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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mo Apr 11. 2021

작자미상08-찻잔 속 창공.

-어느 날 갑자기 니가,  뜬금없이

찻잔 속에 비친 뭉게구름이 각설탕처럼 피어오른다. 뭔가 아메리카노 한잔만 시키자니괜히  무안해서 케잌도 시켜 긴급히 당을 충전한다. 그리고 이대로 창 밖을 내다본다. 번화가 한가운데 시원하게 뚫린 인도를 쉼 없이 지나가는 인파가 보인다. 모두가 분주하거나 또는 느긋하게 제각기 걷는 모습을 내다는 게 좋다. 이처럼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밖을 보는 게 좋다. 

 물론 조금 오래 앉아 있다 보면, 책을 읽으면서 여러 지방 라디오 방송도 들을 수가 있다. 가끔 이렇게까지 자세히 들어도 되나 싶지만 잘 들리는 걸 옆자리라 어쩔 수가 없다. 그렇게 한참을 여유 부리는 와중에, 갑작스런 통증이 전신에 퍼진다.턱을 괴고 구부려 앉는 습관 탓이다. 척추를 따라 이내 뇌척수 안까지 따끔한 통증이 밀려온다. 원래 앉아있으면 목부터 굳는다더니, 기지개를 피고 굳어있던 고개를 좌우로 움직여준다. 온몸의 기가 땅 아래로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이러게 체력이 자주 방전돼서야 깜빡이도 아니고, 무얼 할 수 있을까 힘이 나질 않는다.
 
 몸이 약해지면, 정신도 흐리멍덩해진다더니 뜬금없이 우리의 생명의 토대는 뭘까, 뭐를 위해 사나 하는 신변잡기의 생각이 머리를 채운다. 그렇게 한참을 컵 안의 음료를 빨대로 휘저으며 마지막 남은 얼음마저 녹을 때까지 이리저리 잡생각을 하면서 이 세상이 아닌 저세상 유랑을 했다. 확실히 뭘 하려면 현실에 발을 대고 있어야 하는데, 지금 나는 무언가 직면해야할 나만의 과제를 피하는 것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아무리봐도 나는 기가 빠진 사람이니까. 오장육부의 모든 기가 벼락을 맞고서 그대로 땅 안으로 꺼진 사람.
 
 
 “야, 너 뭐하냐?.”
 
 그래 네가 여기 왜 안 오나 했다.
 이 시간이면 나타나지 어김없이.
 
 “이제 하다 하다 스토킹도 하냐?.”
 
 “무슨, 주객이 전도 됐다. 원래 여기 내 자리야, 나만의 명당.”
 
 “먼저 온 사람이 임자거든.”
 
 “오전 수업이었지 너? 근데 여태 여기 있었냐?.”
 
 “언제부터 그렇게 관심이 많았대? 남이사?.”
 
 “원래. 네가 하도 날 후안무치로 보는데,나는  그저 선량한 개인주의자로서, 본디  사려 깊고 뭐냐.”
 
 “참, 더워서 헛소리도.”
 
 “섬세한 사람이야 천성이. 요새 너 자꾸 모임도 빠지더니, 어깨에 귀신 얹은 사람처럼 다니는거 아냐?”
 
 “어, 봤어. 실제로 봤어. 귀신.”
 
 “뭐?.”
 
 “진짜, 나도 기가 쎄니까 여태 잠자다 가위도 안 눌려 본 사람인데.”
 
 “그래, 가위눌리는거야 나지.”
 
 “근데 정말, 어제 혜정이랑 밥 먹으로 저기 길 앞 걷는데 오전에, 사람도 없이 좀 한산할 때.”
 
 “바로 저기? 저 가로수 옆에 길?.”
 
 “그래, 저기. 혜정이가 먼저 앞서가고 난 신발 끈 풀려서.”
 
 “야야, 그러게 너 칠칠찮게 신발 끈 하나 정리 못 하지 말랬지?
 새해에는 애가 갱생하는 줄 알았더니만.”
 
 “야 말 끊지 말고 들어봐. 그래서 신발 끈 묶으러 잠시 멈췄는데, 내 앞에 그림자가 생겨.”
 
 “그래, 저승사자라도 왔나보지?.”
 
 “아니, 얼굴 허연 사람이 평범한 청년 같았는데, 얼굴이 좀 허연 거지. 그거야 다들 요새 남자들도 사실 바르니까. 뭐 별 눈에 띄지도 않았어. 그런데 갑자기 덜컥 내 어깨에손을 올리더니.”
 
 “목을 졸랐느냐? 꼴보기 싫다고.”
 
 “아니 진짜 이 인간이, 남의 말 그렇게 반 토막 내는 건 어디서 배웠냐? 그 상태로 사회생활은 가능하냐? 너야 말로 미스터리다 정말·인간성 하나는.”
 
 “아니 가끔 네가 나를 데리고 콩트를 하는 것인지, 진짜 이야기를 하는 건지 분간이 안 가서 그런다.”
 
 “진짜야 이거는! 바로 어제 겪은 일이라고 저 앞에서. 그 사람이 나한테 타이르듯이 말했어.
 이제 안보일 거라고. 괜찮을 거라고.“
 
 “뭐래. 뭘 봤는데 그간.”
 
 “아니 그러니까, 내가 또 바보같이 대답했어.여태  저는 가위눌린 적도 없는 데요.”
 
 “그런데?.”
 
 “근데 쓱 웃더니 날 일으켜 주고 가는 거야. 동기도 뒤돌아서 왜 안 오느냐고 날 부르는데, 아무도 못 봤대. 내 앞에 누가 있었냐고.”
 
 “야, 그거 훼이크 아니냐? 또 둔한 니가  니 몸에 닿은 거 아냐?

언제나처럼 안경끼고 안경 찾듯이 그런?.”

 
 “몰라, 하여간 이상해.”
 
 “그래서 여태  멍때렸냐?.”
 
 “아니, 꼭 그렇다기보다 그냥 바같구경, 사람 구경했다. 요새는 창 밖을 볼 일이 없잖아. 다들.
  다들 보면 아주 단체 수감자들 같아.“
 
 “글쎄 넌 아니었던 것 같은데? 중간고사일랑 평소처럼 땡땡이쳤잖아.”
 
 “ 하여간 못 잡아 먹어 안달이야, 그 중압감은 똑같지?.”


“ 하이고, 퍽이나 .”


 “ 근데 그게 진짜 문제가 아니야 지금."


"뭘 또? 야야, 그냥 하나 더 시켜라, 얼음도 다 녹았다. 

진짜   빨대만 물고서, 치아 그거 다 나간다. 빨대 좀 그만 씹어대."


"같이 벚꽃구경하제도 다들  갑자기 시험이라고 말이야. 이젠 다들 낭만이 없어요. 

어? 갑자기 안 하던 공부로 유난을 떠는데, 내가 얼마나 당황했겠어?”
 
 “그렇게 심심하면 나보고 놀아달라지 떼라도 쓰지 그랬냐. 
 난 또 너 바쁜 줄 알았지 요새 연락이 없길래.“
 
 “아이고 감개무량하군요 오라버니, 이 소녀의 아분도 물어오시고. 그래서 생존 확인하러 온 거냐.”
 
 “응, 너 여기 자주 오잖아. 상상력 빈곤한 자가 가봐야 어디, 이 동네에서 여기 말고 가겠어?.”
 
 “아, 예 예.”
 
 “정작 제사 보다 잿밥에 관심 있는 데, 오늘은 또 누구 얘길 엿들었냐?

 이 오후 한나절 보내는 동안. 그정도면 도청이야.”
 
 “야 말조심해, 네가 그러고 다니니까 괜히, 과에도 내가누구 이야기 듣고 옮긴다는 소문이 나는 거잖아. 나는 너처럼 인싸도 아니라 내 동기도 누가 누군지, 누구 후배고 누구 친구인지도 몰라.”
 
 “어이구. 그러니까 항상 결정적인 건 비밀로 해야지.

 무슨 속 없게 여기저기 카페에서 앉아서 이야기  듣는 게 재밌다고 말하고 다녀?

말이야 항상 와전되는 걸 알면서.”
 
 “그거 집단 상담에서 학교 내 그 동아리 있잖아. 무슨 심연이라고, 마음의 심연을 본다고 자기 은밀한 취미가 뭐냐 해서 말한 건데 나름 건전한 취미로.”
 

 “기가막혀 말이 나오지 않는다. 세상사 빠삭한 척은 혼자 다하더니.”
 
 “왜 그럼 너처럼 디스크 짜파구리 파일 있다고 말할까?.”
 
 “그건 내가 할 소린데.”
 
 “예 예, 지금 우리 뭐 하는 거냐 근데”
 
 “그러게.”
 

“아무래도 창밖 구경이 더 생산적인 듯.”
 
 “인정.킹정”
 
 “근데 너는 언제부터 그렇게 진득하니 앉아 있는 취미가 들렸나? 

작년만 해도 가만히 못 있었잖아. 그렇게 넋 놓고는.
 왜 이제와서 문학소년 코스프레냐.  책 표지도 거꾸로든지 모르고 조는 걸 다 아는데?”
 
 “그래 이 몸을 알아주는 건, 너밖에 없다.없어.”
 
 “그래! 나 같은 소꿉친구 있는 건 실로 웹드라마 같은 거야. 감사히 알라고.”
 
 “어떻게 그렇게 패기가 넘치냐? 한결같이. 야, 이제 좀 조용히 문명인답게 커피나 마시자.


“아니 또 내가 뭘, 너는 맨날 엄한 사람한테 뒤집어 씌우더라?


 “휴전, 휴전.”


 “아니 그니까 뭘? 허, 나참 어이가 없어서.”


 “이렇게 계속 따발총이면 윤깐족, 나도 반칙 쓸 수 있어.”
 
 “어쩌라고, 난 꿀릴 게 없는데?”
 
 “차였다며, 차였어. 그 놈이 울면서 뛰쳐나갔다며, 과에 다 퍼졌다.”
 
 “그게 뭐? 사람이 만나다 보면 언어 신호가 교란될 수도 있지.”
 
 “뭐래? .”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모를 말대답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 애초에 이 이야기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모르겠는 재주가 있다. 대체 어디서부터 엮여서 이 사단이 난 건지 자문해 보지만, 애초에 이런 고민은 답이 없어서, 아무리 카톡으로  대화하는 시대라지만 좀 심한 것 같다. 어떻게 한 번이라도 면대 면으로 대화란 걸 해볼라치면, 서로 말꼬리를 잡다 별 소득 없이 말장난만 하다 끝나지.
 

“항상 이런식이지. 우리가 매번 말이 이렇게 끝나는 게 뭐라고 생각해 친구야?.”
 
 “왜 그래, 갑자기 무섭게.”
 
 “이제 정말  이 문제의 근원을 알고 싶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이런 것보다도 더 난제야. 우주의 난제.”
 
 “그거야 네가 말 하나 안 지는 성격이라 그런 거 아니야?.”

 
 “그거 내가 할 소리 아니냐 ? 꼭 무슨 돌림노래 같은데….”


 “하여간 이리 둔해서는. 그렇게 직접 사태의 심각성을 알 정도의 지력이 있었으면.”
 
 “아  또 그거 말버릇이냐, 아주 사람을 돌려 까는? 

가만 보면 너는 나를 인간 이하로 상정하고 말하는 것 같아. 내가 너희 집 강아지냐? ”
 
 “작은 말에도 내 단어에 욱하는 건 넌데.”
 
 “그래,건전한 으른답게 이번에는 대화란 걸하자·서로 우짖지 말고.”
 
 “그래. 그럼. 이젠 알아채야 할 때가 아닌가?”
 
 “뭘?.”
 
 “정말 몰라서 묻나?.”
 
 “아니  뭐?뭐뭐뭐”
 
 “내가. 항상 네 단어를 하나하나 모방하니까.”
 
 “어? 그래서.”
 
 “네 말이라면 그게 뭐든 그냥 지나가질 않는 거지 나는.

그냥 시시껄렁한 잡설이라도 재밌으니까. 그 단어하나까지 따라하다 지경이 됐다고.
그거 다 말 장난인거 나도 아는데, 너랑 말싸움 하는 거 좋다고 나는.”
 
 너의 말은 내가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진짜 연구 대상이다. 이 정도로 말이 안 되면, 사람 대 사람이. 여기서 누가 잘못된 거야?.”
 
 “다 내 잘못이지. 내가 언제나 방관만 했으니까. ”


순간 감이왔다. 그대로 입에 물었던 얼음을  뱉었다. 몰카다. 하다하다 죽마고우 초상권을 침해해서 용돈을 벌어? 초소형 카메라를 찾아 요리조리 탁자 아래,옆 창문 손잡이까지 확인해본다.


“뭐하냐.”


“카메라, 카메라 지금.”


“사람 말 좀 제대로 들어라 쫌!

널 생각한다고 틈날 때마다. 네가 말대꾸해줘야 안심이 된다고 이제.”


급기야  돌고래 소리 내며, 연달아 딸꾹질하는 나를 모두가 쳐다보고,

찻잔 속 창공이 밀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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