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다 칼로 그녀를 만나고 오다
봐도 후회할 것 같았고 안 봐도 후회할 것 같아서 이왕이면 보고 후회하자고 용기를 내어 그녀를 만나러 갔다.
주말인데 메르스 여파로 꽤 여유롭던 미술관. 처음에는 좋았다. 그녀가 대신 아파 주는 것만 같아서. 다음엔 싫었다. 그녀의 남편 디에고가.
그런데 관람이 끝나 갈 즈음에는 프리다 칼로가 싫어졌고 미술관을 빠져 나올 즈음에는 예술이 싫어졌다. 처음엔 예술이 그녀를 버티게 한 원천이고 힘이라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는 살 수 살아갈 수도 없었을 테니까. 근데 갑자기 이 생각이 드는 거다. 예술 저게 없었다면 그녀는 보다 나은 삶을 더 행복한 무엇을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지금처럼 이름이 남는 예술가는 되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미친 사랑으로 자기 파괴적인 결혼 생활을 유지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
그녀의 남편의 바람기는 예술적 영감의 근원이기도 했지만 예술이 뭐기에 자신보다 사랑한 걸까. 자신의 동생과 바람이 난 남자를 다시 택한 다는 건 두 번째 대형 사고를 스스로 선택하는 형상처럼 보였다.
그림을 그리면서 자신을 지탱하지 않았다면 벌써 튕겨져 나갔을 그와의 관계의 굴레. 동시에 잠깐은 찾아 왔을지도 모를 자유와 행복. 그를 정말 한 순간이라도 사랑한 적이 있었나. 자기를 사랑했나. 아픈 게 사랑인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광석이 형도 그랬잖아.
관람의 마지막쯤에 그녀가 그린 자유라는 주제의 데생 몇 작품들을 보았는데 하나 같이 미완의 작품. 자유를 갈망했지만 완성시키지는 못한 그녀 자신을 말하는 것 같이 느껴져 마음이 영 좋지 않았다.
마지막 코너에서는 그녀의 유품이랑 살아 생전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 여러 개 벽에 걸려 있었는데 한 사진 한 사진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감상을 하다가 이상해서 다시 처음부터 재 관람을 했다.
그녀가 웃고 있는 사진이 없는 거다. 묘한 미소를 흘린 사진이 있긴 했는데 웃는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 같다. 자신의 여자에게 웃음도 못 주면서 사회 혁명이나 사회운동이니 에 참여했다는 디에고가 참 위선적으로 느껴졌고 본인 자신이나 혁명하지 싶었다.
혁명의 소단위는 가정 아닌가. 그녀가 예술가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행복한 시간이 한 순간이라도 있었기를 빈다. 예술을 위해서 파국으로 불나방처럼 저벅저벅 걸어 들어갔던 자학적인 사랑, 중독된 사랑을 했던 것일지도 모르는 프리다 칼로.
나쁜 남자는 훌륭한 예술을 낳게 했지만 정말이지 예술을 하는 남자는 별로다. 왠지 모르게 답답하고 숨이 막혀 불편한 관람을 마치고 금방 나왔는데 2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미술에 문외한인 내게도 생각보다 여운이 크게 남아서 힘들고 후유증이 컸다. 유독 자신을 중성적으로 그림 자화상이 많았던 것 같은데 그녀가 살아있었다면 나는 이렇게 귓속말을 했을 것 같다.
프리다 칼로 당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이지 아름다워요-
에잇, 예술이 뭐지?
프리다 칼로와 그녀의 남편 디에고
덧붙이는 글 :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우주, 대지, 디에고 나 세뇨르 솔로틀의 사랑의 포옹이란 작품이었어요. 거대한 포용력이 느껴지는 작품 앞에서 상대적으로 간장 종지만 한 내 그릇이 매우 초라해 보이더라고요.ㅠㅠ
어느 날에는 인류애와 박애정신이 넘치다가도 어느 날에는 나하나 사랑하기도 벅찬 그런 모자란 내가 상대적으로 투영되어 보였다고나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