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2-3살 무렵,
그러니까 나와 집사람이 한컷 기대감에 부풀어 있던 때가 있었다. 내 아이는 이런 사람이 되어야해. 이런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어(사실 ‘좋겠어’가 아니고, 내가 그렇게 만들고 말거야. 이런 분위기였을거다.)
그리고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그리 오래지 않아 알게 되었다. 유치원에 들어간 후 아이는 정확하게 자기가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을 구분해서 우리에게 통보했다. 태권도, 피아노, 무용, 미술학원 등등. 나와 집사람이 먼저 제안한 것은 거의 100% 거부가 되었다. 어찌어찌 설득한 이후 첫 1달간만 일단 해보고 니가 정말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절대 두번은 권유하지 않겠다는 우리의 다짐으로 시작을 했고 어김없이 1달뒤에는 그만두어야 했다. 이 땡고집 딸을 어찌할까. 우격다짐으로 더 해보게 할수 없다는 것은 이미 여러 경험을 통해 터득한 터라 그때부터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법을 썼다. 그렇다고 정말로 가만히 있지는 않았고 ^^
아이가 물어다 주는 것을 성심성의껏 찬성해 주기로 했다. 아빠~ 이거 하고 싶어, 아빠~ 이거는.. 내가 먼저 제안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먼저 제안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처음에는 이 기다리는 시간이 참 지루했다. 제안이 올지도 안올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기다림에 지칠 때쯤 아이는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나에게 물어다 주었다. OK! 정말 쿨하게 동의를 해 주었다.(절마가 그래도 중학교를 가면 머리도 좋고 하니 공부를 열심히 하고 우리가 원하는 대학에 가서 떡하니 잘 해낼거야…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뭐 이정도는 해줄수 있어 라는 생각이었다.)
몇 번의 제안과 동의를 거친 후에 내 아이는 본인이 하고 싶어했던 것은 어떻게든 결말을 짓는다는 것을 알았다. 모든 제안이 happy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좋은 결말이든 나쁜 결말이든 어떻게든 자기 나름대로의 결론을 만들어 냈다. 우리 부부의 제안은 처음부터 거부되는 확률이 100% 였지만 지 나름대로 검토가 된 경우는 시도도 해보고 실패도 해보고, 그리고 성공도 해보는 경험으로 이어졌다.
중학교를 가고, 고등학교를 가고 아이는 우리 부부가 생각한 것대로 한번도 살아오지 않았다. 사실 중학교 이후로는 그의 미래를 나와 와이프가 그려보지 않았다. 그게 전혀 부질없는 일이었기에 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순간 순간 아이가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려주기로 했다. (뭐 정말 그렇게만 했겠나. 저녁밥에 술 한잔을 하며, 먹히지도 않을 그의 미래를 조금씩은 희망을 가득담아 이야기는 해보았다. 그냥 그것까지만 했다. 혹시 아이가 우리가 이야기한 것 중에 하나를 제안해 오면 바로 OK 동의해 주는 꿈을 꾸는 것만으로 좋았다. ㅋㅋ)
내가 이렇게 이야기해도 딸은 이 다음에 아빠때문에 라는 말을 나에게 할것이다. 그래서 대학 합격한 날, 소주 잔뜩 사서 소수 마시는 법을 배워주며 이렇게 이야기 했다.
“딸, 이제 너 맘대로 살아가도 돼”
2025.4.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