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영웅전 #15
조카는 언니와 번화가로 갔다. 생일 선물을 사러 간 길이었다.
그곳은 다양한 가게와 거리 공연으로 가득했고, 외국인 여행자들도 많이 보였다.
거리를 걸을 때마다 조카는 동네에서는 보지 못했던 신기한 가게들과, 중간중간 작은 공간에서 펼쳐지는 거리 공연에 마음을 빼앗겼다. 선물은 잠시 잊고, 이곳저곳을 구경하느라 눈을 반짝이며 바쁘게 움직였다.
한편, 거리를 거니는 외국인들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눈을 반짝이며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마치 이곳이 특별한 장소인 것처럼.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조카도 덩달아 설레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문득 조카는 주변을 둘러보며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같은 거리를 걷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핸드폰을 바라보거나 바닥을 응시하며 무표정한 얼굴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조카는 의아한 표정으로 언니에게 물었다.
"언니, 왜 어떤 사람들은 신나고, 어떤 사람들은 시무룩해 보여요? 같은 곳인데 말이죠?"
언니는 웃으며 대답했다.
"저 사람들은 여행하러 온 거잖아. 오랜만에 나온 소중한 시간이니까, 하나라도 더 보고 즐기고 싶은 거지."
조카는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물었다.
"그럼 여행이 아니면 즐겁지 않은 거예요? 꼭 여행이어야만 신나고 재미있을 수 있는 거예요?"
언니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렇진 않지만, 여행을 가면 낯선 것들을 보니까 더 신나고 재밌게 느껴지긴 해. 나도 어디든 떠나보고 싶다."
조카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나도 지금 여행하는 거네요? 여기 너무 재미있고 좋아요! 나중에 또 오고 싶어요. 생각하면 설렐 것 같아요!"
나는 조용히 대화를 들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조카가 말한 무표정한 얼굴들 사이에서, 나 역시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여러 번 왔다는 이유로 이곳을 여행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익숙하다는 이유로 더 이상 새롭게 보려 하지 않았던 건 아닐까.
하지만 이곳은 전 세계 사람들이 찾아오는 여행지다. 누군가에게는 평생 한 번 올까 말까 한 곳일 수도 있고, 기대하고 꿈꾸던 장소일 수도 있다.
그런데 왜 나에게는 이곳이 지루하게 느껴졌을까?
조카의 반짝이는 눈과 외국인들의 즐거운 표정을 보면서, 나도 이곳을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같은 거리, 같은 공연, 같은 사람들. 하지만 내 시선이 바뀌자 모든 것이 다르게 보였다.
여행은 꼭 새로운 곳을 가야만 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같은 곳이라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다면, 우리는 언제든 여행을 떠날 수 있다.
"언니! 저 사람 진짜 재밌어! 완전 여행 온 것 같지 않아요?"
조카가 신이 나서 말했다.
"그러네, 우리도 여행 중인가 봐."
그 모습을 보며 나도 함께 웃었다.
익숙한 일상 속에서 새로운 기쁨을 찾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언제든 떠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여행이 아닐까.