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코로나가 한창인때 나는 부산을 걸었다.
부산에는 시간이 멈춘 듯한 곳들이 있다. 좌천동에서 수정동, 초량동을 거쳐 영주동, 대청동, 동대신동에 이르기까지, 산자락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산복도로가 그곳이다. 사람들은 이제 이곳을 '이바구길'이라는 정겨운 이름으로 부른다.
해방 후, 6·25 전쟁으로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하나둘 부산으로 모여들었다. 부산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이 언덕배기에서 그들은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일구었다. 많은 사람들이 살아야 했기에 집들은 자연스레 산중턱까지 오밀조밀 들어찼다.
그 시절, 이곳은 희망이었다.
배가 들어오고, 사람들의 소식이 전해지고, 바로 아래 부산진역에는 기차가 정차했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그 역에서 울려 퍼지던 기적소리가 산복도로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신호였을 것이다.
이제 세월이 흘러 아랫동네에는 키 큰 건물들이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했다.
좌천동 산복도로에서 부산항을 바로 내려다보기가 어려워졌다. 한때 이곳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주던 그 넓은 바다 풍경이 조금씩 가려지고 있는 것이다.
일신기독병원 뒤편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다 보면 어느새 버스가 다니는 산복도로에 닿게 된다. 이 길을 따라 걷다가 가끔 사이로 난 작은 골목을 발견하면, 망설이지 말고 그리로 발걸음을 돌려보자.
언뜻 막다른 길처럼 보이지만, 골목들은 신기하게도 이리저리 연결되어 길게 이어진다. 계획 없이 마구잡이로 지어진 듯한 골목과 집들이지만, 그 사이로 흐르는 삶은 여전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하루가 시작되고, 누군가의 일상이 이어지고 있다.
산복도로는 그렇게 부산의 어제와 오늘을 품고 있는, 살아 숨 쉬는 이야기의 무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