얼굴만은 본 적이 있으리라는 것이다.


   그렇다. 당신은에라토를알고 있다


   에라토는 스무 살의 가을에 한국에 왔다. 한국에 방문한 건 아마도 열 번 남짓이었지만, 그 방문은 특별했다. 마중 나온 이모의 차를 타고 인천 공항을 빠져나오는 순간 에라토는 그걸 알았다. 


   프랑스에서 태어나 영국을 거쳐 중국에서 국제학교를 다니다가 한국 나이 열다섯 살 무렵 중국에서 미국으로 간 에라토는 워싱턴에서 부모의 이혼과 재혼을 경험했으며 곧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 시카고로 갔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계 미국인 남자 친구와 함께 뉴욕으로 가 육 개월을 함께 살았다. 

   알려져 있듯 그가 바로 앤디 마사키다. 라이언 맥긴리의 제자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였으며 올해 가을 대림 미술관에서 아시아 최초 단독 전시회를 가질 예정인 이 젊은 포토그래퍼가 라이언 맥긴리에게 보냈던 포트폴리오는 온통 에라토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라이언은 독특한 방식으로 젊음을 포착해 낸, 즉 젊었을 적 자신의 작품을 연상케 하는, 그러나 아시안 특유의 신비로운 매력이 가득한 사진을 보고 즉각 앤디와 에라토를 뉴욕으로 불렀으며 앤디에게는 커리어의 본격적인 시작이 될 일거리를 주었고 에라토는 카메라 앞에 세웠다. 


   곧 라이언은 아주 오랜만에, 새까만 단발머리를 하늘을 향해 흩뿌리고 있는 깡마른 동양인 여자의 반라 사진 두 장을 발표한다. 당신이 알고 있을 바로 그 사진. 


   에라토는 그렇게 세상에 나왔고, 향후 몇 달 동안 라이언 맥긴리와 앤디 마사키의 모델로서 살았다. 그리고 모델 일이 지겨워졌을 무렵 에라토는 사진 몇 장을 추려 한국의 한 대학교에 보냈다.




   이쯤이면 당신도 에라토를 기억해 냈을 것이다. 한 예술대학교에서 독특한 입시 전형을 시도했던 해, 그 입시 전형의 유일한 합격자였던, 문화예술계는 물론 한국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첫 번째 뮤즈’를. 

     

   해당 대학이 이천이십이 년 입시에 ‘인스퍼레이션 전형’이라는 괴상한 실험을 했을 적 안내된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 보자면 아래와 같다.     


    - ‘인스퍼레이션 전형’ 은 장르 무관 예술가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창작에의 영감을 부여하고 독려할 수 있는 특기자를 모집한다.

    - 학과 통합 1명 모집, 추후 전공 학과 자유 선택

    - 고등학교 졸업 혹은 동등한 학력 소지자

    - 제출 서류: 원서 (이력서 및 자기소개서), 포트폴리오 (형식, 분량 자유)

    - 1차 시험: 서류 전형 

    - 2차 시험: 필기시험

    - 3차 시험: 면접 전형     



   ‘일명 <뮤즈 전형>에 응시하게 된 계기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에라토는 이렇게 답한다. 

‘재미있어 보여서요.’ 


   대학 합격 소식과 함께 쏟아진 수많은 요청에도 불구하고 에라토는 오직 한 번의 인터뷰를 했으며, 언제나 그렇듯 그녀의 안목은 뛰어났다. 

   포토그래퍼가 혼신의 힘을 다해 찍었음이 분명한 스물한 살 에라토는 라이언 맥긴리의 작품 속 신비한 동양인 소녀와는 사뭇 달랐으나 독특한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고, 인터뷰어는 자신에게만 주어진 특혜를 허투루 낭비하지 않았다.


   라이언 맥긴리가 선택한 소녀, 300대 1의 경쟁률을 뚫은 첫 번째 뮤즈, 아름답고 재미있는 것을 사랑하는 무국적 소녀, 이런저런 타이틀을 달고 그 인터뷰는 여러 번 재생산되었다. 

   그리하여 며칠이 지난 후에는 대한민국의 모든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이 그녀를 알고 있었다. 


   또한 그보다 더 많은 이들이 그녀를 궁금해하거나, 무작정 욕하거나, 혹은 갈망하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그녀에 대해 더 알고자, 무엇이라도 캐내고자 노력하였으나 누구도 그녀를 알지 못했으므로 그녀에 대한 단서는 오로지 단 한 번의 인터뷰와 라이언 맥긴리, 그리고 앤디의 사진뿐이었다. 


   그러므로 첫 수업 시간 출석을 부르는 교수의 목소리에 에라토가 네, 하고 분명하고 맑게 대답했을 때 강의실의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바라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많은 이들이 그 순간 첫눈에 사랑에 빠져 버렸던 것 역시. 

   안팎의 거센 반발 때문에 에라토의 입학 결정을 취소해야 하나 고민하던 학교의 관계자들은 이후 그녀에게 헌정하기 위해 쏟아진 재학생들의 다양한 작품들을 보며 안도했다고 한다.


   부끄럽지만 나 역시 그 애를 생각하며 그림을 그렸던 적이 있어, 뭐 신입생 때였지만, 하고 몇 년 전 한 친구가 고백한 적이 있다. 동석한 친구가 깔깔 웃었다. 그녀가 학부 시절에 쓴 '나의 에라토'는 이미 유명했으므로 모두가 알고 있었다.


   또 다른 동창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에라토는 여자들에게도 인기가 많았지. 묘한 매력이 있었어.

   맞아. 하지만 너무 우울해 보여서 다가가기는 어려웠지. 

   아니, 난 오히려 긍정적이고 밝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좋았어. 내가 너무 우울했던 때라서, 그런 에너지가 좋더라고.

   그래? 난 오히려 얄팍하고 뭣도 모르는 나에 비해 깊고 우울해 보여서 좋았는데.

   무슨 소리야. 에라토는 태양 같은 애였다고. 그래서 내가 태양을 그렸었는데.

   

   그런데 에라토 본명이 뭐였지?

   민경인가, 민정인가, 그랬을 걸. 엄청 평범한 이름이었어. 

   난 왜 기억이 없지. 수업 몇 번 같이 들었는데.

   교수들도 죄다 에라토라고 불렀잖아. 생각해보면 좀 웃긴데?




   에라토의 이름은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해 자연스럽게 홍대로 스며들었다. 

그녀가 입학하자마자 해당 예술대학교의 많은 학부생들이 그녀에 대한 작품을, 비록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수준에 미치는 것이 얼마 되지 않더라도, 아무튼 인터넷을 통해 미친 듯이 쏟아내었으므로, 그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라이언 맥긴리의 소녀를 라이언 맥긴리보다 더 아름답게 담아내어 보겠다는 오기와 의지 가득한 아마추어들의 영상과 사진은 물론, 온갖 미사여구로 치장된 시와 소설, 그리고 감정 과잉의 서투른 음악까지, 무수한 에라토의 조각들이 #에라토, 혹은 #예종뮤즈 라는 태그를 달고 가상 세계에서 거미줄처럼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그러자 곧 홍대 언저리를 맴도는 많은 아티스트들이 그녀에게 호기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물론 에라토에게는 분명 ‘무언가’가 있었다. 가끔 어떤 배우에게서 보이는 그런 것. 

   예민할수록 더욱 명확하게 느낄 수 있는, 무언가 반짝이는 것이. 


   그녀가 공연을 보러 갈 때마다 무대 아래, 혹은 무대 앞에 서 있는 그녀와 시선을 마주한 수많은 뮤지션들은 공연 내내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군중 속에서 그녀는 독보적으로 빛났으며 그 반짝임은 많은 이들의 마음에 무언가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고, 그녀를 찬양하는 아마추어의 작품들에 냉소를 짓던 아티스트들마저 에라토를 만나고 난 뒤에는 곧 아마추어와는 차원이 다른 작품으로 그녀를 담아내겠다는 까닭 모를 욕망에 불타올랐다. 


   그리하여 그녀가 처음 한국 땅을 밟은 지 고작 몇 달이 지났을 뿐인데 그해 여름이 되자 그녀와 함께 홍대 거리를 걷다 보면 다가와 인사하는 아티스트들이 족히 대여섯 명에 이르렀다. 

   언제였던가, 나는 ‘쟤 누구야?’라고 묻는 옆 사람에게 한 뮤지션이 이렇게 대답하는 것을 들었다. 어, 요즘 제일 힙한 


   에라토와 어울리는 이들은 가장 ‘힙’ 한 무리가, 에라토가 좋아하는 뮤지션은 곧 인디씬의 라이징 스타가 되었다. 혹은 그렇게 되고자 하는 이들이 에라토를 찾아냈다. 

   기자들이, 유튜버가, 포토그래퍼가, 인플루언서들이, 에라토를 말했다. 트윗했다. 촬영했다. 업로드했다. 에라토를 소비했다. 에라토가 하트를 박아 넣는 사진에 수많은 이들이 몰려가 ‘좋아요’를 눌렀다. 


   이에이의 싱글을 필두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헌정되었다. 물론 에라토를 손가락질하고 비웃는 이들도 많았으나, ‘우연히’ 술자리에서 에라토를 만나게 된 그들은 곧 자신의 경솔함에 대한 사과글을 공개했다. 물론 모두 에라토의 사진과 함께였다. 베레모를 쓴 에라토, 빈티지한 가죽 클러치를 감싸 안 듯 들고 있는 에라토, 멍하니 카메라를 응시하는 에라토. 


   에라토의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을 모방하는 무리가 나타난 것도 그때부터였다. 

   에라토를 보기 위해 해당 대학교에 입학하겠다는 학생들이 생겨났고, 평론가들 사이에서 예술가와 뮤즈의 관계, 현대 사회에서 뮤즈의 역할 등 고루한 주제에 대한 토론들이 벌어졌다. 


   나 역시 관련 좌담에 초청받거나 원고를 청탁받곤 했으나, 모두 거절했다. 에라토가 그런 일들에 대해 정말로 어떤 감상을, 견해를 가지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많은 이들이 에라토가 솔직하다고, 그녀가 선뜻 자신에 대해 말한다고 생각했으나, 사실 에라토는 과거의 일에 대해서가 아닌 자신의 현재 감정 상태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았다. 

   그녀가 전하는 것은 단지 기억들, 이미지들, 끊임없이 반복되는 과거의 조각들, 그리고 예술. 그뿐이었다. 단순히 그들을 적절히 꺼내어 내미는 일만으로 모든 이가 그녀와 소통하고 있다고, 그녀가 자신에게 공감하고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에라토가 선택한 죽음의 방식은 고전적이고 간단했다. 각종 약을 백 알 가량 먹었다고 했다. 아마도 한 번에 대여섯 알 정도를 삼켰을 것이다. 독한 와인을 병째 들이켜면서. 한 시간 동안 그렇게 스무 번가량을 반복하며 그녀는 천천히 죽어갔다. 


   부검 결과 에라토가 삼켰던 알약은 몇 가지 항우울제와 신경안정제, 국내에서는 구하기 힘들다고 알려진 강력한 수면제를 비롯해 엑스터시와 LSD 등의 마약까지 무려 아홉 종류에 이르렀다고 한다. 

   며칠을 굶었는지 내장 속에 음식물은 전혀 없었다고 했다. 다만, 와인과 약물뿐이었다고. 

   기자직에 있는 친구가 술잔을 기울이며 말했다. 원래 사체라는 게 다 그렇거든, 끔찍하단 말이야. 그런데 걔는 살아있을 때처럼 아름다웠대. 진짜 웃긴데 왠지 에라토 답지 않냐? 


   사체가 썩기 바로 직전, 오피스텔 임대인에 의해 발견된 에라토는 직선으로 뻗은 검은 단발머리에 옷자락이 길고 펄럭이는 흰 원피스를 입고 정갈하게 침대에 누워 있었고, 와인 병은 깔끔하게 비워진 채로 침대 옆에 세워져 있었으며, 은색 맥북에서는 조용히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방 안 곳곳에서 거대한 다섯 개의 보랏빛 향초가 마지막 불꽃을 맹렬하게 피워 올리며 라벤더 꽃향기를 방 안 가득 채우고 있었다고, 그 순간은 성스럽기까지 했다고, 예민하고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젊은 집주인 남자는 기자에게 상세하게 묘사했다고 한다.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반복해 말하며.

   그리고 그 모든 이미지와 이야기는 생중계되었고, 반복되다가, 어느 순간 사라졌다.


   친구에게 나는 말했다. 나는 에라토를 오래 알아왔다. 에라토는 마약에 손을 댄 적이 없다. 정신적 문제로 상담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그 누구에게도 휩쓸리지 않고 물들지도 않았으나 누구에게나 열려있었기에 모두가 그녀에게만은 편안하게 제 문제를 털어놓고 기댔다. 에라토는 그런 사람이었다……그러나 언론은, 경찰은, 그녀가 오래도록 정신질환을 앓아왔으며, 그로 인해 자살에 이르렀다고 발표했다. 기록에 의하면 우울증, 불면증, 약물중독 문제로 미국에서부터 꾸준히 상담을 받아왔다고.


   그렇다면 내가 아는 에라토는 과연 누구였을까. 


   에라토 김송은 이천 년대의 어느 날 남부 프랑스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고 이천이십 년대의 언젠가 대한민국 서울에서 죽었다. 도대체 그녀는 왜 죽었나, 그녀의 짧은 삶에 대해, 나는 썼다. 쓰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내가 알았던 것들, 내가 알았던 에라토, 내가 기록한 에라토는 과연 에라토가 맞았던 걸까.


   에라토의 장례식이 있던 날 나는 오래전부터 잡혀있었던 출장 건으로 출국하기 위해 인천 공항에 가 있었다. 내가 타야 하는 비행기가 출발 국가의 악천후로 연착되었다고, 따라서 최대 다섯 시간까지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고 항공사 직원이 설명했다. 

   이래서 국적기를 타야 한다니까, 같이 가는 동료 포토그래퍼가 투덜거렸다. 나는 하늘을 보았다. 어딘가의 악천후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유리창 너머의 세상은 파랗고, 하얗고, 맑았다.


   그때 나는 이상한 기시감에 사로잡혀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그리고 에라토를 보았다.


   그녀는 내게서 등을 돌린 채로 반대편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신고 있던 뭉툭한 워커를 가볍게 끌며, 어느새 까맣게 물들인 단발머리를 찰랑이며, 평소와 같이 조금 느린 걸음걸이로. 

   나는 그녀를 좇아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어깨에 가 닿을 수 있을 만큼의 거리가 되었을 때, 나는 문득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내가 반복하는 이 질문을.  


   에라토는 과연 누구였을까.      


   어쩌면 나 역시 단순히 그녀를 소비한 자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알고 있다고 믿으며 나는, 그렇게 무수한 에라토를 소비하며 혼자 무사히 이십 대를 넘어온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렇다면 그녀는 어째서 마지막까지도 여신으로 남고자 했던 것일까. 

죽어가던 그녀의 귓가에 마지막까지 울리고 있었을 은색 맥북 속 플레이리스트의 음악 외에, 그녀의 공간을 메우고 있었던 보랏빛의 꽃 향기 외에, 그녀가 우리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나. 그러니까, 도대체,


   에라토는, 우리가 그리고 쓰고 부르고 사랑했던 에라토는, 과연, 누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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